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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만지며 — 봄날 텃밭에서 쓴 짧은 영성 일기

sangkist

봄이 깊어지는 사월의 끝자락, 작은 텃밭에 앉아 흙을 만진다. 손가락 끝에 묻은 검은 흙은 차갑고 부드럽다. 영성 일기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을 때보다, 오히려 이런 자리에서 마음이 먼저 정직해진다. 뿌려 둔 씨앗 옆에 앉아,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묵상이 된다.

씨앗이 흙 속에 묻혀 있는 동안 우리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믿는다. 흙 속의 어둠은 죽음의 어둠이 아니라 생명을 빚는 어둠이라는 것을. 신앙도 그런 자리가 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고, 마음이 메마른 것 같은 시간.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길은 쉬지 않는다.

봄날 텃밭의 작은 길
흙 속에 묻힌 씨앗처럼, 우리의 신앙도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란다.

흙을 만지며 떠오른 생각들

도시에서 살다 보면 흙을 만질 일이 거의 없다. 손은 늘 키보드 위에 있거나, 핸드폰 화면 위에 있거나, 종이 위에 있다. 그러나 흙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이다. 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그 오래된 이야기는, 흙을 만져 본 사람만이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흙으로부터 와서, 흙을 가꾸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 주어진 시간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른다.

흙을 만지면서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좋은 흙일수록 어둡고 부드럽다는 것이다. 메마르고 단단한 땅에서는 어떤 씨앗도 쉽게 자라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깊이 갈아엎어진 마음, 눈물로 적셔진 마음, 부드럽게 부서진 마음. 그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떨어질 때 비로소 깊이 뿌리내린다. 단단해 보이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다. 부드러워질 줄 아는 것이 진짜 강함이다.

기다림이라는 영적 훈련

씨앗을 심고 나면 우리는 매일 그 자리를 들여다본다. 오늘은 싹이 났을까, 내일은 보일까. 그러나 식물은 우리의 시간표대로 자라지 않는다. 어떤 씨앗은 일주일이면 싹이 트고, 어떤 씨앗은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 자연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 사이에는 늘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를 견디는 것이 곧 기다림이라는 영적 훈련이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 중 하나다. 기다리는 사람은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살피고, 잡초를 뽑는다. 응답이 보이지 않아도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고,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도 말씀 앞에 머무르기를 그치지 않는다. 영성 일기를 쓰는 일도 그런 기다림의 일부다. 오늘 별일이 없었어도 한 줄을 적고, 내일도 또 한 줄을 적는다. 그렇게 쌓인 한 줄들이 어느 날 돌아보면 한 권의 책이 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천국을 자라나는 씨앗에 비유하셨다. 사람이 자고 깨고 하는 사이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도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평범한 시간 속에서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난다. 그래서 작은 일에 신실한 사람이 결국 큰 일에도 신실하다.

저녁 무렵 창가에 머무는 부드러운 빛
저녁의 빛은 더 이상 강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 가장 깊은 위로가 있다.

저녁이 가르쳐 주는 것

해가 기울어지면서 텃밭에도 저녁이 찾아온다. 새벽의 빛이 약속이라면, 저녁의 빛은 위로다. 새벽의 빛이 시작이라면, 저녁의 빛은 돌아봄이다. 우리는 새벽에 받은 빛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저녁의 빛 앞에서 조용히 점검한다. 그것이 진짜 영성 일기의 자리다.

저녁이 되어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오늘 흙을 만지며 떠오른 생각들을 한 줄, 한 줄 적어 본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오늘 하루 내가 어디에서 잠시 멈추었는지, 어떤 사람의 얼굴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는지, 어떤 말씀이 내 안에 머물렀는지. 그것을 정직하게 적는 것만으로도 영성 일기는 충분히 그 자리를 다한다.

때로는 적을 것이 없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그저 한 줄로 쓴다. 오늘은 별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함께 계셨음을 믿습니다. 그것이 거짓 없는 믿음이다. 일기는 우리가 자랑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우리가 정직해지기 위한 글이다. 그리고 정직해질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로 자란다.

오늘의 영성 일기, 한 줄

오늘은 작은 텃밭에 앉아 흙을 만졌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흙처럼,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압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우리를 빚어 가시는 그분의 일하심, 그것이 오늘 저의 가장 큰 위로였습니다. 내일도 다시 텃밭으로, 다시 책상으로, 다시 사람들 사이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 모든 자리에서 오늘 받은 평안이 작은 등불처럼 계속 빛나기를 소망하며 하루를 마칩니다.

영성 일기는 거창한 신앙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매일의 평범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간 흔적이다. 누구도 읽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가 다시 읽었을 때, 그 안에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분명히 보인다면, 그 일기는 이미 충분히 거룩하다.

덧붙이는 짧은 단상

일기를 다시 펼쳐 보면, 지난해의 같은 봄날에 나는 무엇을 적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때의 나는 무엇 때문에 흔들렸고, 무엇 때문에 감사했을까.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당시에는 무거웠던 일들이 지나고 나면 가벼워지고, 별것 아니라고 여겼던 작은 친절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영성 일기는 그런 시간의 거리감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오늘의 자리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내일의 자리에서는 분명히 보게 된다.

봄의 텃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의외로 단순했다. 한참을 흙을 만지다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본 그 짧은 순간. 푸른 하늘 한가운데로 흰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 보지 않아도 구름은 흐르고, 누군가 적지 않아도 시간은 지나간다. 그 자명한 사실 앞에서 마음이 조용해졌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의 시간은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그 신뢰가, 텃밭의 흙냄새와 함께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저녁을 맞이하며 오늘의 일기를 마친다. 내일은 또 다른 한 줄을 적게 될 것이다. 그 한 줄이 어떤 모양이든, 한 분 앞에 정직하게 적힌 한 줄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분은 우리의 글의 길이를 측정하지 않으시고, 다만 그 글을 적은 마음의 자리를 보신다. 영성 일기란 결국, 매일 그 자리로 돌아가는 작은 발걸음의 기록이다.


오늘의 말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 창세기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