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오월 토요일 오후 마을 어귀 느티나무 그늘 — 흔들리는 잎 사이로 새어 드는 빛

sangkist

오월의 토요일 오후 세 시,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이 나무 그늘에 닿으면 한 번씩 멈춰 선다. 짐을 메고 가던 사람도, 자전거를 끌고 가던 사람도, 잠깐 그늘 안으로 발을 들이고는 손등으로 이마를 닦는다.

나무는 키가 컸고, 가지는 넓게 뻗어 있었으며, 잎은 아직 어렸다. 봄의 끝자락이라 잎들이 완전히 짙어지지 않아서, 햇빛이 잎과 잎 사이를 헐겁게 통과하고 있었다. 그 빛은 한 줄기, 한 줄기로 나뉘어 땅 위에 어른거리는 무늬를 그렸다.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도, 무늬는 바람에 따라 매 순간 다르게 흔들렸다.

마을 어귀 오래된 느티나무 그늘과 흔들리는 잎

어떤 풍경 앞에서는, 사람의 말이 자꾸 어려워진다. 이 그늘 아래의 풍경이 그랬다. 무엇이라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단순했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자꾸 머물고 싶어 했다. 잎이 흔들리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동네 강아지의 짧은 짖음, 그리고 가게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 토막의 옛 가요. 그 모든 소리가 너무 익숙해서, 도리어 한 번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 기부이 들었다.

나무 둥치에 등을 살짝 기대 보았다. 거친 껍질이 등을 통해 느껴졌고, 그 거침 안에는 오랜 시간이 만들어 낸 어떤 단단함이 있었다. 이 나무는 내가 어린 시절 이 마을을 처음 지나갔을 때에도 여기 있었고, 동네 어르신들의 어린 시절에도 이미 여기 있었다고 한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잎을 매년 새로 피우고, 같은 가지로 매년 같은 그늘을 만들어 왔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 사도행전 17장 28절

나는 그 말씀의 한 자락이 이 나무 그늘과 어쩐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든, 어디로 향하고 있든, 한 분 안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고, 존재한다. 그 사실이 너무 커서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이런 그늘 안으로 들어왔을 때 문득 다시 떠오른다. 그늘이 우리를 가린 것이 아니라, 그늘이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보여 주는 셈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의 그늘 안에서 살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드는 햇빛과 그림자 무늬

마을 어귀의 길 위로 한 어르신이 작은 카트를 끌고 천천히 지나갔다. 카트에는 빈 페트병이 가지런히 모여 있었고, 그 위에 무언가를 덮어 둔 손수건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어르신의 발걸음은 느렸지만, 흔들림 없이 일정했다. 나는 그 걸음 속에서, 오랜 세월이 만들어 낸 어떤 박자를 보았다. 이 마을의 박자는 바쁘지 않다. 누구도 누구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늘에서 잠시 더 있고 싶었다. 무엇을 더 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잠깐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우리는 자주 무언가를 하려고 멈추지만, 가끔은 그저 하지 않기 위해 멈출 필요가 있다. 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따라가다 보면, 한 번도 본 적 없던 길이 발 아래에 잠시 펼쳐졌다. 그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길이라기보다는, 어느 자리에 더 오래 머무르라고 알려 주는 길이었다.

아이 한 명이 자전거를 끌고 그늘 안으로 들어왔다. 자전거의 체인이 살짝 헐거워진 모양이었다. 아이는 한참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자전거를 한쪽에 세워 두고 그늘 안 벤치에 앉았다. 가방에서 빵 한 조각을 꺼내 천천히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어쩐지 한 폭의 오래된 그림 같았다. 아무도 그 그림 안의 인물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그런 그림.

오월 토요일 오후 마을 골목길 풍경

오래된 마을의 그늘은, 시간이 만들어 낸 결을 한꺼번에 보여 준다. 나무 둥치 한쪽에는 어린 시절 누군가가 새긴 글자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그 옆으로는 비바람에 깎여 둥글어진 옹이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깎인 자리도, 새겨진 자리도, 모두 한 나무의 시간이었다. 사람의 시간도 어쩌면 그와 같지 않을까. 새겨진 자국과 깎여 나간 자국이 함께 한 사람의 결을 만든다. 그늘 안에서 그런 사실을 천천히 마주하는 동안,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조급함 하나가 슬며시 그늘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한 줄짜리 메모를 적어 두고 싶었다. “오월 토요일 오후,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흔들리는 잎과 흔들리지 않는 빛을 동시에 보다.” 그렇게 적고 나니, 그 한 줄이 오늘 하루의 가장 정직한 요약처럼 느껴졌다. 흔들리는 것과 흔들리지 않는 것이, 같은 그늘 안에서 동시에 머무는 풍경. 그것이 어쩌면 우리 삶의 어느 시기를 닮아 있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잎은 우리이고, 그 흔들림 사이를 통과해 오는 빛은 한 분의 자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주 흔들리지만, 빛은 매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우리에게 닿는다. 그늘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빛을 잃은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늘 안에서 우리는, 빛이 어떻게 우리에게 도달하는지를 더 또렷이 보게 된다.

한 시간 가까이 그늘 안에 머물렀던 것 같다. 가게의 라디오는 어느 사이엔가 다음 곡으로 넘어가 있었고, 동네 강아지의 짖음은 잠시 멎어 있었으며, 어르신의 카트 소리는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늘 안의 풍경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매 순간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나는 그 변화의 결을 손끝으로 한 번 더 가만히 더듬어 보고는, 천천히 그늘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천천히 건음을 옮기는 동안, 발끝에 작은 풀잎 하나가 닿았다.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잎의 가장자리에 톱니 같은 결이 있고, 잎 한가운데에는 가느다란 선이 위아래로 한 줄 지나가고 있었다. 작은 풀 한 포기 안에도, 한 분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그토록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었다. 우리가 자주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작음의 크기일 것이다. 작은 것은 그저 작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한 호흡이 새겨져 있다.

마을 어귀의 빵집 앞 의자에서 한 아주머니가 머리 위로 손을 얹어 햇빛을 가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 한 손에는 휴대전화. 봉투 안에서 따끈한 빵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이 거기서부터도 느껴질 만큼, 새로 구워진 빵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가져갈 빵 한 봉지. 그 안에는 분명히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향해 보내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다. 빵의 따스함이 봉투의 종이를 통과해 손바닥에까지 닿아 있을 그 시간을, 우리는 단지 “마중”이라는 말로만 부르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늘 밖의 햇빛이 잠시 눈을 부시게 했다. 그러나 그 부심 안에서도, 방금까지 머물렀던 그늘의 결이 등에 남아 있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우리는 그늘을 떠나도, 그늘이 만들어 낸 호흡을 한동안 지니고 다닐 수 있다. 오월 토요일 오후, 마을 어귀 느티나무 그늘은 그렇게 한 사람의 한나절을 조용히 옮겨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