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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하나님의 일


반 투안 주교는 베트남이 공산화되었을 때 체포 구금되었다. 무시무시한 13년의 감옥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중 9년은 독방에 수감되었다. 교회는 폐쇄되었고 양떼는 흩어졌다. 창문 하나 없이 어둡고 악취 나는 감옥에 갇혔을 때 교구를 빼앗기고 하나님을 위해 시작한 수많은 사업들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성직과 관련된 모든 일이 폐멸의 위기에 처한 것을 통분히 여겼다.

어느 날 밤 반 투안은 세미한 내면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사업)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가 세상에서 벌여놓았던 수많은 사업들은 분명 훌륭한 하나님의 일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네 일은 너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선택했지 하나님의 일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반 투안은 새로운 평화를 얻었다. 성직이며 사업이며 일체의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본질적인 신앙의 여로에 들어섰음을 느꼈다. 이 깨달음 하나가 참혹한 수감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희망의 뿌리가 되었다.

예수님 일행이 찾아왔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초점이 달랐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생각에서는 하나였지만 자세는 달랐다. 언니는 예수님 접대에 정신을 빼앗겼다. 동생은 예수님의 인격과 말씀에 사로잡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준비에 바빴던 마르다가 앙칼진 목소리로 신경질을 부렸다. 마리아가 자기 일을 좀 돕도록 꾸짖으시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러 일로 들떠 있던 마르다보다는 오직 필요한 한 가지를 알았던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셨다. 마르다는 하나님의 사업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인격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흔히 마르다는 실천을, 마리아는 명상을 상징한다고 본다. 단연 명상이 실천에 앞서야 한다. 영성이 해방 실천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

참 분주하다. 하나님의 일에 바쁜 것이다. 웅장한 교회도 지어야 하고 이런 행사 저런 프로그램, 해가 뜨는지 달이 뜨는지 모를 정도로 도무지 정신이 없다. 게다가 각종 교권과 관련된 정치사업에 몰두할 경우 더더욱 복잡하다. 여하한 변명을 하더라도 하나님 그분의 인격에 바쁜 것이 아니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사업과 나의 공명심과 이기심에 바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하나님은 집(성전)이 필요 없는 분인데(사 66:1) 왜 우리는 건축하는 일에 목숨을 걸까? 왜 우리는 교권을 잡는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걸까? 하나님보다 하나님에 관한 일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이다.”(Porro unum est necessarium.)

김흥규<내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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