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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향기 끝에 매달린 짧은 기도 — 사월 골목에서


골목 어귀를 돌자 라일락 향기가 먼저 마중을 나와 있다. 보랏빛 작은 송이들이 바람결에 흔들릴 때마다 향이 조금씩 풀린다. 향이라는 것은 묘하다. 눈으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안고 온다. 향기를 맡는 순간, 시간의 어떤 자리들이 한꺼번에 깨어난다. 어머니가 빨래를 널던 마당, 학교에서 돌아오던 저녁의 골목, 처음 누군가에게 마음을 들켰던 사월의 밤. 라일락은 봄마다 같은 모습으로 피어나지만, 그 향기에 실려 오는 풍경은 해마다 다른 결로 다가온다.

이상하게도 라일락 향기 끝에는 자주 짧은 기도가 매달려 있다. 거창한 기도가 아니라, 거의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한 마디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기를. 그 사람이 잘 지내기를. 마음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향이 사라지기 전에 떠오르는 그 짧은 문장들은, 어쩌면 우리가 평생 가장 자주 드리는 기도일지 모른다.

라일락 꽃과 빛

그래서 사월의 골목을 걸을 때마다 떠오르는 한 구절이 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립보서 4:6-7

이 구절을 처음 만난 것은 오래전 어느 봄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어떻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시험과 진로와 사람과 미래와, 염려할 것은 늘 손에 잡힐 만큼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이 구절은 염려를 없애라는 명령이 아니라, 염려가 머물 자리를 바꾸라는 초대였다. 염려를 마음 한가운데에 두지 말고, 기도의 자리로 옮겨 놓으라는 권유. 그러면 그 자리에 평강이 들어와 앉을 것이라는 약속.

라일락 향기가 짧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너무 진하지도 않고, 너무 멀리 가지도 않으며, 가까운 자리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다. 우리의 기도도 자주 그렇다. 길지 않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짧은 한 마디가 마음의 한 자리를 잠깐 환하게 만들고 사라진다. 어쩌면 향기와 기도는 같은 결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고,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마음에는 머무는 것.

골목길을 더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작은 담벼락이 나오고, 담벼락 옆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를 라일락이 한 그루 서 있다. 키가 그리 크지 않아 향기가 사람의 코앞까지 내려온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가방을 든 학생, 손을 잡은 노부부, 이어폰을 낀 직장인,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 모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들이쉬고, 어떤 표정을 짓고, 다시 자기 길로 걸어간다. 그 짧은 멈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우리는 모두 향기 앞에서 잠시 같은 자리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사람들이구나.

봄날 골목길

빌립보서의 이 구절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감사함으로’라는 작은 단어 때문이다. 기도와 간구와 감사. 셋이 한자리에 묶여 있다. 감사는 자주 결과 뒤에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도는 감사를 기도의 옆자리에 놓는다. 아직 응답이 오기 전에도 감사할 수 있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은 채로도 감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일락 향기는 그 감사의 작은 모형 같다.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도, 다만 향기 한 줌이 거기 있다는 사실 하나로 잠시 마음이 풀어진다. 감사도 그렇게 시작된다. 큰 응답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주어진 작은 향기 하나에 마음이 잠시 환해지는 것.

저녁이 깊어 가면 라일락의 향기는 조금 더 짙어진다. 낮의 분주함이 가라앉은 자리로 향기가 천천히 퍼진다. 어떤 어른이 말했다. 봄의 향기는 마음의 문이 닫혀 있는 사람에게는 들어가지 못한다고.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의 어떤 문 하나가 잠깐 열려 있다는 뜻이라고. 그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오늘 하루, 어떤 문은 닫혀 있었고 어떤 문은 열려 있었을까. 향기 앞에서야 비로소 그 문들의 안부가 묻힌다.

골목을 다 걸어 나올 즈음, 향기는 이미 옷자락에 옅게 배어 있다. 굳이 잡지 않아도, 굳이 가두지 않아도 향기는 그렇게 따라온다. 평강이라는 단어를 사도가 했던 그 약속의 결로 다시 떠올린다. 평강도 어쩌면 그렇게 따라오는 것일지 모른다.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를 비워 두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그 평강이 어느 결엔가 들어와 앉아 있다. 우리가 평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 그 자리가 너무 좁으면 평강도 비좁게 들어왔다가 금세 자리를 잃고 떠난다. 그래서 사월의 산책은 마음의 자리를 조금 넓히는 일에 가깝다. 향기를 맞이하는 만큼, 기도를 흘려 보내는 만큼, 어느새 마음 안쪽에 평강이 머물 자리가 한 뼘쯤 더 마련되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라일락이 진 자리에 다른 봄꽃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영산홍이 붉게 일어서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담장 아래에 작게 피어 있다. 한 가지 꽃이 지면 다음 꽃이 피고, 한 가지 향기가 사라지면 다른 향기가 자리를 잇는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골목이 알려 준다. 지금의 한 마디가 닿지 못한 듯해도, 그 뒤에 따라올 또 다른 한 마디가 있다. 한 계절이 다 지나도록 우리의 기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봄이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면,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멈춤이다. 향기 앞에서 한 번 멈추는 일, 그 멈춤 가운데 짧은 기도 한 줄을 흘려 보내는 일, 그리고 다시 길을 걷는 일. 라일락은 오래 피어 있지 않을 것이다. 며칠 뒤면 보랏빛은 색이 바래고, 향은 다른 꽃들에게 자리를 내어 줄 것이다. 그러나 그 짧음이 도리어 가르치는 것이 있다. 모든 좋은 것은 짧은 시간 안에서도 충분히 우리를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 사월의 골목, 라일락 향기 끝에 매달린 짧은 기도 하나가 오늘 하루를 살아 내게 한다. 그 기도는 어디에도 적히지 않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향기처럼, 그 기도는 분명히 어딘가에 닿아 있다. 닿음의 증거가 우리 손에 들리지 않을 뿐, 닿음 자체는 일어나고 있다. 봄은 그 사실을 매년 같은 향기로 다시 알려 준다. 사월의 끝, 한 송이 라일락 앞에서 우리가 한 번 더 마음의 문을 여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