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섯 시 반, 거실 한쪽 베란다 문을 살며시 열었다. 아직 거리 위로 자동차 한 대 지나가지 않는 시간, 도시 전체가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것 같은 시간이었다. 어제의 피곤이 발끝까지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눈이 떠진 채 다시 잠들지 못했다. 마음 안쪽에서 어떤 작은 손이 옆구리를 톡톡 두드리는 듯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부름이 있었다. 그 부름을 따라 베란다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섯 시 반의 푸른 빛을 마주했다.
그 푸른 빛은 한낮의 파란 하늘과는 다른 색이었다. 밤이 떠나려 하면서도 아직 완전히 물러서지 못한 색, 아침이 오려 하면서도 아직 도착하지는 않은 색. 사람의 언어로 적기에는 너무 얇은 빛이었지만, 마음이 받기에는 충분히 깊은 빛이었다. 그 빛 앞에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베란다 난간 위에 손을 얹은 채, 도시가 깨어나기 전의 그 짧은 정적을 길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나는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편 57:8)
시편 기자의 그 한 줄이 베란다 난간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다윗은 동굴 속에서, 쫓김의 끝자락에서, 새벽이 자기를 깨우기 전에 먼저 새벽을 깨우겠다고 노래했다. 어둠이 자기를 무겁게 누르고 있을수록, 그는 더 일찍 일어나 빛을 향해 자기 자신을 던졌다. 잠들지 못한 마음의 자리, 이 다섯 시 반의 베란다는 어쩌면 그 한 줄이 다시 떨어져 내리는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리가 아니라, 새벽을 향해 먼저 깨어나는 자리.

지난 한 주 동안 내 마음은 조용히 무거웠다.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큰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큰 손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작은 어긋남이 조금씩 쌓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어긋남들이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을 깊은 곳에서부터 흔든다는 것을, 이번 주에 새삼 다시 배웠다. 큰 풍랑이 아니라, 자잘한 물결의 연속이 사람을 더 자주 지치게 한다는 것도.
그렇게 지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 잠 같지 않은 잠을 잤다. 그리고 다섯 시 반에 깨어났다. 처음에는 또 잠을 설쳤다고 한숨이 났다. 그런데 베란다 앞에 서서 그 푸른 빛을 마주한 순간, 한숨의 방향이 조금 바뀌었다. 이른 새벽에 깨어난 것이 ‘불면’이 아니라 ‘부름’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슬며시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 한 주 동안 누적된 작은 어긋남들을 정리할 자리를, 오늘 새벽으로 옮겨 놓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베란다 한쪽에 작은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무릎 위에 작은 노트를 펼치고, 한 손에는 차가운 머그잔을, 다른 한 손에는 어제 표시해 둔 시편 한 구절이 들어 있는 성경책을 들었다. 노트 위에 한 줄, 두 줄, 지난 한 주 동안 마음에 걸렸던 작은 것들을 적기 시작했다. 큰 죄가 아니라 작은 마음의 그늘들.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부풀어 오른 자존심, 가족에게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 일에서 미루기만 한 어떤 결정, 잠들기 전까지도 손에서 놓지 못한 화면.
그 목록을 적어 내려가는 동안, 베란다 너머의 푸른 빛은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푸른색이 회색으로, 회색이 다시 옅은 분홍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색이 변하는 동안, 내 안에서도 어떤 색이 함께 옮겨 가고 있었다. 부끄러움이 부끄러움으로만 남지 않고, 부끄러움이 회개로, 회개가 다시 작은 결심으로 자리를 옮겨 가고 있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예레미야애가 3:22-23)

예레미야애가의 이 구절은 늘 새벽과 함께 떠올랐다. 어제까지의 모든 어긋남이 아무리 깊었다 하더라도, 오늘 아침의 인자와 긍휼은 새것이라는 약속. 그것은 일종의 ‘새 페이지’ 같은 약속이다. 어제의 그늘을 무겁게 안고 잠자리에 들었더라도, 새벽이 한 번 깨어나면, 그 새벽 위에 다시 새로운 글이 시작될 수 있다는 약속.
다섯 시 반의 베란다에서 한 줄의 결심을 적었다. 큰 결심이 아니었다. 오늘 하루, 가족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오늘 하루, 한 사람에게라도 빠르게 답장을 보내자. 오늘 하루, 자기 전 화면을 십 분 일찍 내려놓자. 화려한 다짐이 아니라, 작고 가벼운 한 줄. 그러나 그 한 줄이 다섯 시 반의 푸른 빛 안에서 적힌 것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자기 다짐이 아니라, 새벽을 깨우신 분이 마음에 맡겨 주신 한 줄이라고 믿어 보기로 했다.
잠시 후, 가까운 골목 어귀에서 작은 새 한 마리의 첫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어떤 신호처럼, 어떤 부름처럼, 그 울음은 도시의 첫 정적 위로 가지런히 내려앉았다. 그 소리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시 전체가 그 작은 울음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순간, 한 가지 깨달음이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새벽의 부름은 늘 작고 단순하다는 사실. 화려한 신호가 아니라, 한 마리 새의 짧은 울음 한 번, 푸른 빛의 한 결, 마음 안쪽의 작은 두드림 한 번. 그 작은 부름을 알아채는 사람만이 새벽을 자기 시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새벽은 늘 ‘일찍 일어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작은 신호를 알아챈 사람’의 것이다.
그 깨달음은 작은 한 줄의 기도로 이어졌다. 오늘 하루, 큰 음성보다 작은 부름에 더 자주 귀를 기울이게 해 달라는 기도. 사람들의 큰 평가보다 작은 양심의 떨림에 더 빨리 멈추어 서게 해 달라는 기도. 어수선한 화면의 큰 알림보다 가까이 있는 가족의 작은 한 마디에 먼저 고개를 들게 해 달라는 기도. 베란다 난간 위에 손을 얹은 채, 그 기도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마음 안에서 한 번 더 천천히 되짚었다. 새벽의 푸른 빛은 그 기도를 받아 안고,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옅게 미소짓듯 색을 한 톤 더 부드럽게 바꾸어 갔다.
어느새 푸른 빛은 사라지고, 골목 끝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첫 자동차가 지나가고, 베란다 아래로 빵집의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도시는 자기 일상의 첫 페이지를 다시 펴고 있었다. 그 페이지 위로, 다섯 시 반의 푸른 빛 안에서 받은 한 줄의 말씀이 함께 따라 올라왔다. 잠들지 못한 마음의 자리에 떨어진 그 한 줄이, 오늘 하루를 살아 내는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 베란다 난간 위에 손을 얹은 채로 조용히 새겨졌다. 새벽은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를 먼저 깨운다. 그 부름 앞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새로 시작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