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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식탁 위 빈 컵에 천천히 차오르는 보리차 한 잔의 위로 — 마태복음 11장 28절 다 내게로 오라는 한 줄


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식탁 위에 놓인 빈 컵 하나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한 주의 마지막 평일이 천천히 저물어 가는 시각이었고, 부엌의 환기창 너머로는 어렴풋한 저녁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식탁 위에는 낮 동안 사용된 그릇들이 모두 정리되었고, 그 한가운데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빈 컵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컵의 가장자리에는 누군가 마시다 두고 간 보리차의 흔적이 옅게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가족의 하루를 작은 둘레 안에 가만히 새겨 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주전자를 다시 데우고, 보리차 한 잔을 컵에 따랐습니다. 갈색의 결이 잔의 안쪽을 한 바퀴 천천히 돌고 나서야 비로소 김이 위로 가늘게 피어올랐습니다. 김은 잔의 가장자리를 한 번 둘러보고는, 식탁 위 천장의 등불 쪽으로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손바닥으로 잔의 옆면을 감싸 안았을 때,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무엇인가가 같은 온도로 천천히 풀려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루 동안 어깨에 쌓여 있던 작은 힘이 빠져나가는 자리였습니다.

저녁 식탁 위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의 위로
저녁 식탁 위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이 만들어 주는 작은 평안의 자리.

한 주를 돌아보면 큰 사건은 없었지만 잔잔하게 쌓여 온 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회의실의 마지막 발표, 모니터 앞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던 메신저의 알림음, 점심시간에 잠깐 받은 가족의 안부 전화, 퇴근길 지하철의 환승 통로에서 들려오던 안내 방송. 하루는 별일 없이 흘러간 듯 보였지만, 막상 저녁의 식탁 앞에 앉고 보면 어느새 어깨가 조금 무거워져 있었습니다. 그 무게는 거창한 슬픔이라기보다는, 한 주 동안 차곡차곡 쌓여 온 작은 책임의 결들이었습니다.

그런 저녁의 자리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씀이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마태복음 11장 28절

너무 익숙해서 때로는 그 무게를 잊고 사는 한 줄입니다. 그러나 빈 컵을 손에 쥐고 식탁 앞에 앉은 그 저녁, 이 한 줄은 다시 한 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결코 ‘일을 그만두라’는 부르심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들고 그대로 내게 와서 쉬어 가라’는 따뜻한 손짓이었습니다. 짐을 다 풀고 오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오월의 끝자락에 한 주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에게는 그 자체로 작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잠시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한 주 동안의 일들을 머릿속으로 차분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떤 일은 분명히 잘 흘러갔고, 어떤 일은 끝까지 매듭짓지 못한 채 다음 주로 넘겨야 했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한두 가지 결정들도 있었고, 다시 사과해야 할 짧은 말 한마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항목 위로, 빈 잔에 김이 올라오는 소리는 여전히 한결같이 따뜻했습니다. 한 주 동안 잘한 일과 미흡했던 일이 한 식탁 위에 같은 무게로 놓여 있어도, 식탁 자체는 그 모든 것을 한 자리에 받아 안아 주고 있었습니다.

식탁 위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차
잔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늘게 피어오르는 김의 결.

시편 116편 7절에는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라는 한 줄이 있습니다. 어느 저녁이든 식탁 앞에 앉아 빈 잔을 마주할 때마다 이 말씀은 마치 식기처럼 가까운 자리에 놓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평안함으로 돌아가라’는 부드러운 음성은 거창한 의식이나 멀리 떠나는 여행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주 동안 살아 낸 자리 그대로, 식탁 앞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짧은 걸음 안에서 평안의 자리는 시작됩니다.

가족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잠시 보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그 작은 소리, 채널이 한 번 바뀌는 짧은 음향, 누군가가 다시 자리에 앉는 작은 의자 소리. 그 모든 일상의 음향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날 저녁의 식탁에서는 평소보다 조금 더 분명히 들렸습니다. 어쩌면 영성 일기를 쓰는 자리는 거창한 신학적 표현을 모으는 자리가 아니라, 이런 작은 음향들을 한 줄씩 받아 적는 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책을 펴서 그 저녁의 빈 잔을 그대로 한 줄로 적어 보았습니다. ‘오월의 마지막 금요일, 보리차 한 잔이 식탁 위에서 천천히 식어 가는 동안, 마음 한 자리에는 새로운 자리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 자리는 거창한 결심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다음 한 주를 향해 한 호흡 다시 가다듬기 위한 작은 빈 칸이었습니다. 빈 칸을 두는 일은 게으름이 아니라 한 호흡을 다시 들이마시기 위한 신앙적 준비라는 것을, 그 빈 잔이 조용히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식탁 위 빈 컵 한 잔 영성 일기의 자리
빈 컵 하나에 다시 채워지는 마음의 한 자리.

이윽고 컵에 따라 둔 보리차가 적당한 온도로 식어 갔습니다. 한 모금을 천천히 삼키니, 한 주의 작은 매듭들이 가슴 한 자리에서 함께 풀려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약속하시는 ‘쉼’은 어쩌면 잠을 자는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모금의 따뜻한 차, 한 줄의 영성 일기, 한 번의 짧은 기도, 그리고 가족의 작은 음향이 함께 어우러진 이 식탁의 시간이 이미 그 ‘쉼’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 천천히 마음 안쪽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식탁 옆 작은 창문 너머로는 동네 산책로의 가로등이 하나씩 차례로 켜져 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강아지와 함께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걸어 가는 모습이 보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작은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잠시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풍경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식탁 위의 빈 잔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니, 평범한 저녁의 풍경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한 줄의 짧은 시가 되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영성 일기를 쓴다는 것은 결국 이런 평범한 저녁의 한 장면을 ‘마음의 식탁’ 위에 한 번 더 올려놓고, 그 위에 천천히 보리차의 김이 다시 한 번 피어오르도록 두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일을 앞둔 금요일 저녁의 식탁은, 한 주의 마무리이자 동시에 새로운 한 주의 첫 호흡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빈 잔 하나가 다시 채워지고, 식탁 위의 작은 등불이 하나 켜져 있고, 가족의 음향이 가까이에 있는 자리. 그곳에서 영혼은 작은 평안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빈 컵을 두 손으로 다시 감싸 안았을 때, 오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은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분명한 결로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 위로는, 익숙한 한 줄의 초청이 여전히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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