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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아픔에서 이 글을……


생각해 보게 하는 일들….

나는 얼마 전에 어떤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이 쓴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나는 그 책을 읽어 보면서 너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책에 써 놓은 글과 그 분의 실제 행동은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아는 그분은 그렇지 않은데 그 분 책에는 그렇게 써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해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가운데 우리 자신들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어 봅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글 따로 행동 따로.

말 따로 행위 따로,

우리는 지금 어떠합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혹 나도 지금 그러한 오류에 빠져 있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나는 지금 한국의 유명한 목사님이 쓴 글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을 나무라기 위함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기를 원하고 또 직시함으로 더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좋게 하랴 사람을 좋게 하랴”

우리는 지금 누구를 좋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생입니까?

그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두 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을 좋게 하기 위한 인생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그렇습니까?

말은 이렇게 해도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좋게 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또 그렇게 목표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줄서기에서도 기준이 잘못 되면 모든 줄이 틀어지듯이

인생에 있어서도 기준이 잘못되면 말 그대로 틀어지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 다르고 속 다른 삶을 우리 그리스도인이 살아가고 있다면

성경적인 옳바른 기준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타나는 겉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안나타나는 안(속)은 나의 유익을 위해….?????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시간 우리 자신을 봅시다.

그러나

대부분이 자기 자신이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목사님들도 하나님의 일을 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나

그 대부분은 자신을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들 얘기를 해서….)

교회 부흥을 생각해 보십시다.

누구를 위한 교회 부흥입니까?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목사인 자신이 내 세울것이 있기 위해서인가요.

교인이 얼마나 되냐고 누가 물으면 세상 말로 쪽 팔리지(?) 않기 위해 교회는 부흥되어야 합니까?

아니 교회 부흥의 잣대가 수에 있으니 그럴까요?

그렇다면

농촌에서 한 두 명의 영혼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고 목숨 바치는 분들은 모두 다 실패한 목회자 인가요?

여기서 궁금중의 하나!!!!

왜 서로 다른 목사님들이나 서로 다른 교인들이 만나면 “너희 교회 교인은 몇 명되냐”는 것이 주된 관심이 될까요?

차라리 “너희 교회는 영혼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냐?”라고 물을 수는 없을까요?

제자 교육은 어떻습니까?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제자 교육을 시키고 있다면 잘하는 일 일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그들이 제자 교육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진정 세상속에 들어가 진정한 빛이 되고 있나요?

아니면 교회당 안에 갇혀 목사님께 충성을 다하고 또 헌금 많이 하고 또 교회당이 문제가 생기면 수리하고 …

그리고 모든 예배에 안 빠지고 잘 나오면

우리는 그러면 그들을 믿음이 좋다고 얘기 합니다.

비록 그들의 영혼과 삶 속에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든 없든 말입니다.

얼마 전에 제 주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는 집사님이 평신도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교회를 떠나야 될 것 같다고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분은 집사님으로 계실 때 그 교회당에서 헌금도 많이 하시고 또 목사님 식사 대접도 많이 하시고

교회당에 필요한 것들도 물질적으로 많은 봉사를 했다고 했습니다.

하여간 그 교회당에서는 한마디로 목사님의 오른팔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선교는 무슨 놈의 선교야 우리 교회당에서 열심히 충성하면 됐지“ 라며 호통을 치더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절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분도 스스로가 놀라 어찌할 바를 몰라 어떤 것이 주님의 뜻인지 되묻고 또 물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목사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까지 전화를 해서 상처를 주었다고 하니

이런 부분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여러분.

지금 우리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가 가진 가치는 무엇입니까?

단지 교회당 건물을 위해 죽도록 충성을 하시면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받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줌으로

내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것들을 다 했다고 위안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목사에게 잘하는 것이 곧 주님께 잘하는 것이라는 엉뚱한 가르침을 계속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하라고 목사님들이 가르치니까 난 그냥 그렇게 합니다“ 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목사님에게 잘하면 복 받고 장로님이나 집사님들이나 교사 선생님들,

그리고 믿는 어린아이들에게 잘하는 것은 상 받지 못해서 그렇게 못하시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하도 거룩한 아픔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당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가슴이 아파옵니다.

어른들은 아주 의리의리한 예배당에서 예배드리고

어린 아이들은 계단을 내려가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캄캄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또한 어른들의 지나친 이기주의는 아닌지요.

혹 어떤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먼저 배려하는 가운데 그 좋은 어른들이 사용하는 예배당을 양보해 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아니면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거나 아니면 시간대를 달리해서 함께 본당을 사용할 수는 없겠는지요.

전에 유럽 교회당에서는 백인 따로, 흑인 따로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백인이 가는 교회당,

흑인이 가는 교회당,

혹 어린아이가 본당에 들어갔다가 혼쭐이 나는 상황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는 않는지요?

교회당이 더러워진다고 어린이들은 출입금지입니까?

그러면 저는 묻고 싶습니다.

교회당이 중요 합니까 어린 한 영혼이 중요합니까?

물론 어린 영혼이지요?

당연합니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그렇지가 않죠?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곧 본질을 상실한채 부수적인 것들을 위해 애쓰고 힘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 특히 담임 목사님들이 이런 것들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

바로 가르치려는 부 교역자를 야단치는 담임 목회자,

왜 내가 가르치는 것과 달리 가르치느냐며 부 교역자 쫓아내는 담임 목회자,

이런 분들이 있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가 가르칠 수 없는 것을,

내가 알지 못했던 것들을 또 다른 교역자와 부교역자를 통해 바로 가르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겁니다.

오늘날 부교역자를 쓰는 생각부터 바뀌어져야 합니다.

어떻게 부 교역자에게 담임 목사의 종이 되라고 쉽게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목사가요.

우리는 주님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법이나 헌법들을 보면 죄송하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 담임 목사에게 유리하게 해 놓았고

또 목사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들로 나열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목사보다 주님을 더 내 세울수는 없는지요.

부 교역자에게도 나의 종이 되지 말고 주님의 종이 되라고 말할 수는 없는지요.

주님의 종이 된자가 어찌 담임 목사에게,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하지 않겠습니까?

부교역자는 담임 목회자를 돕는자가 아닙니다.

부교역자는 담임 목회자가 놓쳐 버린 일들을, 담임 목회자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하여 부 교역자들은 나주 중요하고 소중한 분들인 것입니다.

이제는 부 교역자가 바로 가르치면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어야 합니다.

부 교역자도 담임 목사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사례비 부터 엄청나게 차이나는 것,

어떻게 보면 담임 목사님보다 사례비를 더 많이 주어야 하는 분들이 부 교역자일 것입니다.

부 교역자가 바로 성경적으로 잘 가르친 것도 내 권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제는 뭉개버려서는 안될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해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지,

교회당을 다니시면서 내가 왜 교회당을 다녀야 하는지,

내가 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내게 직분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아니 본질을 이해하실 수 있겠는지요.

목사가 목사 이야기를 서슴없이 쓴 것은 목사인 제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많은 목사님들이 저에게 돌팔매를 할지도 모릅니다.

압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다 보니 너무 민망한 마음이 들어 노파심에서 이글을 쓰게 됩니다.

선교지에서의 선교사님들,

목회 현장에서의 목사님들,

그리고 삶속에서의 평신도 여러분,

말 따로 행동 따로는 이제 그만 했으면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큰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진실로 진실로”만 하십니다.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십시다.

우리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할 수 있으십시다.

우리 주님이 그러셨듯이 말과 행동이 하나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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