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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첫날 점심 후 산책길 보도블록 틈 사이 작게 흔들리는 흰 들꽃 한 송이 — 마태복음 6장 28절 들의 백합화를 다시 돌아본 영성 일기


유월의 첫날 점심 후 한 시 이십 분, 사무실 빌딩 후문을 나서서 골목길로 접어든다. 점심을 가볍게 먹고 동료들이 모두 카페로 향한 사이, 혼자 천천히 한 바퀴 도는 산책의 시간. 빌딩 뒷편 좁은 인도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화단을 끼고 도는 모퉁이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두 블록쯤 떨어진 동네 공원의 입구로 이어진다. 늘 같은 코스, 늘 같은 발걸음. 그러나 같은 길도 매일 미세하게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이 산책을 한 달쯤 이어 오면서 천천히 알게 되었다.

유월 첫날 산책길 한 송이 작고 흰 들꽃

오늘 본 풍경은 사실 어제도 그저께도 분명 같은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보도블록의 갈라진 틈 사이로 작게 솟아오른 한 송이의 흰 들꽃. 잎은 두 개, 꽃잎은 다섯 개 정도, 키는 손가락 한 마디보다 조금 작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본 적도 없을 것 같은, 그저 어느 봄날 바람에 실려 와 이 좁은 콘크리트 틈에 자리를 잡은 한 송이의 작은 야생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 한 송이 앞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는다. 다행히 골목길에는 사람이 없다.

한 손으로 콘크리트 표면을 살짝 짚으며 꽃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꽃잎 한 장의 끝이 살짝 갈라져 있고, 한가운데에는 옅은 노란빛이 점처럼 박혀 있다. 바람이 살짝 불자 가느다란 줄기가 양옆으로 두어 번 흔들리더니, 다시 처음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온다. 흔들렸다가 돌아오고, 또 흔들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그 작은 동작이 어쩐지 익숙하다. 우리의 신앙의 결도 어쩌면 정확히 이런 모양일 것이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본문의 한 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마태복음 6장의 그 익숙한 한 단락.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잠시 생각해 보라는 본문. 수고도, 길쌈도, 염려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자기 자리에서 피어 있을 뿐인데, 본문은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이 한 송이만큼 입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늘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던 본문이지만, 오늘 점심 후 이 골목길의 한 송이 들꽃 앞에서 본문이 갑자기 손에 잡힐 듯한 풍경으로 다시 다가온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 마태복음 6장 28-30절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들꽃의 아름다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본문은 우리의 시선을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이라는 한 구절. 들꽃을 입히신 그 손이 우리도 동일하게 입히실 것이라는 약속. 본문은 들꽃의 사례를 들어 결국 우리의 염려를 풀어 주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본문의 사례에 머무르며, 정작 본문이 데려가려고 하는 마지막 한 줄까지 따라가지 못한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는 부드러운 부르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이 많지 않다.

숲길 사이로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빛

골목의 들꽃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다시 천천히 일어선다. 무릎이 잠시 뻐근하다. 점심 후 산책의 의미가 어쩌면 이런 자리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의 분주함과 오후의 회의 사이, 우리의 일상의 가장 좁고 깊은 틈 안으로 한 줄기의 본문이 비스듬히 흘러 들어오는 시간. 그 시간을 일부러 만들지 않으면 좀처럼 마주할 수 없는 풍경. 영성 일기라는 작은 노트가 결국 그 풍경을 잠시 붙들어 두기 위한 도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공원의 벤치에 잠시 앉아 가방 안의 작은 노트를 꺼낸다. 가죽 표지의 모서리가 조금 닳았다. 한 페이지를 펴고 오늘의 한 줄을 적는다. 유월 첫날, 보도블록 틈 사이 작은 들꽃 한 송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지 못한 한 줄. 한 줄을 적은 뒤 그 아래에 다시 작은 글씨로 본문 두 어절을 옮겨 적는다.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두 어절이 한 페이지의 한가운데에 외따로 놓이자, 마치 그 두 어절을 둘러싼 페이지 전체가 한 송이의 들꽃처럼 가만히 흔들리는 것 같다.

한 가지 작은 의문이 잠시 마음을 스친다. 들꽃은 자신이 솔로몬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들꽃은 누구의 시선을 끌기 위해 피어난 것이 아니며, 누구의 비교 대상이 되기 위해 자라난 것도 아니다. 들꽃은 그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햇빛과 비를 받으며 한 송이의 자신으로 피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본문은 그 들꽃의 모습 안에서 가장 깊은 신학을 길어 올린다. 어쩌면 우리가 본문 앞에서 자주 흔들리는 까닭은, 우리가 너무 자주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먼저 묻고 그분께 어떻게 입혀질 것인가를 나중에 묻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은 그 어순을 다시 뒤집어 준다. 먼저 그분이 입히신다. 그리고 그 입혀진 자리가 결국 가장 아름다운 자리다.

오월 한 달은 이상하게 비교가 많은 달이었다. 분기 평가가 있었고, 작은 회의에서도 동료들의 결과가 자연스럽게 비교되어 올라왔으며, 가족 행사에서도 친지의 가벼운 한마디들이 마음 한구석에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그 한 달 동안 자주 떠올랐던 단어는 충분함이라는 단어였다. 무엇이 충분함의 기준인가. 어떤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이 정도면 됐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마음이 자주 무거웠다. 그런데 오늘 골목길의 한 송이 들꽃이 그 질문에 가장 단순한 답을 내놓는다. 들꽃은 자기 옆 들꽃을 돌아보지 않는다. 들꽃은 보도블록 안쪽에 더 좋은 자리가 없는지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들꽃은 단지 자기에게 허락된 한 뼘의 틈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햇빛과 비를 따라 그저 자기 자신으로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본문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라는 표현이 어쩌면 그 충분함의 신학을 가장 단정하게 요약한다.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골목길의 그 들꽃은 내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이고, 어쩌면 며칠 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문의 한 줄은 오늘 점심 이후의 모든 시간 안에 그대로 남는다.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그 한 줄을 손바닥 안에 가만히 쥐고 오후의 첫 회의실 문을 다시 연다. 점심 후 산책의 한 시간이 결국 본문 한 줄로 압축되는 순간, 영성 일기는 비로소 그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 한 송이의 작은 들꽃 앞에서 멈춰선 그 짧은 일분이, 어쩌면 오후의 모든 결정들을 가만히 받쳐 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를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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