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성숙을 추구하십시오.


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숙이란 “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좀 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성숙이란 이것과 정반대입니다.

헨리 나우웬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해 좀 더 의존적이 되고 종속적이 되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성숙을 어떻게 배워갈 수 있을까요?

리처드 포스터는 그의 유명한 책인 “기도”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고독을 체험하십시오.

헨리 나우웬이 말한 대로, 고독이 없이는 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고독에 의해서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람들에 대한 속박과 우리자신의 내적 강요에서 자유케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을 체험하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그것을 무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의도적인 고독을 삶 속에서 실천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인간의 소리를 적게 듣게 되고 그럴수록 하나님의 소리에 더욱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적어지고 하나님의 기대에 더 많이 부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독을 통해서 우리는 생존경쟁에서 이길 힘이 아니라 생존경쟁 자체를 무시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필요이상의 재물을 얻고자 하는 욕망, 분수에 넘치는 지위를 얻고 싶어하는 욕구를 서서히 억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독은 항상 외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1. 죽음을 묵상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오늘 죽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묵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교훈은 내가 없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태양도 여전히 눈부시게 떠오를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분주하게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의 발견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아에 대해 바른 반성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나는 혹시 세상을 내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세상이 마치 우리의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고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마치 내가 없으면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멈추어버릴 것처럼 자신의 중요성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도록 말입니다.

이렇게 죽음에 대한 묵상은 바로 우리 자아의 죽음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 우리가 얼마나 가치 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영원으로 이끄시고 우리의 존재를 가장 숭고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우리의 올바른 자리를 회복시켜 줍니다.

  1. 유순한 기도를 하십시오.

유순한 기도란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포기하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유순함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돛의 비유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키를 잡고 능숙한 솜씨로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배를 향하게 할 때 배가 움직이는데 따라서 바람을 선택하는 돛을 상상해보십시오.

배가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돛의 유연성 때문입니다.

돛 대신에 나무판을 달면 어떻게 될까요?

배는 앞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돛은 나무판보다 훨씬 약하지만 그 약함이 오히려 배를 움직이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길에 내어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약하고 무르고 공격받기 쉬운 위치에 서십시오.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를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영적 지도자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성공입니까?

성숙입니까? 성공은 항상 외부 지향적이지만 성숙은 항상 내면 지향적입니다.

성공은 항상 무엇인가를 쌓아가는 작업이지만 성공은 항상 무엇인가를 비워내는 작업입니다.

무엇보다 성공은 항상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인 존재로 만들지만 성숙은 항상 우리를 하나님께 의존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바로 이러한 성숙을 목표로 살아가시는 리더십의 소유자가 되십시오.

관련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