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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쓴 한 문장 — 편지지 위에 남아 있는 온기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봉투는 이미 색이 바래 있었고, 우표는 반쯤 뜯겨 있었다. 편지지 위에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손글씨가 있었다. 스무 해 전 어느 선배가 나에게 보내 준 편지였다. 그 편지를 다시 읽으며 나는 이상하게 오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문장 자체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안부를 묻고, 자기 일과를 짧게 적고, “너의 하루가 늘 잘 견뎌지기를 바란다”라는 한 문장을 마지막에 남긴 편지였다. 그런데 그 한 문장이 오늘의 나에게 어떤 온기를 다시 건넸다.

손으로 쓴 문장은 이상한 지속력이 있다. 컴퓨터로 친 글자는 정확하지만 무게가 없다. 반면 손글씨에는 그 사람의 손목과 어깨,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이 함께 실린다. 힘을 준 자리에서는 획이 두꺼워지고, 마음이 흔들린 자리에서는 글자가 조금 기울어진다. 편지지는 그렇게 그 사람의 시간을 그대로 담아 둔다. 이십 년이 지나도 그 시간의 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손이 지나간 자리에는 사라지지 않는 무엇이 남는다.

편지를 자주 쓰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 시절 나는 밤마다 만년필로 편지를 썼다. 새벽에 우체통 앞에 서서 봉투를 넣으면 이상하게 잠이 잘 왔다. 상대의 답장을 기다리는 며칠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체로 하나의 은혜였다. 즉시 대답이 오지 않는 시간, 그 사이에 상대를 위해 기도하게 되는 며칠. 요즘 우리는 메시지를 보내고 몇 분 안에 답이 오지 않으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기술은 우리에게 빠른 대답을 주었지만, 대신 기다림의 은혜를 조금씩 잊게 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흥미로운 말을 남겼다.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사람이 편지라는 말이다.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편지라는 말이다. 이 말을 오래 곱씹으면 하루가 조금 달라진다. 오늘의 나의 문장은 무엇을 쓰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읽힐 만한 온기가 그 문장 안에 남아 있는가.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 고린도후서 3:2-3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쓴 편지, 돌판이 아니라 마음판에 쓴 편지. 이 문장은 성경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의 이미지 중 하나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낼 때는 몇 초 안에 도착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쓰시는 편지는 평생을 지나며 서서히 완성된다. 그 편지의 수신자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다. 카페의 카운터에 서 있는 아르바이트생, 지하철 옆자리의 낯선 이, 우리 아이의 담임 선생님. 우리는 매일 우리 마음판 위에 무엇을 쓸지 스스로 결정한다. 오늘 나는 조금 부드러운 문장을 쓰기로 한다.

손편지의 또 다른 미덕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로 쓰면 실수한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지만, 손편지는 한번 쓴 획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그래서 손편지를 쓰기 전에는 오래 생각한다. 어떤 문장을 남길지, 이 문장이 상대의 하루를 어떻게 만들지 상상해 본다.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한번 지나간 하루를 지울 수 없기에, 우리는 매 순간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신중함이 두려움이 되면 안 된다. 손편지는 신중하되 결국은 쓰는 행위다. 두려워서 쓰지 않는 편지는 어떤 아름다움도 갖지 못한다.

선배가 보낸 편지의 마지막 문장, “너의 하루가 늘 잘 견뎌지기를 바란다”를 이십 년 만에 다시 읽으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오래 떠올렸다. 그때 나는 스물몇 살이었고, 매일 무언가에 서툴렀고, 자주 잘못된 판단을 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저녁 나는 조금 덜 외로웠다. 온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리는 것 같은 날에도 누군가 나의 하루를 견뎌 주기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는 그런 힘을 갖는다. 그것은 한 문장의 온기 이상이다. 그 사람이 나를 잊지 않았다는 신호이자,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마음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어머니의 오래된 성경책 사이에도 편지 몇 통이 꽂혀 있다. 시집간 언니가 어머니께 보낸 것들, 그리고 돌아가신 이모가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짧은 카드. 성경책이 편지 보관함이 된 것은 아마도 그 안이 가장 오래 보관될 자리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끔 그 성경책을 열어 편지를 다시 읽는다. 이모의 손글씨는 조금 흔들려 있었고, 마지막 문장은 “언니야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라”였다. 신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어떤 문장보다 그 한 줄이 나에게는 큰 은혜였다. 사랑은 이렇게 짧고 소박한 문장으로 가장 오래 남는다.

편지에는 시간이 세 겹으로 흐른다. 쓰는 사람의 시간, 도착하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받는 사람이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시간. 이 세 겹의 시간이 편지 한 통 안에 접혀 있다. 컴퓨터로 보낸 메시지는 대개 한 겹의 시간만 갖는다. 즉시 쓰고 즉시 도착하고 즉시 잊힌다. 그러나 손편지의 세 겹은 세월과 함께 두꺼워진다. 나는 그 두꺼움을 사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얇아지지 않고 오히려 두꺼워지는 문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 각박한 세상에서 얼마나 귀한 자산인가.

요즘 나는 가끔 짧은 손편지를 다시 쓴다. 긴 편지는 아니고, 카드 한 장에 세 줄 정도의 안부를 담는 짧은 편지다. 그 편지를 받은 친구 하나는 “이걸 아직도 갖고 있어”라며 몇 년 후 사진을 보내 주었다. 서랍 한쪽에 그 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는 사진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손편지의 시간이 얼마나 길게 흐르는지 실감했다. 몇 분 만에 쓴 세 줄이 몇 년의 위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쉽게 지나가는 메시지 한 줄이 상처가 되어 오래 남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을 남길지는 결국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편지지 위의 잉크는 언젠가 바래고, 종이 자체도 조금씩 상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손편지는 시간이 지나도 그 온기를 유지한다. 물성이 있는 것들의 힘이다. 화면 위의 글자는 사라지면 흔적이 없지만, 손편지는 접혀 있어도, 서랍 한구석에 잊혀 있어도 어떤 온기를 갖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흙으로 지으시고 그 위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처럼, 편지지도 종이라는 물성 위에 사람의 온도를 담는다. 그것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오늘 나는 서랍 안의 그 낡은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어 두었다. 이십 년 전 선배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가 그 시절 나에게 남긴 한 문장은 여전히 나의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된다. 어쩌면 오늘 내가 쓰는 문장도 누군가의 이십 년 뒤에 도착할 수 있다. 손으로 쓴 문장 하나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잃지 않는 그 잔잔한 온기를, 나는 조용히 믿기로 한다.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아 낸 하루는 결코 낭비되지 않는다는 말씀 위에 오늘의 나를 다시 얹는다.

오래된 편지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간을 내어 앉으라고 청한다. 조명 아래에서 종이를 펼치고, 오래된 잉크를 다시 읽고,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조용히 겹쳐 본다. 그 겹침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스물의 나를 지금의 내가 안아 주고, 그 안아 줌 안에서 오늘의 상처가 잠시 아문다. 편지는 그렇게 우리 자신에게도 위로가 된다. 남에게서 온 문장이 결국 내 안의 나를 어루만지는 손이 되는 것이다.

오늘 저녁, 나는 아직 답장하지 못한 편지 한 통을 다시 꺼내려고 한다. 카드 한 장을 골라 서너 문장만 쓸 것이다. “요즘 잘 지내고 있느냐, 나는 여전하다, 너의 하루가 잘 견뎌지기를 바란다.” 이십 년 전 선배가 나에게 남긴 그 문장을, 이번에는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다. 문장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래 걸어 이동한다. 사랑이란 결국 그 걸음의 속도와 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오늘 나의 세 줄이 어느 서랍 안에 오래 머물러, 언젠가 다른 이의 하루를 다시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를 조용히 바라 본다. 손편지는 그렇게 시간을 견디는 사랑의 오래된 방식이고, 나는 오늘도 그 오래된 방식을 새로 배우는 중이다. 편지지 위의 첫 획을 그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 저녁, 잉크와 함께 흘러가는 그 조용한 시간이 오늘의 나에게 남은 가장 좋은 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