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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손에 빚진 하루 — 무명의 신앙에 대하여


아침에 신문을 가져다 놓는 손이 있다. 새벽 기도회의 의자를 정돈해 두는 손이 있다. 누가 보지 않는 시간에 화단에 물을 주고 가는 손도 있고, 추운 날 교회 입구의 매트를 가지런히 펴 두는 손도 있다. 이름이 적힌 적도 없고, 누구에게 보고된 적도 없는 손들이다. 우리는 그 손들의 결과만 본다. 정돈된 의자, 깨끗한 마룻바닥, 따뜻한 출입구. 그리고 그 결과를 누가 만들었는지 거의 묻지 않는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신앙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자꾸 위로처럼 들린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가장 잘하는 일이 알려지지 않는 채로 신앙의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손해라고 느껴질 법도 한데, 그 자리에 오래 머문 분들의 표정에는 도리어 무언가 깊은 평안이 있다.

이른 아침의 풍경

사도 바울은 이런 자리를 권면 한 줄로 단단하게 붙들어 둔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 빌립보서 2:3-4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는 말은 오늘 더 무겁게 들린다. 작은 일에도 이름표를 붙이는 시대이다. 누가 했는지가 누가 한 일인지보다 자주 더 크게 다루어진다. 그 흐름을 거슬러, 사도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도 정성을 다하라고 말한다. 자기 일을 돌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돌아보라고 말한다. 이 권면 앞에서 무명의 손들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이 권면이 살아 움직이는 자리이다.

어머니는 늘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지으셨다. 우리는 그 밥상이 어떻게 차려지는지 거의 본 적이 없다. 일어나 보면 이미 김이 오르고 있었고, 우리가 자리에 앉으면 어머니는 이미 다른 일에 손이 가 있었다. 그 손이 한 일들의 수를 우리는 결코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분의 신앙은 그렇게 닮아 있다. 새벽에 일어나, 누가 알기도 전에 한 자리를 정돈해 두고,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 다음 일로 옮겨 가는 손. 이름이 거기 적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 도리어 그 자리의 신실함을 증명한다.

교회의 어떤 분은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음향을 맡으신다고 했다. 한 번도 무대 위에 오른 적이 없고, 설교자의 이름이 적힌 안내지에 자기 이름이 함께 들어간 적도 없다. 그러나 그분이 자리를 비운 한 주, 음향이 흔들리면서 비로소 우리는 그 자리에 평소 누가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신앙의 큰 부분이 그렇게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없을 때 비로소 보이는’ 자리에서 흘러간다. 어쩌면 좋은 신앙이란 결국 그런 자리를 즐겁게 견디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손길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도 다시 천천히 곱씹게 된다. 이 말은 자기를 비하하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한 뼘 더 크게 보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가진 사람 곁에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펴진다. 비교의 무게가 잠시 내려놓이고, 우리도 누군가를 그렇게 봐 줄 수 있을까 하는 작은 다짐이 마음에 떠오른다. 신앙은 그렇게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결인 듯하다. 큰 가르침으로가 아니라, 곁의 한 사람의 무명한 자세를 통해서.

무명이라는 말이 차갑게 들릴 수도 있다. 알아주지 않는 자리, 빛이 닿지 않는 자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무명의 자리는 다르게 보면 가장 자유로운 자리이기도 하다. 평가를 받지 않으니 평가의 무게에서 풀려나 있고, 비교를 당하지 않으니 비교의 피로에서 떨어져 있다. 그 자리에서 한 일은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다만 그 일이 그 자리에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이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에, 손이 움직인다. 이런 손은 피로가 적다. 박수를 위해 움직이는 손은 박수가 끝나면 무거워지지만, 사랑이 흘러서 움직인 손은 일이 끝난 뒤에도 가볍다.

물론 이 자리가 늘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날에는 ‘이 자리에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슬며시 올라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질문이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사람이라는 증거이다. 그런 날에는 한 가지를 기억하면 좋다. 무명의 자리는 결코 빈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를 지키시는 분이 늘 함께 계신다. 사람의 시선 너머에 더 큰 시선이 있고, 사람의 보상 너머에 더 깊은 보상이 있다. 그 시선이 우리를 보고 계실 때, 무명은 더 이상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가까이 함께하시는 분과 단둘이 머무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다. 그 시간을 자주 가져 본 사람일수록, 사람들의 박수보다 그 단둘의 시간이 더 깊은 만족을 준다는 것을 안다.

성경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일을 한 사람들 중 다수는 그 일이 일어난 순간에는 무명이었다. 베드로 안드레의 어머니, 다섯 떡 두 마리 물고기를 들고 있던 한 아이, 새벽에 무덤을 향했던 여인들, 다락방의 한 모퉁이를 내어 준 누군가의 식구들. 이름이 본문에 짧게만 적혔거나 아예 적히지 않은 분들이 결정적인 자리에 서 있었다. 신앙의 역사는 이름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두꺼운 무명의 역사 위에 서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닮으려고 할 때, 큰 이름만 떠올리지 말고 이 무명의 결을 함께 떠올렸으면 좋겠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이름 모를 손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새벽을 위해, 누군가의 마음을 위해, 누군가의 한 끼 식사를 위해. 그 손들의 무게가 모여 우리의 일상을 지탱한다. 그리고 그 손들의 자리에서 한 사람의 신앙이 가장 깊이 자라난다는 것을, 사도의 권면 앞에서 다시 배운다. 우리도 그런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박수가 적은 자리에서도 즐겁게 머무는 한 사람이 되기를. 사월의 끝, 책상 앞에서 짧게 마음으로 적어 둔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기록한다. 누군가의 무명을 발견하는 눈도 함께 길러지기를. 식탁 위에 따뜻한 국이 올라온 그 손, 회의실의 작은 정돈을 한 그 손, 모임이 끝난 자리의 의자를 다시 챙긴 그 손을 알아채는 눈을. 발견한 자리에서 짧은 인사 한마디 건네는 입을. 그 작은 주고받음이 모이면, 무명의 자리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자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