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이라는 요일은 어딘가 어정쩡하다. 월요일의 새 출발도 아니고, 금요일의 안도감도 아니다. 한 주의 정중앙, 가장 무거운 자리에 놓인 요일. 오후 두 시쯤이면 머릿속은 이미 절반쯤 흐려져 있고, 점심을 먹은 뒤의 나른함이 어깨 위에 살짝 내려앉는다. 그날도 그랬다. 화면 가득 펼쳐진 문서 앞에 앉아 있다가, 문득 책상 옆 창가로 햇살 한 자락이 길게 들어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오래된 사무실의 창은 그리 크지 않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라곤 옆 건물의 벽돌과, 벽 모서리에 자란 작은 화분 하나가 전부다. 그러나 그 좁은 창으로도 햇빛은 매일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각도로 들어왔다. 마치 그 자리가 자기 자리인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노트북을 잠시 닫고, 창가로 의자를 조금 옮겨 앉아 보았다. 햇살이 손등 위에 부드럽게 닿았다.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잠깐 사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가라앉았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 시편 46:10
시편 46편은 사실 격동의 노래다. 산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솟구치는 장면이 앞부분에 펼쳐진다. 그 한복판에서 시인은 갑자기 이 한 마디를 던진다. 가만히 있으라. 멈추어 보라. 가장 흔들리는 자리에서 가장 고요한 권면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멈춤은 도피가 아니라, 그분이 누구이신가를 다시 인식하는 가장 짧은 신앙의 자세다. 사무실 창가의 햇살은 마치 그 한 절을 일러주듯, 내 손등 위에 잠시 머물러 있었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우려 책상 위에 두고, 휴대폰을 잠시 엎어 두었다. 그저 그 정도였다. 일을 멈춘 것도 아니고, 멀리 떠난 것도 아니다. 다만 5분, 어쩌면 7분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천장의 무늬를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창가로 옮겼다. 햇살은 어느새 책상 위 메모지로 자리를 옮겼고,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메모지의 흰 면이 환하게 빛났다. 그 흰 면이 마치 비어 있는 기도 자리 같았다. 평소에는 무언가를 빨리 적어 채워야 할 빈 공간이었던 그 자리가, 오늘은 비어 있어서 충분한 자리로 다가왔다.
우리는 너무 자주 무언가를 가득 채워야 비로소 신앙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더 많은 묵상, 더 많은 기도문, 더 많은 봉사, 더 많은 결심. 그러나 시편의 그 한 절은 정반대를 가리킨다. 비우라. 잠시 멈추어라.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를 네가 알게 된다. 햇살을 마주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상하게도 어제부터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문장 하나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문장이 더 이상 나를 뒤쫓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수요일 오후의 멈춤이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영성은 별도의 시간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어느 모서리에 슬며시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사무실 한복판, 회의 자료 옆, 빈 메모지 위, 차 한 잔 옆.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멈춤을 결심할 짧은 용기일지도 모른다. 일이 끝난 뒤에야 기도하겠다고 미루는 마음, 회의가 끝난 뒤에야 마음을 들여다보겠다는 다짐. 그 모든 미룸 사이로 오늘 햇살은 한 걸음 먼저 들어왔다. 마치 “지금 이 자리에서도 충분하다”고 일러주듯이.

가만히 있어 보면, 그 안에 들리는 것이 있다. 키보드 옆 작은 시계의 초침 소리, 옆 자리 동료가 페이지를 넘기는 종이 소리, 복도 쪽에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가는 발자국. 평소에는 모두 소음이라 부르며 외면해 온 소리들이 오늘은 한 곡의 잔잔한 음악 같다. 그 안에 어떤 분이 함께 앉아 계신다는 감각이 슬며시 다가온다. 거창한 임재의 체험이 아니라, 그저 같이 있다는 정도의 감각. 그러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작은 감각이 하루의 무게를 다시 들어 올릴 힘이 된다.
오후 두 시 십오 분쯤, 짧은 멈춤을 마치고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같은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져 있었다. 일을 빨리 끝내겠다는 마음 대신, 한 줄 한 줄을 천천히 살피는 마음이 자리에 들어와 있었다. 빠른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 잠시 멈춘 사람이 결국 더 깊이 도착한다는 사실을 햇살이 가르쳐 준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그 명령은 게으르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 안의 폭풍이 아닌, 그분의 잔잔하심에 자기를 정렬하라는 부드러운 부름이다.
수요일이 끝나가는 저녁, 퇴근길에 다시 사무실 창문을 한 번 돌아보았다. 햇살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옅은 노을빛이 들어와 있었다. 창은 여전히 좁고, 풍경은 여전히 평범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매일 같은 시간에 빛이 도착한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은 영성의 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오늘은 인정하기로 했다. 내일도 두 시쯤이면 같은 자리에 같은 빛이 다시 올 것이다. 그때도 잠시 의자를 옮기고, 차를 한 잔 우리고, 가만히 있어 보려 한다.
영성은 어쩌면 거창한 결심의 모음이 아니라, 매일 두 시 사무실 창가에서 5분을 비우는 단순한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그 짧은 멈춤이 모이고 모이면, 어느 날 그 분이 누구이신가를 가만히 알게 되는 자리에 우리는 도착해 있을 것이다. 시편의 그 한 절을 믿어 보고 싶다. 가만히 있어 보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분은 이미 자기 자신을 환히 드러내고 계신다는 사실을. 오늘 당신의 책상 위에도, 잠시 햇살이 내려앉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그 햇살을 떠올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음이 오늘 하루를 묘하게 다시 끌어올렸다. 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큰 사건으로 변하기보다, 작은 멈춤들이 켜켜이 쌓여 어느 날 다른 결로 자라난다. 수요일 오후 두 시는 이제 내게 의미를 가진 시간이 되었다. 시계의 바늘이 그 자리에 도착하는 순간, 한 번 멈추어 보라는 부드러운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종소리에 응답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노트북을 잠시 닫고, 차 한 잔을 우리고, 창가로 의자를 옮기는 그 작은 동작이면 충분하다. 그 동작 자체가 이미 한 줄의 짧은 기도다.
한 가지 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한 번씩, 자기 책상에서 가장 가까운 창을 5분만 바라보는 일이다. 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햇살일 수도 있고, 비일 수도 있고, 옆 건물의 회색 벽일 수도 있다. 다만 그 5분만은 화면을 닫고 자기 자신을 그 자리에 놓아두자. 그 짧은 멈춤이 누적되어, 어느 날 우리는 흔들림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리를 마음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