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이 깊어지는 길목에서 장마가 시작되었다. 아파트 창밖으로 빗줄기가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멈추게 한다. 서두르던 발걸음, 따라가던 생각, 붙들고 있던 걱정들. 빗소리 앞에서는 잠시 멈춰 서게 된다. 그날 저녁, 나는 오래된 성경을 꺼내 잠언 3장을 펼쳤다.

읽다 보면 항상 걸음이 느려지는 구절이 거기 있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장 5-6절
마음을 다하여. 이 표현이 오늘따라 걸렸다. 마음의 절반을, 혹은 마음의 대부분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다하여라고 했다. 남겨두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신뢰하되 보험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늘 무언가를 남겨둔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방식의 출구를 조용히 열어놓는다. 신뢰한다고 하면서도 플랜 B를, 혹은 플랜 C를 마음 한구석에 챙겨둔다.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닐 수 있다. 지혜로운 대비와 믿음의 신뢰는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사이의 경계를 나는 자주 흐릿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이 빗소리 속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은 더 도전적이다. 명철, 즉 나의 이성, 나의 분석,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판단.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니. 이성을 버리고 살라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뉘앙스는 이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 생각이 가장 옳다고 믿는 자아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 나의 명철이 아닌 것에 나를 맡기는 훈련. 그것이 신앙의 핵심이라는 것을 나는 이 빗소리 속에서 다시 떠올렸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범사란 모든 일이다. 큰 일만이 아니다. 오늘 저녁 뭘 먹을지 정하는 일도, 내일 어디를 먼저 갈지 결정하는 일도, 누구와 어떤 말을 나눌지를 고르는 일도. 모든 자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들어가라. 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살아보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를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깐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약속이 뒤따른다. 지도하신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다 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는 때로 같을 수 있지만,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신뢰는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힘이다. 내가 원하는 길이 막혔을 때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끌리고 있을 때도, 그 길 역시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길이라는 것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잠언 3장 6절이 말하는 신뢰의 실체다.
빗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창밖의 빗줄기가 유리를 적시고, 그 아래 아스팔트 위에 작은 물결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불확실한 것들이 지금도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잠언 3장 다섯 절 앞에서, 나는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붙들어 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조용히 신뢰하기로 했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일이다. 그리고 신앙 에세이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을 천천히 받아 적는 일이다. 오늘 이 빗소리 속에서 나는 잠깐 그 일을 했다. 명철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해 신뢰해 보겠다는 그 작은 다짐. 오늘 밤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빗소리가 창을 두드리는 한, 이 조용한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