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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출근길 환승 통로 손잡이를 잡은 손끝의 작은 떨림 — 베드로전서 5장 7절 모든 염려를 다 그분께 맡기라는 한 줄


월요일 출근길도 화요일 출근길도 다르지 않다. 같은 시각 같은 환승 통로, 같은 사람들의 흐름. 그 익숙한 흐름 안에서 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의 아침 한 순간이 다르게 다가왔다. 환승 통로의 손잡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작은 떨림이었다. 그 떨림의 정체를 모른 채 한참을 그 손잡이 위에 손을 올려 두었다. 베드로전서 오장 칠절이 그 떨림 위로 천천히 내려왔다.

직장의 환경은 늘 비슷한 무게를 가진다. 어제 끝내지 못한 한 줄의 보고서, 오늘 회의에서 처리해야 할 다섯 건의 안건, 내일 오전에 미팅이 잡힌 한 통의 이메일. 그 모든 것들이 환승 통로의 손잡이를 잡은 손끝에 한꺼번에 얹혀 있었다는 사실을, 그 떨림 한 번으로 알아챘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들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매일을 살아간다. 어깨 위에 얹힌 짐의 정확한 무게를 잴 수 없기에 그 짐을 내려놓을 시점도 자주 놓친다.

출근길 환승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의 흐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 베드로전서 5장 7절

이 한 구절을 처음 만난 것은 청년 시절이었다. 그때는 이 말씀이 단순해 보였다. 염려를 맡기는 것 — 마음의 스위치를 한번 누르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십 대의 한가운데에서 이 말씀을 다시 만났을 때, 그 작은 동사 하나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맡기라는 그 동사는 단번에 완료되는 동작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새롭게 시도해야 하는 습관이다. 어제 맡긴 것을 오늘 다시 꺼내 어깨 위에 올려놓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환승 통로를 빠져나와 다른 노선으로 갈아탔다. 사람들의 어깨가 한 번씩 부딪힌다. 누군가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무표정한 얼굴이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깊이 끼고 자기만의 음악 안에 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잠깐의 시간 동안 베드로전서의 그 한 줄을 입속에서 천천히 굴려 본다.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짐을 맡길 수 있는 근거가 자기 자신의 결단력이 아니라 그분의 돌봄이라는 사실. 그것이 이 말씀의 무게의 중심이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은 손끝의 작은 떨림

직장에서의 우리는 늘 강해 보여야 한다는 압력 안에 살아간다. 회의실에서 손이 떨려서는 안 된다. 보고서를 발표할 때 목소리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후배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 모든 압력의 끝에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마저 약함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베드로전서 오장 칠절은 정확히 그 자리를 향해 말한다. 약함을 부정하지 마라. 그 약함을 그분께 가져가라. 그것이 신앙인의 출근길이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어제 닫지 못한 노트북 화면을 다시 연다. 받은 편지함의 숫자가 늘어나 있다. 그러나 환승 통로에서의 그 떨림 한 번이 오늘 하루의 좌표를 살짝 바꾸어 놓았다. 일을 잘하려는 자기 자신의 노력 위에 한 줄의 다른 문장이 얹혀 있다.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 한 줄이 있기에 책상 앞의 첫 한 줄의 이메일을 조금 다른 마음으로 쓰게 된다. 오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이 그렇게 시작된다. 환승 통로의 손잡이 위에서 만난 한 구절이 사무실의 책상까지 동행한다.

퇴근길에 다시 같은 환승 통로를 지나갈 것이다. 오전의 그 손끝의 떨림은 잊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떨림 위에 얹혀 있던 한 줄의 말씀은 잊히지 않을 것이다. 직장인의 평범한 하루 안에도, 그분의 돌봄은 이미 그곳에 와 계신다. 짐을 다 내려놓지 못한 손으로 다시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우리는 그분의 돌봄 안에서 한 번 더 호흡한다. 그것이 오늘의 일반인의 신앙이고, 그것이 베드로전서 오장 칠절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잔잔한 한 마디이다.

한 가지 더 깊이 들여다본다. 베드로전서 오장의 앞 문맥은 겸손에 대한 권면이다. 칠절 직전에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고 말한다. 염려를 맡기는 자리와 겸손의 자리는 결국 같은 자리이다. 자기 자신의 어깨에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려는 자세는, 사실 겸손의 자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세이다. 자기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자기가 끝까지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만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생각. 그 모든 생각의 끝에 우리는 그분의 능하신 손이 머무실 자리를 우리 마음 안에서 점점 좁혀 간다.

출근길 환승 통로의 한 자락에서 만난 작은 떨림은 그래서 부끄러운 떨림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정직하게 만난 한 순간의 표지이다. 그 표지를 통해 우리는 베드로전서의 한 줄로 돌아간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다라는 한 글자가 무겁다. 일부를 맡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큰 것만 맡기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 맡기라고 하셨다. 큰 짐도 작은 짐도, 어제의 짐도 내일의 짐도, 사무실의 짐도 가정의 짐도. 다 맡기라.

맡긴다는 동사를 매일의 습관으로 가다듬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출근길의 한 자락을 그 동사의 자리로 정하는 것이다. 환승 통로의 손잡이를 잡을 때마다, 지하철의 출입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사무실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 작은 동작의 사이사이에 한 줄을 입속에서 굴린다. 주께 맡깁니다. 한 음절씩 천천히 발음한다. 그 발음의 누적이 사십 대의 직장인의 하루를 천천히 다른 결로 옮겨 간다.

오월 마지막 주 목요일이 사무실의 책상 위에서 천천히 정오를 향해 흘러간다. 오전의 회의가 한 차례 지나갔다. 점심을 함께한 동료의 농담이 잠시 마음을 가볍게 했다. 그리고 다시 오후의 일이 책상 위에 펼쳐진다. 그 어떤 순간에도 환승 통로의 손끝의 떨림은 멀리 있지 않다. 그 떨림 위에 한 줄의 말씀이 얹혀 있다는 사실, 그것이 직장인의 신앙이다. 베드로전서 오장 칠절은 회의실의 책상 옆에서도, 출근길 환승 통로의 손잡이 위에서도 동일한 한 마디를 건넨다. 다 맡기라. 그분이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깊이 들여다본다. 베드로전서 오장 칠절의 한 줄을 매일의 출근길에서 익히는 일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지 않는 자세이다. 직장인의 일상은 매일의 한계와의 만남이다. 처리해야 할 업무의 양이 한계를 넘어선다. 응대해야 할 사람의 수가 한계를 넘어선다. 견뎌야 할 감정의 무게가 한계를 넘어선다. 그 한계 앞에서 우리는 늘 자기 자신을 한 번 더 짜낸다. 한 번 더 견디라고, 한 번 더 참으라고. 그러나 그 짜냄의 끝에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는다. 베드로전서는 그 짜냄의 자리를 향해 다른 길을 가르쳐 준다. 한계를 만나면 짜내지 말고 맡겨라.

맡긴다는 동사는 결국 신앙의 동사이다. 맡기려면 받으시는 분의 손이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만 있는 자리에서는 맡길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없다. 누군가의 손이 거기 있어야 한다. 그 손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신뢰가 결국 신앙의 본질이다. 베드로전서 오장 칠절의 후반부는 그 신뢰의 근거를 한 줄로 적었다.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돌보신다는 한 단어가 신앙의 모든 무게를 떠받든다. 한 사람의 일상의 모든 짐을 받아 주실 만큼 그분의 손이 크시다는 사실, 그 사실에 대한 매일의 신뢰가 결국 직장인의 신앙의 본질이다.

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이 다가오면 다시 같은 환승 통로를 지나갈 것이다. 그 자리에서 손잡이를 다시 잡을 것이다. 손끝의 떨림이 다시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한 자락에서 베드로전서의 한 줄을 다시 한 번 입속에서 굴려 볼 것이다. 그분이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 한 마디로 충분한 출근길, 그 한 마디로 충분한 퇴근길. 일반인의 신앙은 그렇게 자란다. 화려한 간증의 자리가 아니라, 환승 통로의 손잡이 위에서 매일 익혀 가는 작은 한 마디의 누적. 그 누적이 결국 한 사람의 평생의 신앙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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