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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남겨놓고 간 흰봉투


30년 동안 친형제처럼 지내는 오랜 친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얼마나 소중한 친구인지를 잊고 살았죠.

몇 달 전 그 친구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집에 아이가 아파서 금전적인 문제가 심각했던 나는 그날도 친구에게 넋두리 같은 하소연만 잔뜩 늘어놓았죠. 같은 방향은 아니지만, 늘 그랬듯이 차로 집까지 친구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봉투 안에는 월급명세서와 돈이 들어있었죠. 늘 뭔가를 잘 잃어버리던 친구였습니다. “바보 같은 놈.” 하며 다시 차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죠. “얌마, 니 한 달 치 봉급, 내 차에 떨어졌더라. 너한테 가는 길이야.”라고 했더니, “아니야! 됐다. 나 그거 잃어버린 거로 생각하련다. 급한데 먼저 써라.” 하는 겁니다.

아무 말 못하고 있는 내게 친구는 “내가 뭐든 잘 잃어버리잖아. 하지만 친구는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그냥 받자.’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없었습니다. 녀석의 넉넉지 않은 형편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힘겹게 전화를 들었습니다.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죠.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돈을 아내에게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잠 못 이룬 밤을 보낸 뒤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친구는 “내가 모아 놓은 비자금으로 월급 만들어서 집에 줬다.”라며 가볍게 얘기하더군요. “그래 잘 쓸게. 곧 갚을게.”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는 순간부터 시작된 후회가 한참 나를 괴롭힙니다. ‘고맙다.’란 말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고요. 돈보다 그 마음을 더 고마워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퇴근하고 삼겹살 파티를 하자고 친구에게 얘기할까 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요. 지금부터 이 말을 몇 백 번 읊조립니다.
“정말 고맙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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