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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정원, 시들어가는 튤립 옆에서 — 끝남이 가르쳐 준 시작


오월 일곱 번째 날, 오후 네 시 반의 정원. 햇살은 어느새 노을의 결로 바뀌고, 자전거를 세워 둔 담장 옆에 한 송이 튤립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바닥처럼 활짝 펴 있던 꽃잎이, 오늘은 한쪽 끝에서부터 마른 종이처럼 굽어 들고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그 곁에 쪼그려 앉는다. 어떤 끝남은 큰 소리 없이 다가온다. 어떤 끝남은 그저 한쪽 결이 한 호흡씩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오월의 정원에 핀 꽃들

봄이 정점을 지나는 시간, 정원에는 두 종류의 풍경이 함께 놓여 있다. 한쪽에서는 새로 핀 꽃들이 색을 끌어올리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장 먼저 핀 꽃들이 천천히 자기 자리를 비우고 있다. 시작과 끝남이 한 정원 안에서 같이 호흡하는 광경을, 오월의 늦은 햇살이 가만히 비추어 준다. 한쪽만을 보면 정원은 빛나고, 다른 한쪽만을 보면 정원은 쓸쓸하다. 두 자리를 동시에 보아야, 비로소 정원은 정원다워진다.

처음 정원을 거닐던 날에는 만개한 꽃만 보였다. 색이 가장 진한 자리, 향이 가장 또렷한 자리, 사진을 찍기에 가장 좋은 각도. 그 자리들 옆에 시드는 꽃이 함께 있다는 사실은 자주 눈을 비껴갔다. 끝나는 자리는 정원의 풍경에서 슬쩍 가려진 자리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 계절을 두 번 세 번 지나며 알게 된 것이 있다. 정원은 만개한 자리에서가 아니라, 시드는 자리에서 가장 자주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요한복음 12장 24절

한 알의 밀이라는 말씀이 오래 마음에 머문다. 그 한 줄은 늘 그렇게, 우리가 가장 단단히 쥐고 있던 자리를 부드럽게 풀어 놓는다. 우리는 자주 시작만을 생각한다. 새 결심, 새 계획, 새로운 다짐. 그러나 본문은, 새로운 시작은 늘 한 알의 끝남 위에 자란다고 말한다. 시드는 튤립의 마른 결 위로,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 작은 씨앗이 천천히 떨어진다. 끝남은 시작이 머무는 흙이 된다.

오늘의 정원에서 오래 머무는 까닭이 있다. 며칠 전부터 마음 한쪽에 자리한 한 가지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 붙들고 있던 어떤 일정 하나, 오래 손에 쥐고 있던 어떤 관계 하나, 더 이상 같은 모양으로 이어 갈 수 없는 어떤 자리 하나. 그 자리에 마침표 같은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다. 마음이 무거웠다. 끝남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드는 튤립의 한 잎 위에서, 그 무거움이 한결 가벼워졌다. 모든 끝남은, 정원 안의 한 자리이기도 하다.

늦봄 정원에 시들어가는 튤립

한 알의 밀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그대로 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한 알 그대로 있는 자리는 안전해 보인다. 모양이 그대로이고, 자기 색이 그대로이고, 자기 자리가 그대로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 자리에서는 한 알이 그대로일 뿐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리를 비우고 흙으로 떨어지는 자리, 그 자리에서야 비로소 많은 열매가 시작된다. 끝남은 손해처럼 보이지만, 끝남은 가장 풍성한 시작이 자라는 흙이다.

정원의 한 자리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 끝으로 흙을 가만히 만져 본다. 부드럽고 차다. 작은 풀씨 하나가 어디서 굴러왔는지 흙 결에 박혀 있다. 며칠 후에는 아마 그 자리에서 작은 잎이 올라올 것이다. 시드는 튤립과 막 시작하는 풀씨가 같은 자리에 있다. 오월의 정원에서 그 둘은 서로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다. 한쪽은 자기를 비우는 일을 하고, 다른 한쪽은 자기를 채우는 일을 한다. 정원은 그 두 일을 하나의 호흡으로 안고 있다.

“끝남이 시작을 가르쳐 준다.” 정원의 흙냄새 위로 그 한 줄이 떠올랐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자리가 있다. 한쪽에서는 무엇인가가 마무리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도 모르는 작은 시작이 흙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가 끝남의 자리만 응시할 때, 시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작의 자리만을 좇을 때, 우리는 자주 자기 자리를 잘 비우지 못한다. 두 자리를 함께 보는 눈이, 신앙의 눈에 가깝다.

해가 한 뼘 더 기울었다. 시드는 튤립의 그림자가 길게 흙 위로 드리워진다. 그 그림자가 마치 한 줄의 글씨처럼 보인다. 끝남은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그 한 줄. 손가락 끝으로 시든 꽃잎을 살며시 만져 본다. 단단했던 결이 이제는 부드럽다. 그 부드러움이, 흙 가까이로 자기 자리를 옮긴 자리만이 가질 수 있는 결이다. 그 부드러움 위로, 새로운 무엇이 자라나고 있다.

정원에서 일어선다. 옷에 묻은 흙을 가볍게 털고, 손바닥에 남은 봄의 결을 한 번 더 느낀다. 마음 한쪽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래 손에 쥐고 있던 그 결정 하나, 오늘은 흙에 가까이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끝남이 시작의 자리를 마련해 주리라는, 그 한 알의 약속이 정원의 햇살 위에 가만히 머물러 있다. 오월의 일곱 번째 저녁이, 시드는 튤립과 함께, 천천히 자기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정원을 나서기 전, 시든 튤립의 줄기 옆에 두고 온 메모지 한 장을 떠올렸다. 며칠 전 식탁 위에 적어 둔 한 줄, “내려놓을 자리는 늘 가장 정직한 자리에 있다.” 그날 밤에는 그 한 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둔 채 잠들었다. 오늘 정원에서 그 한 줄의 의미가 천천히 풀린다. 정직한 자리는 늘 흙 가까이에 있다. 흙 가까이 내려갈수록, 자기를 가리던 화려함은 가벼워지고, 자기를 지탱하던 단단함은 부드러워진다. 부드러움 위에서야,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봄꽃들의 시드는 시간은 결코 슬픈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다음 계절을 위해 흙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한 송이가 자리를 비워 주어야 다른 한 송이가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정원은 그 비움과 채움의 호흡 위에서 매년 다시 살아난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한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비울 때, 우리는 다음 자리에서 더 깊은 무엇을 받게 된다. 비움은 손해가 아니라, 다음을 위한 정직한 준비이다.

해가 거의 다 기운 시간, 가로등 한 개가 오렌지빛으로 켜졌다. 정원의 모든 색이 한 톤 낮아진다. 시드는 튤립과 막 자라는 풀씨와 곧 피어날 작약 봉오리가, 한 빛 안에서 같이 잠긴다. 오늘의 정원이 내일의 정원에게 가만히 한 줄을 건네는 것 같았다. “끝남을 두려워하지 말 것. 시작은 늘 그 옆에 있다.” 그 한 줄을 마음에 적어 두고, 자전거를 끌어 정원을 나선다. 오월의 일곱 번째 저녁이, 한결 부드러운 결로 마음 한쪽에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