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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단어들은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든다. 헬라어 ‘아가페(ἀγάπη)’를 한국어로 ‘사랑’이라고 옮길 때, 그 단어가 품고 있는 깊이가 다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더욱 그런 단어가 있다. 바로 히브리어 ‘헤세드(חֶסֶד)’다. 이 단어 하나를 이해하는 것이 구약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lovingkindness’, ‘steadfast love’, … 계속되는
비 그친 늦봄 아침 공원 길 위에서 만난 한 뼘 웅덩이 안에 통째로 담긴 가로수 한 그루. 큰 자비가 작은 마음 안에 비쳐 들어오는 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펴 든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한 구절.
오월 마지막 주 새벽 다섯 시, 보리차 잔 위에 오르는 김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펴 든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의 한 줄. 아침마다 새로운 자비라는 말씀이 식탁 위에서 작은 결들로 다시 되살아난 한 새벽의 묵상.
봄비가 그친 베란다 난간 모서리에 남은 물 자국 한 줄. 신명기 32장 2절 모세의 노래를 다시 읽으며 가는 비처럼 스며드는 일반 은총의 결을 헤아린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 비유를 다시 읽으며, 하늘의 산수와 목자의 어깨가 가르치는 신앙의 결을 묵상한다.
AI 챗봇이 신앙 고민의 첫 청자가 되는 시대. 즉답의 위로와 침묵의 동행 사이, 인공지능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자리를 다시 생각한다.
오월 팔일의 새벽, 식탁 위에 놓인 한 송이 카네이션 앞에서 받은 사랑의 무게를 다시 헤아린다. 받은 사랑이 흘러갈 자리를 찾는 하루의 묵상.
햇살이 비스듬히 들이치는 평범한 오후, 화분 다섯 개 앞에서 만난 묵상. 잎사귀 한 장 한 장에 깃든 작은 충실함이 시냇가에 심긴 나무 같은 신앙을 가르친다.
이미 의롭다 하시는 은혜와, 오늘도 변화시키시는 은혜. 칭의와 성화라는 두 단어가 새벽 식탁의 하루 위에서 어떻게 만나는지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비 갠 아침 골목을 천천히 걷다 마주친, 평범한 풍경 속에 숨어 있는 은혜의 결을 따라 걷는 짧은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