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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 반, 식탁 위에 펼친 성경 — 일요일 아침 큐티 자리


다섯 시 반, 거실은 아직 푸른빛이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새벽빛은 누구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식탁 모서리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의자에 앉아 성경을 펼친다. 책장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펼쳐지는 그 순간이, 일요일 아침의 가장 정직한 시간이다. 어떤 약속도, 어떤 일정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 오직 펼쳐진 책 한 권과, 식어가는 마룻바닥의 미세한 한기와, 천천히 깊어지는 호흡만이 거기 있다.

주중에 미뤄둔 마음들이 식탁 위에 한 장씩 올라온다. 화요일에 듣고 흘려보낸 한 마디, 수요일 회의에서 삼킨 어떤 감정, 금요일 밤에 마음에 박힌 채 잊혀진 누군가의 이름. 식탁 위에 펼친 성경은 그것들을 비추는 등잔 같다. 어둠 속에 있던 것들이 환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자리를 드러낸다. 거기에 있다고 알려준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다만 보여 준다. 그것만으로도 일요일 아침은 한 주의 어느 새벽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진다.

커피 잔 옆에 놓인 성경, 새벽 묵상의 자리
커피 잔 옆에 펼친 성경 — 새벽 다섯 시 반의 식탁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105)

등(燈)이라는 단어 앞에서 자주 멈춘다. 멀리 비추는 등대가 아니라, 발치에 놓인 작은 등이다. 한 걸음, 그 다음 한 걸음. 일요일 아침의 큐티는 한 주의 지도를 미리 그려 보는 시간이 아닌 듯하다. 그저 오늘 첫 발자국이 어디로 향할지를 비춰주는, 그만큼의 빛이다. 그 작은 빛 안에서 나는 자주 안도한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십 년 뒤의 일을 미리 풀지 않아도 된다는 약속에. 오늘은 오늘의 한 걸음만 비추어 주신다는, 그 다정한 한정(限定)에.

식탁 위에 머무는 다섯 가지 풍경

큐티 자리에 앉으면 다섯 가지 풍경이 차례로 다가온다. 첫째는 차게 식은 어제의 커피 잔. 다 마시지 못하고 두고 잔 컵에는 어제의 분주함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그 컵을 옆으로 살짝 밀어두며, 어제의 나를 한 번 안아준다. 잘 견뎌냈다고. 둘째는 식탁보 위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 누군가 먼저 식사를 하고 떠난 자리. 그 부스러기 앞에서, 나만의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는 식탁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새벽에 혼자 앉아 있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그 사실을.

셋째는 펼쳐 둔 성경 페이지의 줄 그어진 자국이다. 작년 어느 날 무엇이 그렇게 마음을 흔들었는지, 굵은 줄이 그어진 구절 위로 손가락을 천천히 미끄러뜨린다. 그때의 절박함이 오늘의 평온 위로 겹친다. 같은 구절이 어떤 날엔 절벽이었고 어떤 날엔 들판이었음을 기억한다. 넷째는 창문 너머 새의 첫 울음. 다섯째는 내 호흡의 길이. 천천히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는 동안, 어제까지 어깨에 얹혀 있던 것들이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마치 옷에 묻어 있던 먼지가 바람에 털리듯이.

이 다섯 가지를 다 지난 뒤에야 본문 한 절을 읽는다. 빨리 읽고 빨리 적용하려던 습관은 어느 새 사라졌다. 한 절을 두 번 읽는다. 그리고 그 절이 식탁 위에 떠 있게 둔다.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떨어진 꽃잎처럼, 천천히 머무르게. 어떤 날엔 그 한 절이 내 안으로 가라앉기까지 십오 분이 걸린다. 어떤 날엔 한 시간이 지나도 표면에 떠 있다. 그래도 괜찮다. 머무는 시간만큼이 그 절의 깊이가 된다.

일요일 아침에만 보이는 것들

주중의 큐티는 자주 정거장 같다. 다음 일정으로 가기 위해 잠시 멈추는 자리. 그러나 일요일 아침의 큐티는 정거장이 아니라 거실이다. 어디로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저 머무는 곳. 오늘 하루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이, 일요일 아침의 가장 큰 선물이다.

그 허락 안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평소엔 너무 빨라서 지나친 단어들. 가령 ‘잠잠히’, ‘오래 참고’, ‘쉬게 하시며’ 같은 말들. 주중에 그 단어들은 너무 느려서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의 거실에서는 그 느림이 오히려 마음에 맞는 박자처럼 들어온다. 빨리 가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정확히 머무는 것이 신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머문 자리에서만, 정확한 다음 걸음이 시작되는 까닭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손을 내려놓는 일이다. 일요일 아침의 식탁에서, 나는 자주 그 손을 내려놓는다. 무언가를 더 잘하기 위해, 더 똑바로 살기 위해 펼친 성경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한 페이지만큼의 빛 안에 머물기 위해서. 잘 살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잠시 식탁 모서리에 올려두고, 빈 손으로 한 절을 읽는다. 그 빈 손이야말로 가장 좋은 그릇이라는 사실을, 거실의 푸른 빛이 조용히 알려준다.

닫는 기도, 다섯 줄

큐티의 마지막은 늘 다섯 줄짜리 기도다. 길게 쓰지 않는다. 화려하게 쓰지 않는다. 첫 줄에는 어제 받은 은혜를 한 가지 적는다. 둘째 줄에는 마음에 걸리는 사람의 이름을 한 사람만 적는다. 셋째 줄에는 오늘 두려운 것 한 가지. 넷째 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은 한 문장. 다섯째 줄에는 ‘그러므로 오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라는 단순한 결심.

다섯 줄을 다 쓰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글로 적힌 것은 더 이상 머릿속에서 떠다니지 않는다. 식탁 위에 적힌 다섯 줄은, 그렇게 한 주의 가장 가벼운 시작이 된다. 그 다섯 줄은 일요일 저녁이 되면 다시 펼쳐진다. 하루 끝에 같은 노트를 펼쳐 한 줄, 한 줄을 마주하면, 새벽에 비추어졌던 빛이 어디까지 함께 걸어왔는지가 보인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새벽빛, 정적인 거실
창 너머의 푸른 새벽빛, 거실에 머무는 시간

커튼 너머의 빛이 조금씩 노란빛으로 바뀐다. 거실의 푸른 시간이 끝나가고, 일상이 슬며시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더 이상 그 노크 소리에 쫓기지 않는다. 다섯 시 반의 식탁에서 받은 한 페이지의 빛은, 하루 끝까지 발치를 비춰주기에 충분하다. 거실은 곧 사람들의 발소리로 채워질 것이다. 누군가는 일찍 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늦게 일어날 것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식탁의 흔적을 천천히 정리한다. 컵을 씻고, 빵 부스러기를 닦고, 성경에 갈피를 끼운다. 그러나 새벽의 그 빛은 식탁 위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일요일 아침의 큐티는 거창한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를 알려준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것. 그 사실 위에서 한 발을 내디뎌도 괜찮다는 것. 그래서 식탁 위의 성경은, 오늘도 조용히 펼쳐진 채 나를 기다린다. 다섯 시 반의 푸른빛 속에서, 한 페이지만큼의 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