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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아카시아 한 그루 — 오월 영성 일기 한 페이지


아카시아가 피기 시작했다. 출근길 골목 끝, 그 회벽 옆 가지 끝에 작년에는 보지 못한 송이가 매달려 있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내가 그 길을 지나간 게 어제도, 그저께도, 오늘 아침까지였는데, 어제까지는 분명 가지에 봉오리만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엔 송이 째 흰빛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영성 일기를 펼치자 가장 먼저 그 송이의 향이 떠올랐다.

오월의 첫 주말, 마음은 자주 두 갈래다. 한쪽엔 봄의 마지막 결을 붙잡으려는 안타까움, 다른 한쪽엔 곧 다가올 여름의 무게가 미리 무거워지는 부담. 두 마음 사이에서 일기장을 펼치면, 신기하게도 둘 다 같은 페이지에 적힌다. 봄을 보내는 슬픔과 여름을 맞는 두려움이 한 줄 안에서 만난다. 그 만남이 어색하지 않은 건, 둘 다 결국 같은 시간이 보내준 손님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펜과 노트, 영성 일기를 쓰는 자리
펼친 노트 위의 펜 — 오월 영성 일기 한 페이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8)

오월에 이 구절을 펼치면 늘 마음이 두 번 흔들린다. 한 번은 풀과 꽃의 운명에. 한 번은 그럼에도 영원한 말씀의 약속에. 아카시아의 흰 송이도, 봄볕에 부푸는 라일락도, 결국엔 시들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시듦이 절망이 아니라는 것을, 이 한 절은 매년 다시 알려준다. 시들지 않는 것을 가져 본 적 없는 우리에게, 시들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는 그 사실. 그 사실 위에서야 우리는 시드는 것들을 정직하게 사랑할 수 있다.

일기장이 가르쳐 주는 세 가지

오월 영성 일기에는 세 가지 칸이 있다. 첫째 칸엔 ‘오늘 본 것’을 적는다. 골목 끝의 아카시아, 정류장 옆에 떨어진 동백 꽃잎,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어떤 표정.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보았다는 사실 자체를 기록한다. 둘째 칸엔 ‘오늘 들은 것’을 적는다. 옆자리에서 들려온 말,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한 문장, 어머니의 짧은 음성. 셋째 칸엔 ‘오늘 머문 것’을 적는다. 마음에 어떤 단어 한 개, 어떤 장면 한 컷이 머물렀는지를 적어두는 자리.

이 세 칸을 다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적는다. ‘이 모든 것 위에 머무르신 분’이라는 제목 아래, 그날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한 마디. 그 한 마디는 매일 다르다. 어떤 날엔 ‘감사합니다’이고, 어떤 날엔 ‘잘 모르겠습니다’이고, 어떤 날엔 ‘그래도 함께 있어 주세요’이다. 진실하기만 하다면, 어떤 한 마디라도 일기장은 다 받아 적는다. 그 받아주는 노트의 너그러움이 자주 나를 위로한다.

일기장이 가르쳐 주는 첫 번째는 ‘본다는 것의 깊이’이다. 매일 같은 길을 걷지만, 같은 길은 결코 두 번 같지 않다.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은 다른 길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채려면 멈추어야 한다. 멈추어 보지 않으면, 매일은 그냥 같은 풍경처럼 흐른다. 두 번째는 ‘듣는다는 것의 깊이’이다. 같은 말씀을 어제 듣고 오늘 또 듣는다. 그러나 어제의 귀와 오늘의 귀는 같은 귀가 아니다. 같은 구절이 어제는 위로였다가 오늘은 도전이 된다. 세 번째는 ‘머문다는 것의 깊이’이다. 어떤 단어 하나, 어떤 장면 하나가 마음에 머물 때, 그 머묾이 곧 묵상이다.

오월의 색들

오월에는 색이 너무 많다.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한 색만 골라내고 싶어진다. 가장 가까운 색을 한 가지 고른다면, 나는 ‘연두’를 고른다. 푸르름이 아직 짙어지기 전, 그러나 새싹의 연약함은 이미 지난 그 사이의 색. 마치 아직 결심하지 않은 마음 같은 색. 그러나 그 망설임이 부끄럽지 않은 색. 신앙의 어떤 시기는 자주 그 연두의 색을 닮았다. 확신은 아직 짙어지지 않았고, 그러나 의심은 가지를 떠났다.

오월의 두 번째 색은 ‘아카시아의 흰빛’이다. 너무 가벼워서 오래 잡아둘 수 없는 흰빛. 그러나 그 가벼움이 우리에게 향기를 남긴다. 신앙의 어떤 만남도 그렇다. 오래 머물지 못하지만, 그 만남이 남긴 향이 한참을 따라온다. 어떤 설교가, 어떤 친구의 한 마디가, 어떤 새벽의 한 절이 그렇게 향처럼 남는다. 셋째 색은 ‘오후 다섯 시의 노란빛’이다. 하루를 다 보내지 않은 빛, 그러나 시작한 지 한참 지난 빛. 그 노란빛 안에서 일기장을 다시 한 번 펼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편 62:5)

‘잠잠히’라는 말 앞에서 늘 한참을 멈춘다. 잠잠하다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신뢰의 자세인 것 같다. 떠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답을 재촉하지 않는 것. 일기장 앞에 앉으면, 그 잠잠함을 연습한다. 어떤 페이지에는 길게 쓰고 싶지만, 단 세 줄로 끝낸다. 어떤 페이지에는 한 글자도 쓰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오늘은 비어 있는 채로 둡니다’라고 적는다. 그렇게 비어 있는 페이지도 일기장의 일부가 된다.

오월의 끝에서

오월이 끝나갈 때면, 일기장의 페이지가 평소보다 두꺼워진다. 그것은 글이 많이 적혀서가 아니다. 사이사이 끼워둔 꽃잎과 이파리, 그리고 사람들의 손글씨가 적힌 작은 메모들 때문이다. 그 사이마다 묻어 있는 향이, 한 달치 영성의 두께가 된다. 일기를 다시 펼치면, 그 페이지들에서 오월의 냄새가 난다. 어떤 페이지는 라일락 향이, 어떤 페이지는 비 내린 흙냄새가, 어떤 페이지는 새벽 방의 약간 차가운 공기 냄새가.

창가 푸른 잎과 따뜻한 봄 햇살
창가에 닿은 봄 햇살, 연두의 시간

일기를 닫기 전 한 가지 습관이 있다. 마지막 한 줄에 ‘오늘 시들고 있는 것’을 적는 일. 화분 끝의 잎사귀, 어떤 관계의 한 모서리, 내가 오래 붙들고 있던 어떤 계획. 시드는 것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적는다. 적힌 것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시드는 것을 정직하게 적는 자리에서, 시들지 않는 한 분의 약속이 더 분명해진다. 시들고 있는 것을 손에 쥔 채로도, 시들지 않는 그 약속을 마주할 수 있다. 그 두 가지가 한 페이지 안에 함께 적히는 것, 그것이 오월 영성 일기의 가장 정직한 풍경이다.

일기를 닫고 창문을 연다. 골목 저편에서 또 한 송이의 아카시아가 흔들린다. 오월의 짧은 한 페이지가 또 한 줄씩 적힌다. 시들지 않는 한 분 위에서, 시드는 모든 것들이 다정해지는 시간. 영성 일기를 쓴다는 건 그 다정함을 기록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다음 페이지가 비어 있다. 그러나 그 비어 있음이 두렵지 않다. 빈 페이지는 다음 한 주의 빛이 채워 줄 것이다. 시드는 한 송이와 시들지 않는 한 약속 사이에서, 일기장은 오늘도 조용히 펼쳐 둔 채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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