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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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가르는 빛처럼 — 절망 뒤에 찾아온 하나님의 아침
절망은 깊은 밤처럼 찾아옵니다. 처음에는 그저 어두워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눈을 감으면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새벽 세 시, 눈을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절망이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빛이 다시 올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흔들리는 상태였습니다. 내일이 오더라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무거운 예감이 온몸을 감싸는 그 상태. … 계속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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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예배당 귀퉁이 자리에서 — 어머니의 기도 소리가 내 신앙의 토양이 된 것에 대한 영성 일기
내가 처음 새벽기도를 따라간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가 날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교회로 가셨고, 그날따라 나는 잠이 일찍 깨서 눈을 비비며 따라나섰다. 아직 어두운 골목길을 어머니 손을 잡고 걸었다. 교회 문을 열자 이미 몇 분이 나와 앉아 계셨다. 예배당 안은 희미한 불빛 아래 고요했고, 누군가의 기도 소리가 낮게 흘렀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 계속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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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첫날 월요일 새벽 책상 위 빈 잔에 천천히 차오르는 보리차 김 한 줄 —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 아침마다 새로운 자비를 다시 마주한 데일리QT
유월 첫날 월요일 새벽, 도시의 가로등이 아직 꺼지지 않은 다섯 시 십칠 분. 거실 마룻바닥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빛의 결을 따라 천천히 책상 앞에 앉는다. 어제 늦게 닫아 놓은 성경의 가죽 표지 위에 흰 가루처럼 내려앉은 새벽의 차가운 공기. 그 위에 손을 한 번 얹고, 잠시 손바닥 안쪽으로 전해 오는 미지근한 결을 가만히 느낀다. 새 … 계속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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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반의 잠잠함 — 늦봄 새벽 기도 자리에서
새벽 네 시 반의 어둠은 한낮의 정적과는 다릅니다. 한낮의 정적이 사물의 형태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정적이라면, 새벽의 정적은 모든 사물의 윤곽을 부드럽게 감싸 주는 정적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잠시 자기 자신의 모서리를 잊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살고 있는지, 어떤 이름을 지고 가는지조차 잠시 흐려지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에 가장 진실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현관문을 살며시 닫고 밖으로 … 계속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