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 사십오 분, 거실의 가장자리 어둠은 아직 푸르스름하다. 식탁 끝에 작은 등 하나를 켜고, 어제 펴 두었던 페이지를 다시 펼친다. 마가복음 10장의 말씀이 거기 있다. 어제 새벽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한 줄이 천천히 떠오른다. 어린이를 어떻게 받으라 하셨는지, 어떤 자세로 그분 앞에 나아가라 하셨는지에 대해서. 같은 본문이어도 어떤 새벽에는 가만히 닫혀 있고, 어떤 새벽에는 천천히 열린다. 본문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 앞에 앉은 사람의 자세가 매일 조금씩 다른 까닭이다.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마가복음 10장 14-15절)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거실 옆방에서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가늘게 들려온다. 아직은 모든 것이 처음인 사람의 숨이다. 어제 처음 본 별을 어제 그대로 기억하고, 처음 만난 사람을 처음 그대로 신뢰하는 그런 호흡. 그 호흡 옆에 앉아 묵상한다는 것은 작은 부끄러움을 동반한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계산에 길들여져 있고, 너무 많은 손익의 표를 마음 한쪽에 펼쳐 놓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의 새벽은 종종 일정과 회의의 목록 위에서 시작되고, 기도조차 그 목록의 한 줄이 되어 버리곤 한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모범으로 드신 까닭은, 어린아이가 도덕적으로 깨끗해서가 아닐 것이다. 아이도 욕심을 내고 떼를 쓴다. 다만 아이는 자기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숨기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운다. 무서우면 손을 내민다. 안기면 곧장 안긴다. 어린아이의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래서 그 가난한 손이 가장 자연스럽게 하늘을 향해 펴진다. 가난을 가난으로 인정하는 일은, 어른에게 가장 어려운 영적 훈련 중 하나가 된다. 우리는 가난을 위장으로 가리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나는 어른이 된 뒤로, 부족한 것을 부족하다고 말하는 일을 많이 잃어버렸다. 빈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를 무엇으로든 채우려 했고, 채워지지 않으면 채워진 척이라도 하려고 했다. 무릎이 약하면 강해 보이는 자세를 연습했고, 마음이 흔들리면 흔들리지 않는 단어들을 골라 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기도가 짧아졌다. 더 이상 무엇을 구해야 할지조차 잊은 사람처럼 앉아 있는 새벽이 늘어났다. 입이 닫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닫혀 있었던 것이다.
오늘 새벽, 마가복음의 그 장면 앞에서 내가 본 것은 한 무리의 어른들이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막아섰다. 선생님은 더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셔야 한다고, 더 큰 일을 하셔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막아섬에 노하셨다. 작고 약한 한 사람을 가로막는 일에 그분은 분노하시는 분이었다. 사랑의 정중함은 때로 분노의 모양을 갖는다는 것을, 그날 제자들은 처음 배웠을지 모른다. 사랑은 무관심과 다른 만큼이나 분주함과도 다르다. 사랑은 누군가의 작음을 기다려 주는 시간 위에 세워진다.
그분은 아이들을 안으셨다.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셨다. 그 장면에서 한 가지가 마음에 남는다. 축복은 거리를 두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것. 손이 머리에 닿고, 시선이 마주치고, 몸의 온기가 옮겨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 가까움을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시면 우리가 가진 작은 모순들이 다 들켜 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거리를 유지한 채, 안전한 경배의 자세 안에 머물려고 한다.
그래서 어른은 종종 하나님 앞에서 회의를 진행하듯 앉는다. 보고서를 펼치고, 결산을 하고, 잘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정리한 뒤 결론을 기다리듯이. 그러나 어린아이는 회의를 하지 않는다. 무릎에 올라앉는다. 머리를 기댄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거기 있다. 오늘 새벽 나는, 그 무릎이 어떤 자리인지를 다시 생각한다. 보고서가 아니라 무릎. 결산이 아니라 안김. 평가가 아니라 인정.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어린이날 새벽이 내게 들려주는 한 마디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 어린이날 아침의 햇살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 가까운 어른 한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아이를 막아서지 않는 것, 누구의 손을 거두지 않는 것, 약한 자의 작은 요청을 큰 일정의 뒷줄로 미루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한 번 더 어린아이가 되는 것. 그분의 무릎에 올라앉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른의 신앙이 아이의 신앙으로 다시 회복되는 길이라고, 본문은 조용히 일러 준다.

잠시 후, 옆방의 아이가 깨면 함께 아침을 먹을 것이다. 우유 한 컵, 식빵 한 조각, 잼이 묻은 손가락. 그 손가락이 식탁 위로 닿을 때마다 나는 오늘 새벽의 말씀을 떠올리려 한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그 한 줄을.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멀리 떠나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가까움은 늘 우리의 결단이 필요한 거리여서, 매일 새벽 한 번씩 다시 결단해야 한다. 결단이라는 단어가 무거우면, 무릎이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좋다.
아이는 단어 하나로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있다. 엄마, 아빠, 그리고 가끔은 그저 이름만 부른다. 그 호명 안에 모든 신뢰가 들어 있다. 어른의 기도가 자꾸 길어지는 것은, 신뢰가 부족해서 말이 많아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새벽, 길게 늘어놓고 싶은 문장들을 가만히 접어 두고, 한 단어로만 부르고 싶어진다. 아빠. 그분께서 응답으로 무엇을 주실지 미리 정리하지 않은 채로, 그 호명 하나만으로 한참을 앉아 있어 보고 싶다.
식탁 위에 놓인 머그잔에서 김이 한 가닥 올라온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쥘 때, 나는 늘 한 가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손이 차가워야 따뜻함을 안다는 것. 비어 있어야 채움을 안다는 것. 어린아이의 손이 그토록 빨리 따뜻해지는 것은, 그 손이 자기 차가움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차가움을 부끄러움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손이 따뜻한 손을 만나려면, 먼저 차가움을 인정해야 한다. 그 인정이 곧 기도의 시작이라는 것을, 머그잔의 온기가 한 번 더 가르쳐 준다.
오늘 만날 사람들의 이름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아이의 이름, 아내의 이름, 사무실에서 마주칠 동료들의 이름. 이름을 부르는 일은 작은 책임을 가진 행위다. 어린이날의 첫 결심을 굳이 큰 것으로 잡지 않으려 한다.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한 번 더 마음으로 불러 주는 것, 그 사람의 작은 부탁을 큰 일정의 뒷줄로 밀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올 때 한 걸음만 더 천천히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 그 정도면 충분히 어린아이를 닮은 어른의 하루가 될 것이다.
본문을 한 번 더 읽는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그 단호함 앞에서, 나는 두 가지 대답을 동시에 듣는다. 하나는 무겁다. 어른의 자세로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는 단호함이 거기 있다. 다른 하나는 가볍다. 어린아이의 자세로는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거기 있다. 결단코와 누구든지가 한 문장 안에 있는 까닭은, 그 문이 너무 좁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세가 늘 너무 컸기 때문이다. 자세를 낮추는 일이 곧 문을 통과하는 일이라고, 어린이날 새벽이 다정하게 일러 준다.
등을 끄고 일어선다. 부엌에서 작은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가족 누군가가 깬 모양이다. 새벽의 묵상은 늘 일상의 기척으로 이어져야 한다. 묵상이 부엌의 발소리와 단절되면, 그 묵상은 어른의 회의실에 갇혀 버린다. 묵상이 발소리와 이어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신앙이 어린아이의 무릎에 가까워진다. 오늘 어린이날의 하루가, 그 무릎의 자세에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작고 가난하고 따뜻한 자세에서.
오늘 새벽의 큐티는 여기서 멈춘다. 결론이 명료하지 않아도 좋다. 어린아이의 기도가 늘 명료하지는 않으니까. 다만 한 가지, 기도의 첫 자리를 회의실이 아니라 무릎으로 옮기는 일. 그것 하나면 오늘 하루는 이미 새로 시작된 것이다. 어린이날의 햇살이 거실 끝까지 길게 들어온다. 식탁 위 펼쳐진 페이지가 천천히 환해진다. 나는 등을 끄고 잠시 더, 그분 앞에 작게 앉아 있는다. 어린아이의 손바닥처럼 펴진 마음 하나가 오늘의 첫 페이지가 되도록, 가만히 그 자세 안에 머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