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오월의 끝자락과 유월의 처음 사이에는 언제나 어떤 특별한 공기가 있다. 봄이 완전히 떠나가고 여름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 그 짧은 틈새에 피어나는 정서 같은 것. 뜨겁지만 아직 견딜 만하고, 습하지만 아직 불쾌하지 않은, 그 기묘하게 아름다운 계절의 문턱.
나는 이 시기가 좋다. 아직 장마가 오지 않았고, 하늘은 종종 높고 파랗다. 아침에는 선선한 기운이 남아 있어서 창을 열어두어도 좋다. 그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살랑이는 것을 보면서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이 하루를 견디게 해준다.

골목길을 걸으며
어제 저녁에는 오랜만에 동네 골목을 걸었다. 요즘은 헬스장도 가고 운동도 하지만, 어떤 날은 그냥 걷고 싶다. 목적 없이, 어디를 가야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발이 이끄는 대로. 저녁 여섯 시가 넘어도 하늘이 밝아서 그 빛 아래 골목을 걷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담벼락 옆으로 능소화가 피어 있었다. 주황빛 꽃들이 담을 타고 올라가 하늘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참 그것을 바라보았다. 능소화는 내가 좋아하는 꽃 중 하나다. 이름이 ‘하늘을 향한 꽃’이라는 뜻이라고 어디서 읽은 것 같다. 담벼락이라는 낮은 곳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곳으로 뻗어 올라가는 그 생명력이 어쩐지 신앙의 이미지와 겹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낮은 곳에서 시작해,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존재. 담벼락이 아무리 낡고 초라해도 꽃은 핀다. 환경이 아무리 척박해도 생명은 피어난다. 골목 한편에 피어 있는 능소화 한 다발이 오래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작은 것들의 신학
신앙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거대한 것들보다 작은 것들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웅장한 설교보다 고요한 새벽 기도에서, 화려한 집회보다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에서. 하나님은 종종 소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오신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고 지진 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 후에 세미하고 고요한 소리가 있었다고, 엘리야가 들었던 것처럼.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고 지진 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 후에 세미하고 고요한 소리가 있었더라
— 열왕기상 19:12
나는 요즘 그 ‘세미하고 고요한 소리’를 더 자주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소리 속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알림, 너무 많은 말들. 그 속에서 세미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멈추어야 한다. 골목을 걷는 것이 그 멈춤이다. 능소화를 바라보는 것이 그 멈춤이다.

카페 창가에서
걷다가 작은 카페 하나에 들어갔다. 오래된 벽돌 건물 안에 자리 잡은,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창가에 앉아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키고, 그냥 앉아 있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책도 펴지 않고, 그냥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아저씨, 이어폰을 끼고 빠르게 걸어가는 젊은 여성, 천천히 지팡이를 짚고 걷는 어르신.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나는 그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겠지. 저 걸음마다 하나의 삶이 있고, 하나의 무게가 있겠지.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저 모든 사람들을 동시에 보고 계신다는 것. 저 아저씨의 산책도, 저 여성의 급한 발걸음도, 저 어르신의 느린 걸음도 모두 그분의 시야 안에 있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전지하심이고,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유월이 가르쳐 주는 것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았다. 유월의 저녁 하늘은 오래 색이 남는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고, 그것이 서서히 보라색으로 바뀌고, 마침내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하늘은 계속해서 아름답다.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하나님은 세상을 그냥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을.
유월이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계절은 바뀐다. 봄은 가고 여름이 온다. 그리고 그 바뀜 속에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능소화는 피고, 하늘은 물들고,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산책을 한다. 삶의 작은 것들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담겨 있다.
신앙이 거창한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골목을 걸으며 꽃을 보는 것, 카페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저녁 하늘의 색이 바뀌는 것을 지켜보는 것. 그 작은 순간들 안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신앙의 일상이다. 거룩은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곳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일상 안에, 유월의 골목 안에, 능소화 한 다발 안에 깃들어 있다.
오늘도 그런 하루가 되면 좋겠다. 작은 것들 안에서 큰 분을 만나는 하루. 세미하고 고요한 소리를 듣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