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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친 늦봄 아침 공원 길 위 한 뼘 웅덩이에 비친 가로수의 흔들림 —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을 가만히 떠올린 산책


비 그친 아침 공원 느티나무 아래 작은 벤치 한 자리

밤사이 조용히 비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아침에 베란다 창문을 열자 한층 짙어진 흙냄새와 풀냄새가 한꺼번에 들이쳤다. 비 그친 늦봄의 공기는 무언가 묵직하면서도 가벼웠다. 마치 어제까지 어깨에 얹혀 있던 짐 하나가 슬며시 풀려나간 듯한 산뜻함이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동네 공원으로 나섰다. 아직 출근 시간이 되지 않은 이른 아침이라 길 위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보도블록 위에 떨어진 작은 물웅덩이를 피해 걸어가다가, 그 안에 비친 하늘 한 조각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 작은 웅덩이 안에도 분명히 하늘이 담겨 있었다. 큰 호수가 아니어도, 큰 강이 아니어도, 한 뼘의 물웅덩이도 하늘을 담을 수 있었다.

비 그친 아침, 공원 벤치에 앉아

공원에 도착해 가운데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잘 보이지 않던 작은 벤치 하나가 키 큰 느티나무 아래에 놓여 있었다. 그 벤치에 가만히 앉아 보았다. 나무 잎새 사이로 떨어진 빗물이 아직 마르지 않아, 가끔 한 방울씩 옷깃 위로 떨어졌다. 그 작은 물방울이 어쩐지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공원의 풍경은 평소와 같지만, 비 그친 아침의 풍경은 어제와는 분명히 달랐다. 잎새의 색이 한 톤 짙어져 있었고, 흙길 위에는 새들이 남긴 작은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 있었다. 멀리서 비둘기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와 벤치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다른 쪽으로 사라졌다. 작은 생명들이 비 그친 아침을 자기 방식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벤치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옅게 끊어진 사이로 푸른빛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 푸른빛은 어제의 푸른빛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같은 하늘이지만, 비가 다녀간 자리에 다시 펼쳐진 하늘은 어딘가 한층 맑아 보였다. 비는 단지 땅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 자체를 한 번 씻어내는 일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시도소이다

— 예레미야애가 3:22-23

가만히 마음에 한 구절이 떠올랐다. 진멸되지 아니함. 그 말이 비 그친 아침의 공원과 묘하게 어울렸다. 우리는 어제도 살아남았고, 오늘도 살아남았다. 어떤 날은 마음이 무너지는 듯해도, 그 무너짐 위로 또 한 번 비가 다녀가고, 비 그친 자리에 다시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떤 분의 인자하심이라는 깨달음이 가만히 가슴 한쪽에 내려앉았다.

비 그친 길 위 한 뼘 웅덩이에 비친 가로수

한 뼘 웅덩이에 담긴 하늘 한 조각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어느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 것은 또 다른 작은 물웅덩이 때문이었다. 보도블록 사이의 좁은 틈에 빗물이 고여 만들어진 한 뼘의 웅덩이였다. 그 안에 키 큰 가로수의 우듬지가 거꾸로 비쳐 있었다. 가지의 흔들림까지 그 안에서 함께 흔들렸다.

한 뼘의 웅덩이 안에 키 큰 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담겨 있었다. 그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었다. 큰 것이 작은 것 안에 담기는 일. 큰 하늘이 작은 물 위에 비치는 일. 우리 인생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큰 자비가 작은 마음 안에 비쳐 들어오는 순간. 큰 사랑이 작은 우리 안에 통째로 담겨오는 순간.

그 한 뼘의 물웅덩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작은 풍경이 그날 오전 내내 마음 한쪽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작은 것이라고 부르는 자리들이 사실은 큰 것들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 그 깨달음이 비 그친 아침의 작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늦봄의 길 위에서 마음에 적어둔 한 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입구 쪽으로 걸어 나왔다. 입구 한 켠에 놓여 있는 작은 화단에는 늦봄에 어울리는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분홍과 흰색, 옅은 보라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 꽃들 위에 빗방울이 아직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 햇빛이 그 위에 닿을 때마다 작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가만히 그 화단 앞에 서서 마음에 한 줄을 적어 두었다. 비가 다녀간 자리에는 무언가가 반짝인다. 그것이 꽃잎 위의 빗방울이든, 마음 한쪽에 다시 떠오른 옛 시편이든, 길 위의 한 뼘 웅덩이 안에 담긴 하늘 한 조각이든, 그 모든 반짝임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그분의 자비가 잠시 모습을 드러낸 자리인지도 모른다.

늦봄의 길 위에서 우리가 만나는 그 작은 반짝임들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한 번씩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어쩌면 시인이 매일 하는 일이고, 묵상하는 사람이 매일 하는 일이며, 신앙을 사는 사람이 매일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봄 잎새 위에 맺힌 빗방울 한 알

걸음을 다시 옮기는데 옷깃 위로 빗방울 한 알이 또 한 번 떨어졌다. 그것은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나뭇잎에서 떨어진 한 방울이었다. 그 한 방울을 어깨로 받아내며 가만히 속으로 웃었다. 어떤 비는 이렇게 한참 뒤에까지 흔적을 남긴다. 어떤 자비는 이렇게 한참 뒤에까지 우리에게 닿는다.

공원을 나서며 가만히 속으로 짧은 한 줄의 기도를 적었다. 오늘도 비 그친 자리에 펼쳐지는 그 푸른빛을 잊지 않게 해 주시기를. 한 뼘의 웅덩이에 담긴 하늘 한 조각을, 작은 자비라 가벼이 여기지 않게 해 주시기를. 늦봄의 아침을 또 한 번 살아낸 이 마음 위에, 보이지 않게 내리는 그분의 인자하심이 오늘 하루 동안 계속 머물러 주시기를.

아침 일곱 시 반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걸음이 점점 길 위에 늘어나고 있었고, 빵집 앞에서는 막 구워낸 빵 냄새가 골목 끝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하루가, 또 한 번 비 그친 아침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한 페이지의 늦봄 일기를 마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 모퉁이의 작은 가게 앞을 지나쳤다. 가게 앞 화분의 작은 화초들에도 빗방울이 여전히 맺혀 있었다. 그 화분 옆에는 흰 강아지 한 마리가 작은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 길을 내다보고 있었다. 비 그친 아침을 그 강아지도 자기 자리에서 그렇게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리에서 같은 비를, 같은 아침을, 같은 자비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운동화를 벗었다. 양말이 살짝 젖어 있었다. 그 젖은 흔적이 어쩐지 싫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비 그친 아침의 길 위를 분명히 걸었다는 증거였고, 한 뼘의 웅덩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는 작은 자취였다. 거실 창가에 양말을 잠시 걸어두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이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아침에 만난 풍경들이 마음에 한 페이지의 에세이로 천천히 모이고 있었다. 한 뼘 웅덩이 안의 가로수, 벤치 위에 떨어진 빗방울, 화단 위에 반짝이던 작은 보석들, 길 위의 흰 강아지 한 마리. 그 풍경들은 어느 하나 거창하지 않았지만, 그 모두가 비 그친 늦봄 어느 아침에 분명히 거기 있었던 작은 자비의 흔적들이었다. 그 흔적들을 가만히 기록해 두는 일이 어쩌면 한 사람의 신앙이 매일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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