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첫날 점심 후 한 시 이십 분, 사무실 빌딩 후문을 나서서 골목길로 접어든다. 점심을 가볍게 먹고 동료들이 모두 카페로 향한 사이, 혼자 천천히 한 바퀴 도는 산책의 시간. 빌딩 뒷편 좁은 인도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화단을 끼고 도는 모퉁이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두 블록쯤 떨어진 동네 공원의 입구로 이어진다. 늘 같은 코스, 늘 … 계속되는
유월의 첫 월요일 오전 열 시 사십 분,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시편 23편을 천천히 펴 든다. 누구나 한 번쯤은 외우다시피 한 본문이고, 새벽기도회와 결혼식과 장례식의 가장 깊은 자리마다 자주 낭독되는 본문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너무 익숙해서 자주 흘려 듣게 되는 본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해라는 작업은 익숙함을 다시 한번 낯설게 만들어, 마치 처음 펴 보는 … 계속되는
유월 첫날 월요일 새벽, 도시의 가로등이 아직 꺼지지 않은 다섯 시 십칠 분. 거실 마룻바닥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빛의 결을 따라 천천히 책상 앞에 앉는다. 어제 늦게 닫아 놓은 성경의 가죽 표지 위에 흰 가루처럼 내려앉은 새벽의 차가운 공기. 그 위에 손을 한 번 얹고, 잠시 손바닥 안쪽으로 전해 오는 미지근한 결을 가만히 느낀다. 새 … 계속되는
이천이십육년 오월의 끝자락이다. AI 도구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보고서의 초안도 AI가 쓴다. 코드의 기본 골격도 AI가 쓴다. 어린아이의 숙제마저 AI에게 묻는다. 즉답의 시대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몇 초 안에 단정하고 깔끔한 답이 화면 위에 펼쳐진다. 그 속도와 그 매끄러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AI 시대의 신앙은 이 질문 앞에 다시 멈춰 서야 한다. 생성형 … 계속되는
오월 끝자락의 햇살이 화단 모퉁이까지 길게 내려온다. 매일 출퇴근길 옆을 무심히 지나치던 그 작은 화단이다. 사월에 핀 튤립들은 진작에 자리를 비웠다. 오월 초의 장미들도 한 차례 무성한 시간을 보내고 시들어 갔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이름조차 모르는 작고 흰 꽃 한 송이. 어제 비가 한 차례 짧게 지나간 자리에 그 꽃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흔들리고 … 계속되는
월요일 출근길도 화요일 출근길도 다르지 않다. 같은 시각 같은 환승 통로, 같은 사람들의 흐름. 그 익숙한 흐름 안에서 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의 아침 한 순간이 다르게 다가왔다. 환승 통로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떨림이었다. 그 떨림의 정체를 모른 채 한참을 그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 두었다. 베드로전서 … 계속되는
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의 새벽이다. 도시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창밖 가로등의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가 새벽 바람에 천천히 흩어진다. 책상 위 빈 유리잔을 한참 만져 본다. 차가운 손끝과 차가운 잔이 만나 그 자리에 오래 머문다. 보리차 한 주전자를 다시 데웠다. 김이 천천히 잔 안으로 차오른다. 처음에는 잔의 바닥부터, 그다음에는 잔의 옆구리를 따라 위로, 위로. 마침내 … 계속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