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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갠 일요일 오후, 빈 예배당의 마지막 의자 — 모임이 끝난 자리에 남는 것


일요일 오후 빈 예배당의 의자가 줄지어 놓인 고요한 풍경

오전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천천히 빠져나간 뒤의 예배당은, 처음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비가 그친 일요일 오후, 창문 가장자리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한 줄기 햇빛을 받아 가만히 빛난다. 회중의 찬송이 마지막 음을 떠나보낸 자리에 남는 것은, 의외로 거대한 침묵이 아니라 작은 소리들의 합주다. 마룻바닥의 가벼운 삐걱거림, 환기구를 통해 들어오는 바깥의 자동차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빈 예배당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다만 그 안에 머물던 음성들이 잠시 자리를 옆으로 비켜 주었을 뿐이다.

나는 마지막 줄의 의자에 잠시 앉아 본다. 평소에 늘 서너 번째 줄에 앉아 예배를 드리던 사람이지만, 모두가 떠난 뒤에는 어쩐지 가장 뒷자리가 가장 잘 어울린다. 등받이의 차가운 나뭇결이 옷 너머로 살짝 닿고, 발끝 아래의 카펫에는 누군가가 흘리고 간 종이쪽 한 장이 보인다. 비 갠 오후의 빛이 그 종이쪽 위로 살며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가만히 본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의자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그분의 어깨가 닿았을 자리, 그분의 손이 머물렀을 자리, 그분의 호흡이 잠시 머물렀을 자리. 의자는 그 흔적을 모두 머금은 채 다시 비어 있다.

예배당의 정적이 깊어질수록, 평소에는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들이 점점 또렷해진다. 천장에서 작은 환풍기 한 대가 부드럽게 돌아가고, 벽 안 어딘가의 배관에서 물이 흐르는 듯한 옅은 소음이 흐른다. 그 소리들은 회중의 찬송이 살아 있을 때는 자취를 감추었다가, 모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자기 자리에 돌아온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거룩이라 부르는 것의 절반은, 큰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이런 작은 소리들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예배당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의자에 닿는 순간

창문 너머의 마당에서는 어린아이가 한 명,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나가고 있다. 빗방울이 떨어진 뒤의 길은 평소보다 짙은 색이고, 아이의 작은 발자국 두 개가 그 위에 잠시 남았다가 다시 햇볕에 옅어진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창문을 살짝 통과해 들어오는 동안, 나는 시편의 한 구절을 가만히 떠올린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 시편 46:10

이 구절은 종종 격렬한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비 갠 오후의 빈 예배당에서 다시 읽을 때, 이 구절은 또 다른 결로 들린다.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활동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자기 안의 소란을 가만히 가라앉히는 일이다. 한 시간 동안 이 자리에 울려 퍼진 찬송과 설교, 기도와 회중의 응답이 한 사람의 가슴 안에서 자기 자리에 가라앉도록, 그렇게 잠시 침묵을 허락하는 일이다. 모임은 분명히 한 자리에 사람들을 모은다. 그러나 모임이 끝난 자리에서야 비로소 그 모임이 한 사람의 안에서 무엇을 남겼는지가 또렷해진다.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머리를 가만히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천장의 들보 사이로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회중석의 절반을 비추고, 나머지 절반은 부드러운 그늘 속에 남는다. 그 그늘과 빛의 경계 위로 먼지 한 줄기가 천천히 흘러간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자리에서 떠오른 먼지일 것이다. 회중의 옷과 가방과 어깨에서 묻어 나온 한 주간의 흔적, 그리고 예배당 창문이 잠시 열렸다가 닫히면서 흘러 들어온 바깥의 흔적. 그 모든 것이 한 줄기 빛 속에서 잠깐 보였다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된다. 우리가 일주일 동안 어깨에 묻혀 온 것들도 이렇게 한 자리에 잠시 떠올랐다가 가만히 가라앉는 것은 아닐까.

오래된 나무 의자 위에 떨어진 부드러운 햇살

강대상 위에는 아직 펼쳐진 채 놓여 있는 큰 성경이 한 권 있다. 페이지가 어디에 펼쳐져 있는지는 멀리서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종이의 결이 천장의 빛을 받아 미세하게 빛나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강대상 옆에는 사회자가 두고 간 작은 마이크가 곧게 서 있고, 그 마이크 끝에서 가끔씩 작은 잡음이 짧게 떨렸다 사라진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 마이크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회중석 끝까지 닿았다. 지금은 그 목소리가 사라진 대신, 그 목소리에 실려 왔던 한 줄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시간이다.

찬송가의 책장 모서리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손끝이 닿은 자리답게 살짝 닳아 있다. 페이지 사이에는 누군가가 끼워 둔 마른 들꽃 한 송이가 보인다. 아마도 봄 어느 주일에, 마당에서 꺾어 온 것을 잠시 책에 끼워 둔 채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그 작은 들꽃 한 송이가 한 사람의 신앙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를, 우리는 결코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그 자리에 그 한 송이가 그렇게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인가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임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작은 흔적들. 빈 예배당은 그 흔적들이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려주는 자리다.

구약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큰 바람과 지진과 불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만난 것은 세미한 음성이었다. 큰 사건이 끝난 뒤의 정적, 그 정적 안에서 들리던 작은 음성. 모임이 끝난 빈 예배당은 어쩌면 그 호렙 산의 작은 동굴과 닮아 있다. 회중의 큰 음성이 떠난 자리에, 그분의 세미한 음성이 잠시 머무는 시간. 그 음성은 결코 큰 결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한 호흡, 한 정돈, 한 자리를 가만히 청할 뿐이다.

예배당이 빈 시간은 사실 가장 풍성한 시간 중 하나다. 모임이 한창일 때는 모두가 한 방향을 보고 있다. 그러나 모임이 끝난 뒤에는,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자기의 자리에서 모임의 한 조각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식탁 앞에서, 어떤 이는 운전석에서, 어떤 이는 산책길의 벤치 위에서, 어떤 이는 다시 펼쳐 든 성경의 한 페이지 위에서. 빈 예배당은 그 모든 흩어짐의 출발점에 서 있는 작은 항구 같은 곳이다. 모두를 떠나보낸 뒤에도 항구는 남아 있고, 그 자리에서 다음 회중을 향해 다시 의자를 정돈하기 시작한다.

나는 손을 뻗어 의자 등받이의 모서리를 한 번 가만히 만져 본다. 누군가의 손때가 옅게 묻어 있는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의 신앙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또렷해진다. 우리보다 앞서 이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의 흔적, 그리고 우리 다음에 이 자리에 앉을 사람들의 자리. 빈 예배당은 그 모든 시간의 자리를 지키며, 한 주간 다시 흩어져 살아갈 사람들에게 같은 자리로 돌아오라고 조용히 부른다.

창밖의 햇빛이 한 단계 더 길어지고, 마당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비스듬히 누우면 나는 자리를 천천히 일어선다. 의자가 잠깐 작은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텅 빈 공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자리에 가라앉는다. 본당의 문을 닫고 나서면 복도의 끝에서 누군가가 정돈된 의자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그분의 발자국 소리도 곧 그칠 것이고, 예배당은 다음 한 주 동안 다시 자기 자신을 향해 깊은 숨을 들이쉴 것이다.

복도를 지나 신발장 앞에 멈춰 서면, 누군가가 흘리고 간 작은 우산 한 자루가 한 구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비가 그쳤으니 누군가는 아마 이것이 자기 우산이었음을 잠시 잊고 떠났을 것이다. 그 우산은 다음 주일에야 주인을 다시 만날 것이고, 그동안 신발장 옆에서 한 주의 시간을 가만히 견딜 것이다. 신앙도 어쩌면 그러한 잊혀진 우산 한 자루와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늘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모임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는 그 우산의 자리를 새삼스럽게 기억해 내곤 한다.

비 갠 일요일 오후의 빈 예배당은, 한 주간을 살아 낼 한 사람에게 가장 작은 사이즈의 안식을 건네주는 자리다. 거기에는 거창한 결단도, 강한 다짐도 없다. 다만 의자 한 자리, 햇빛 한 줄기, 잠시 가라앉는 한 호흡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것들이 한 사람의 한 주간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 빈 예배당은 그래서 결코 비어 있지 않다. 가만히 있어 그분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되는 그 잠깐의 자리, 거기에 사실은 가장 깊은 가득함이 머물고 있다. 비가 그친 오후의 빛이 의자의 마지막 줄까지 길게 닿고, 그 빛 속에서 한 주간을 다시 시작할 한 사람이 가만히 일어선다. 빈 예배당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 뒤에야 비로소 자기 일을 마친다. 다음 주일까지의 시간은 그 안에서 천천히 다시 자라난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구도 듣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한 결로 자라나는 무엇이 있다. 빈 예배당의 침묵이 한 사람의 한 주간 안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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