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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며 — 반복되는 하루 속에 스며든 은혜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개수대 앞에 서게 됩니다. 접시 몇 장, 국그릇 두 개, 수저 몇 벌. 대단할 것 없는 그릇들이 하루의 끝마다 나를 그 자리로 부릅니다. 처음에는 그 반복이 지겨웠습니다. 어제도 씻었고 오늘도 씻고 내일도 씻어야 할 그릇들.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하루가 지나면 다시 더러워지는 그 무의미해 보이는 순환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끝이 없는 일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늘 서둘러 해치우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저녁,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 개수대 위로 길게 스며들던 날이었습니다.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그고 그릇을 하나씩 헹구는데, 문득 이 반복이야말로 삶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늘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다시 저녁을 맞습니다. 그 단조로움 속에 은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오래 알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일이 벌어져야만 의미 있는 하루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빛이 스며드는 조용한 부엌

성경은 위대한 사건들만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여인, 밭에서 이삭을 줍는 나그네,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순간에만 임하시는 분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한복판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분이십니다.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부엌의 개수대 앞에서도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조차 삼십 년의 세월을 목수의 아들로, 평범한 노동과 일상 속에서 보내셨습니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마음이 이상하게 차분해집니다. 흐르는 물소리, 손끝에 닿는 그릇의 감촉, 조금씩 사라지는 얼룩. 그 단순한 노동 속에서 하루 동안 어수선했던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됩니다. 마치 그릇을 닦는 동안 마음도 함께 닦이는 것 같습니다. 종일 나를 힘들게 했던 말들, 풀리지 않던 걱정들이 물과 함께 조용히 흘러 내려갑니다.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 시간이, 실은 하루 중 가장 정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고린도전서 10:31

사도 바울의 이 말씀은 거창한 사역만을 두고 한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는 일, 곧 가장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상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그렇다면 저녁마다 반복되는 이 설거지도, 가족을 위해 밥을 짓는 일도, 아침마다 이부자리를 정돈하는 일도 모두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노동이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손은 그릇을 닦고 있어도, 마음은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세기의 한 수도사는 부엌에서 냄비를 닦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웅장한 예배당에서 무릎 꿇을 때나 기름때 낀 그릇 앞에 설 때나 똑같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거룩함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부엌의 구석까지도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입니다.

작은 일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재건이 더디고 초라해 보여 낙심한 백성에게, 작은 시작의 날을 멸시하지 말라고 전했습니다. 우리는 늘 크고 빛나는 것을 동경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처럼, 누룩 한 조각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에서 자라납니다. 매일의 성실함이 쌓여 한 사람의 인격을 이루고, 한 가정의 온기를 지탱합니다. 위대한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충실함이 오래 쌓인 결과입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발견하는 은혜

이제 저는 설거지를 서두르지 않으려 합니다. 마지막 그릇까지 정성껏 헹구고, 개수대를 닦고, 마른행주로 손을 닦는 그 짧은 시간을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기도로 삼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음을, 밥을 먹을 수 있었음을, 씻을 그릇이 있고 함께 나눌 가족이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러고 보면 씻어야 할 그릇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채워진 삶의 증거였습니다. 텅 빈 개수대는 결코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채워진 하루를 살아본 사람은 압니다.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신실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매일 아침 해를 다시 뜨게 하시고, 계절을 어김없이 돌리시며, 아침마다 새로운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 크신 분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작은 반복 속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어제와 똑같아 보이는 오늘이지만, 그 안에는 어제 없던 새로운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개수대 앞에 섭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리가 은혜를 배우는 조용한 학교임을 압니다.

혹시 오늘 하루가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갔다고 느껴진다면, 그 평범함 속에 이미 하나님의 손길이 스며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일들을 성실히 감당하는 그 자리에, 주님은 오늘도 조용히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삶을 지탱한 것은 몇 번의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이름 없이 반복된 수많은 저녁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저녁마다 부엌에 오래 서 계셨습니다. 그때는 그 뒷모습이 그저 익숙한 풍경일 뿐이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매일 저녁 우리 가족을 위해 조용한 예배를 드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무 보상도 박수도 없는 그 자리에서, 사랑은 늘 소리 없이 흘렀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오래 섬기는 사람이 사실은 그 집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은 대개 이렇게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곁에 머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도 그러합니다. 그분은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시고,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역사하십니다. 엘리야는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가 아니라, 그 후에 들려온 세미한 소리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큰 사건만을 기다리며 살아갈 때, 정작 하나님은 오늘의 평범한 저녁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저녁, 개수대 앞에 서게 되거든 잠시 마음을 멈춰 보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물소리에 하루의 소란을 흘려보내고, 손끝의 감각에 집중하며, 이 작은 일 안에도 함께 계신 주님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순간 반복은 더 이상 굴레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가 됩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쌓여 갈 때, 우리의 평범한 하루하루는 어느새 거룩한 삶의 무늬로 짜여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