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릴 때, 누군가의 손이 잠시 내 등을 받쳐준 적이 있다. 비가 와서 미끄러운 계단이었고, 한쪽 손엔 우산을, 다른 손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었다. 휘청한 그 한순간, 누군가의 손바닥이 닿았다 떨어졌다. 돌아보았을 땐 이미 그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얼굴도, 옷차림도, 키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손바닥의 따뜻함만 등에 잠시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 일기장 한 줄에 그 손을 적었다. ‘이름 없이 받은 친절 한 줌.’
일상은 그런 친절들로 살짝 받쳐져 있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자리에서, 누군가의 손이 우리를 휘청대지 않게 해 준다. 길에서 살짝 비켜준 자리, 가게에서 슬쩍 거스름돈을 챙겨준 손, 카페 옆 자리에서 자리를 옮겨준 발걸음.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우리는 더 자주 넘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친절들은 너무 작아서,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우리는 그것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조차 자주 모른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히브리서 13:2)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땐 ‘대접하라’는 명령에 마음이 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다르게 읽힌다. ‘부지중에’라는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모르는 사이에.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어쩌면 천사를 대접한다는 건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작은 친절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도 매일 누군가에게 천사일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은혜의 흔적은 자주 작다
은혜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주 큰 것이 떠오른다. 큰 위기, 큰 결심, 큰 응답. 그러나 살아 보니 은혜의 흔적은 자주 작다. 그것은 회의가 끝날 무렵에 누군가 던져준 한 마디 농담이고,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동료가 살짝 웃어준 미소이며, 점심 식당에서 옆자리 사람이 소금통을 건네준 손이다. 작아서 흘러가지만, 그러나 흘러가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일찍 메말랐을 것 같은 친절들. 은혜는 그 사이사이에 스며 있다.
어머니의 친구분이 오래전 이런 말을 하셨다. “우리가 받는 친절의 절반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양보해 준 거란다.” 그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양보가 보여야 양보가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그 말이 차곡차곡 쌓인다. 모르는 양보가 우리의 자리를 만든다. 모르는 인내가 우리의 시간을 만든다. 모르는 사랑이 우리의 오늘을 만든다. 우리가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때, 그 ‘잘함’의 절반은 사실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는 사실. 그것을 인정하는 자리에서야 비로소 감사가 시작된다.
이름 없이 흘러간 손들
어떤 친절들은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것이 친절의 본성이기도 하다. 이름을 받으려고 하는 친절은 어딘가 거래에 가깝다. 진짜 친절은 자주 이름 없이 떠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친절을 받으면, 다시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모르게 된다. 갚을 곳이 없는 사랑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로’ 흘러간다. 받은 자리에서 갚지 못한 친절이, 다음 사람의 자리로 흘러갈 때, 그제야 그 친절은 완성된다.
나는 이름 없이 받은 친절들의 목록을 기억하려고 한다. 종이에 적지는 않는다. 다만 마음에서 떠올린다. 작년 여름 비 오는 정류장에서 같이 우산을 씌워준 노부부, 첫 직장의 첫 발표 때 단상 옆에서 조용히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 ‘다섯 분 남았다’고 알려준 이름 모를 선배, 새벽 응급실에서 ‘아버님 곧 진찰 들어가실 거예요’라고 말해준 어떤 간호사. 그 분들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 모른다. 다만 그 친절이 내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친절은 다음 누군가에게로 옮겨 갈 차례를 기다린다.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태복음 10:8)
이 한 절은 단순해서 늘 두렵다. 거저 받았다. 그러므로 거저 주어야 한다. 받은 만큼만 주는 것이 아니라, 거저 받은 만큼은 거저 주어야 한다. 계산하지 않는 친절.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친절. 이름을 남기지 않는 친절. 그것이 받은 것을 가장 정직하게 흘려보내는 방법이라는 사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작은 자리들마다, 그 흘려보냄을 연습할 기회가 있다.
저녁의 짧은 정리
하루의 끝에 한 가지를 묻는다. 오늘 받은 친절 중 어떤 것이 이름이 없었는가. 그리고 그 친절을, 오늘 어떤 자리에서 다시 누군가에게 흘려보냈는가. 그 두 질문 앞에서 자주 말이 막힌다. 받은 친절은 셀 수 없이 많은데, 흘려보낸 친절은 손에 꼽기도 어려운 날들이 많다. 그래서 자주 ‘내일은 한 번이라도’라고 적는다. 그 한 번이 얼마나 미세할지라도.
은혜는 어쩌면 강이 아니라 모세혈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에 큰 물줄기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가는 길로 우리에게 와 있다. 그 길들 끝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서 있다. 그 사람들의 손이 닿은 자리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가난할 수 없다. 누구도 자기 손으로만 자기 자리를 만든 사람은 없다는 것, 그 단순한 진실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으면, 일상의 작은 친절들 앞에서 우리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진다.

지난주 어떤 카페의 자리에서 한 할머니가 ‘젊은 사람이 일하느라 힘들죠’라며 종이 손수건을 한 장 건네셨다. 받은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름을 묻지 못했고,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다. 그러나 그날의 그 한 장이, 며칠 동안 따뜻했다. 손수건은 결국 잃어버렸다. 그러나 그 친절은 잃어버려지지 않는다. 친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옮겨갈 뿐이라는 사실을, 일상에서 자주 배운다. 그래서 한 줌의 친절이 흘러간 자리에는 늘 다음 한 줌의 자리가 남아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 비켜섰을 것이고,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작게 비켜설 기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작은 비켜섬이 모이고 모이면, 한 도시의 발걸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름 없이 받은 친절 한 줌이, 다시 이름 없이 흘러갈 차례. 일상의 은혜는 그렇게 조용히 자기 자리를 옮겨 간다. 우리는 그 흐름 위에 잠시 머무는 한 점이다. 받은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다음 자리로 흘려보내는 한 점. 그 흐름이 끊기지 않는 한, 은혜는 결코 한 사람에게서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