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오월 골목 시멘트 틈에서 핀 작고 흰 들꽃 한 송이 —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피어난 하나님의 사랑


오월의 한 토요일, 점심을 먹고 천천히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옛 골목으로 접어드니, 좁은 도로 양옆으로 낮은 담장과 시멘트 보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봄빛은 길 위에서 천천히 굴러다니다가, 담장 모서리에 닿으면 잠시 머물러 한참을 쉬어 가곤 했다. 도시의 골목은 늘 어떤 평일의 표정만을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 토요일 오후의 골목은 사뭇 달랐다. 분주함이 한 발짝 물러난 자리에 햇빛만이 천천히 남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연히 본 것이, 시멘트 보도와 담장 사이 작은 틈에서 피어난 한 송이 들꽃이었다. 손톱보다 조금 큰 흰 꽃잎 다섯 장, 가운데 노란 점 하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양은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그 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상한 평화가 마음에 내려앉았다. 한참을 쪼그려 앉아 그 꽃을 들여다보다가, 일어나며 작은 의문이 들었다. 이 꽃은 누가 보아 주려고 여기 피어났을까. 보는 사람이 없어도, 이 꽃은 어김없이 여기까지 자라 올라와 한 잎 한 잎을 펼쳤을 것이다.

오월 한낮의 좁은 골목과 담장 아래, 봄이 천천히 머무는 자리

그 풍경 앞에서 떠오른 본문이 있었다. 산상수훈 가운데서 예수님이 들에 핀 백합화를 가리키며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자리였다. 어릴 적에는 이 본문을 자주 “염려하지 말라”는 명령형으로만 들었다. 그러나 오월 골목의 작은 들꽃 앞에서는, 본문이 명령보다는 조용한 권유처럼 들렸다. 들꽃을 보라,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를 보라. 그 봄에 잠시 머무는 시선이, 우리 안에서 무엇을 회복시키는가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6:28-29

이 작은 흰 꽃은 누구도 이름을 부르지 않은 채 피어났다. 가까이 다가가 식물도감을 펴 보면 어떤 학명이 붙어 있을지 모르지만,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이름 없는 풀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문이 가리키시는 분의 시선 안에서는, 이 꽃 하나도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아름답게 입혀진 한 송이로 기억된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을 그분만은 알고 계신다. 그것은 단지 식물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한 약속처럼 다가왔다.

골목을 다시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보이는 자리”에서만 살아가도록 훈련받는다. 보이는 자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수고하고 길쌈한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는 무엇도 자라지 않는다고 은연중에 믿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골목 시멘트 틈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흰 꽃은 그 믿음에 조용히 반박한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무엇인가는 자라고 있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도, 봄은 어김없이 그곳까지 찾아온다.

풀섶 사이로 머리를 내민 작은 꽃,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피어난 봄

한 골목 더 안으로 들어가 보니, 비슷한 자리에서 또 다른 들꽃 한 송이가 보였다. 색은 옅은 보라색이었고, 줄기가 더 가늘었다. 보도블록의 갈라진 틈을 비집고 올라온 모양새가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단단해 보였다. 그 자리에 자리잡기 위해 이 꽃은 얼마나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을까. 사람의 발자국이 자주 오가는 자리에서, 햇빛은 한정되고 바람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그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꽃은 어김없이 한 송이 봄을 펼쳐 놓고 있었다.

나는 문득 우리의 신앙도 비슷한 자리에서 자란다는 생각을 했다. 큰 강대상 위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시멘트 틈에서. 누군가의 박수 안에서가 아니라, 누구도 보고 있지 않은 골목 한 모퉁이에서. 그 자리에서 피어난 작은 믿음 한 송이를 그분께서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아름답게 보아 주신다. 그 시선 앞에 서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흘려보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작은 위로로 받게 된다.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로 들어서니, 차 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는 작은 흰 꽃 한 송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구도 부르지 않은 이름으로 피어난 들꽃의 자리. 그 자리는 우리 일상의 어디에나 있다. 출근길의 모퉁이에도, 퇴근길의 가로수 아래에도, 어쩌면 우리 자신 안에도 한 송이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본문이 말씀하시는 “염려하지 말라”는 권유는, 그 자리를 알아보는 시선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그분께서 들꽃 하나도 잊지 않으시는 분이라면, 그분 앞에서 우리는 어느 골목에 서 있어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차를 한 잔 우리며 다시 그 골목을 떠올렸다. 시멘트 틈은 누가 보아도 척박한 자리였지만, 그 자리에서 자라난 흰 꽃은 척박함을 척박함으로 두지 않았다. 봄은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 사랑은 이름을 묻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랑이 어느 골목에든 닿고야 만다는 사실. 오월 한낮의 짧은 산책이 마음에 남긴 작은 가르침은 그것이었다. 오늘 밤은 누군가의 무명한 이름 하나를 가만히 호명하며 잠들 수 있겠다.

저녁 무렵 다시 짧은 산책을 나섰을 때, 낮에 보았던 그 시멘트 틈에 다시 들렀다. 그 사이 누군가 길을 지나며 빗자루질을 했는지, 보도가 한결 깨끗했다. 그러나 작은 흰 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군가의 빗자루 끝에 부딪힐 뻔하면서도, 한 잎 한 잎이 어김없이 펼쳐져 있었다. 도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쓸어내는 자리지만, 그 모든 빗자루질에도 살아남는 작은 봄이 있다는 사실이, 그날 저녁의 작은 안도였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한 가지를 기도처럼 마음에 두었다. 오늘 내가 누군가의 무명한 자리를 한 번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가까운 가족 중에서, 같은 사무실 안에서, 잘 모르는 이웃 가운데서, 누구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 자리에 서 있는 한 사람을 잠시 멈춰 바라보게 해 달라고. 본문이 약속하시는 “더욱 너희이겠느냐”의 사랑은, 우리에게 닿은 뒤 우리로부터 다시 다른 자리로 흘러가도록 설계된 사랑이라는 사실을, 작은 흰 꽃 앞에서 다시 배웠다.

한 가지 더 이어 적어 둔다. 골목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에 같이 남은 단어는 “자리”라는 단어였다. 자리는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자리는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가 태어난 가정, 우리가 자라난 동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사이의 좁은 틈. 그 모든 자리는 처음에는 선택의 결과처럼 보이지만, 살아 보면 늘 “받은 자리”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흰 꽃이 시멘트 틈을 골랐을 리는 없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꽃은 봄을 살았다. 받은 자리에서 봄을 사는 일, 그것이 들꽃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한 가지 신비일 것이다. 그분의 사랑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닿으신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한 번 더 머물기로 한다. 누구도 부르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오늘 그 이름을 한 번 더 가만히 부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