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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


살아가면서 눈물을 삼켜야 하는 때가 가끔 생기죠. 그때마다 나름대로 슬기롭게 잘 이겨 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내게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있어요.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가방에서 무슨 종이 하나를 꺼내더니 내 앞에 내밀더군요. 그것은 겨울 방학 중에 열 리는 스키캠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참가 여부를 묻는 설문지였습니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참가하지 않습니다.”에 동그라미표를 했는데 아들이 무척이나 가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가면 안 돼?” 하고 묻는 거예요.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이는 또다시 가면 안 되느냐고 묻더군요. 아이에게는 정말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아빠 오시면 여쭤 보고 다시 결정하자고 얼버무렸죠 .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자 아이는 아빠를 붙들고 “아빠, 스키캠프 가면 안 돼요?” 하고 물었습니다. 남편 역시 두말 않고 “안돼.”라고 대답했죠. 실망하는 아이를 보고 남편도 적잖이 놀라는 듯했습니다.

나와 남편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가 혈우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혈우병은 시간에 맞춰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아이가 아직 어려 혼자서 주사를 놓을 수 없으므로 1박 2일로 부모 곁을 떠나 캠프에 간다는 것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죠.

이유도 모르고 캠프에 못 간다고 하니 아이도 당황스러운 모양입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저 스키캠프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겠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일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결국 이렇게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걸까요.

아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안 된다고 하는 부모의 입장이 너무도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해 주고 싶은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강숙경 / 경기도 남양주시 화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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