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요일 오후, 두 시가 막 지났을 무렵 동네 골목 안쪽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섰다. 평소에는 잘 들르지 않는 곳이지만, 그날따라 마음이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해서 평소와 다른 길로 발걸음을 옮긴 참이었다. 문을 열자 종소리가 한 번 짧게 울렸고, 안쪽에서 누군가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두엇뿐이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노트북을 펴 놓은 청년이 가만히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어른 두 분이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봄볕이 길게 비스듬히 내려와 보도블록 사이의 그림자를 길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잔이 도착하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골목 끝쪽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 옆으로 어린아이를 손에 잡은 젊은 어머니가 지나갔다. 그 평범한 풍경이 어쩐지 그날따라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다.
창가 자리에 앉아 펴 든 작은 노트
가방에서 작은 노트와 펜을 꺼냈다. 평소에 영성 일기를 적는 노트인데, 한 동안 펴지 못한 채 가방 깊은 곳에 들어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펴 보니 한 달 전 어느 주일 저녁에 적었던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그때 적었던 문장을 한 줄 한 줄 다시 읽어 보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 사이에 마음의 결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새삼 느껴졌다.
새 페이지를 펴고 날짜를 적었다. 그 옆에 짧게 “오후 두 시, 골목 안 카페”라고 적었다. 그러고 나서 한 줄을 가만히 더 적었다. “마음이 빈 것 같은 날이다.” 그 한 줄을 적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살짝 가벼워졌다. 이름 붙이지 못한 채 떠다니던 어떤 감정에 이름을 붙인 셈이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시편 121:1-2
그 시편 구절을 작은 글씨로 노트 한 켠에 옮겨 적었다. 산을 향해 눈을 들었던 옛 순례자의 마음을, 골목 안 카페 창가에 앉은 한 사람의 오후로 가져와 다시 펼쳐 보는 일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그 옛사람도 우리처럼 마음이 빈 듯한 날을 분명히 만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빈자리에서 멍하니 주저앉지 않고 시선을 위로 옮겼다.
나는 그 동작을 가만히 따라 해 보았다. 창문 너머 골목 위쪽 하늘로 시선을 들었다. 옅은 구름이 길게 흩어져 있었고, 그 너머에 흐릿한 푸른빛이 펼쳐져 있었다. 어디서 도움이 올까. 그 옛 순례자의 질문이 오후 두 시의 카페 안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답은 한참 전에 정해져 있었다. 천지를 지으신 분에게서.

오후의 잔 위에 떠오른 작은 깨달음
커피 한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옅은 신맛 뒤에 따뜻한 쓴맛이 길게 남았다. 컵 가장자리에 옅은 김이 다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김의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내가 빈 듯하다고 느낀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듯한 마음은 사실 무언가가 사라진 자리라기보다, 무언가가 들어올 자리였다. 우리는 늘 무엇으로 마음을 채워두려 한다. 일정, 정보, 사람들의 말, 어제 보았던 영상의 잔상, 내일 해야 할 일의 목록. 그 모든 것들이 우리 안을 빈틈없이 채워둘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상태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마음이 다른 것들로 점령된 상태일 뿐이다.
마음이 빈 듯한 날은, 그 점령군들이 잠시 물러난 날이다. 그 물러난 자리에 우리가 무엇을 다시 들이느냐가 우리 하루의 결을 결정한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자극을, 더 많은 일정을 다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오후, 카페 창가의 빛을 가만히 받으며 나는 그 자리에 다른 것을 들이고 싶었다. 작은 침묵을, 짧은 시편 한 구절을, 산을 향해 시선을 드는 한 동작을.
노트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비어 있는 마음은 사실 들어올 자리다.”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 옆에 작은 화살표를 그리고 “어떤 자리?”라고 다시 적었다. 한참 후에 그 옆에 답을 적었다. “그분이 들어오실 자리.” 그 짧은 문답이 어느새 그날 오후 영성 일기의 한 페이지를 채우고 있었다.
창밖으로 다시 비치는 봄볕
카페 문 옆쪽 화분에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분홍빛 작은 꽃잎이 다섯 장 동그랗게 펼쳐진 모양이었다. 정확히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작은 꽃이 그 자리에 있어서 그 카페 한 모퉁이가 한층 따뜻해 보였다. 큰 꽃이 아니어도, 화려한 색이 아니어도, 자기 자리에 충실히 피어 있는 한 송이의 힘이 있었다.
나도 한 송이로 그 자리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어도, 화려한 무엇이 아니어도, 내게 주어진 그 자리에 가만히 피어 있는 한 송이로. 그 모습이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따뜻함이 되어 준다면, 그것으로 그날 하루는 충분히 살아낸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거의 다 마셨다. 잔 바닥에 옅은 자국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내가 그 자리에 머물렀던 시간의 흔적이었다. 마음이 빈 듯하여 들렀던 카페가, 어느새 마음이 다시 조용히 채워지는 카페가 되어 있었다. 그 채워짐은 무언가를 더 보태어서 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비워두는 동안 위에서부터 천천히 내려와 채워진 것이었다.
노트를 덮으며 가만히 속으로 한 줄의 기도를 적었다. 오늘도 마음이 빈 듯할 때, 그 빈자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시기를. 그 자리에 천지를 지으신 분의 도움이 다시 흘러들어 오시기를. 산을 향해 눈을 드는 옛 순례자의 작은 동작을, 오후 두 시의 카페 창가에서도 잊지 않게 해 주시기를.
카페 문을 열고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종소리가 등 뒤에서 한 번 짧게 울렸다. 봄볕이 어깨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그 잠깐의 순간에, 마음 한 켠이 조용히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오후 세 시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골목길 위에 다시 펴 보는 작은 깨달음
골목 입구쪽 작은 떡집 앞을 지나는데, 마침 막 쪄 낸 떡 한 판이 진열대 위에 놓이고 있었다. 김이 길게 올라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떡집 사장님이 진열대 너머에서 짧게 눈인사를 건넸고, 나도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떡을 쪄 내는 일. 그 평범함이 사실 한 도시를 살리는 작은 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카페에서 적었던 노트의 한 페이지를 생각하며 천천히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어 있는 마음이 그분이 들어오실 자리가 된다는 그 한 줄의 깨달음은, 사실 새롭게 발견한 진리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주 잊어버리는 진리에 가까웠다. 우리가 신앙을 산다는 것은, 매번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일보다 오래된 진리를 매일 다시 펴 드는 일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
골목 끝에서 모퉁이를 돌자 익숙한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우리 동네의 평범한 길과 건물들, 그리고 그 위에 비치는 오후의 빛. 같은 길이지만 어쩐지 오늘은 한 톤 더 밝아 보였다. 카페 한 곳에 잠시 들렀다 나온 것뿐인데, 그 한 시간의 침묵이 길 전체의 색을 한 톤 바꿔놓은 셈이었다.
집 현관문을 열며 가만히 한 줄을 더 마음에 적어 두었다. 마음의 빈자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한 사람이 되기를. 그 빈자리에 천천히 차오르는 그분의 결을 알아채는 한 사람이 되기를. 오후의 카페 창가에서 새로 만난 그 결이, 내일과 모레의 일상 속에서도 잊혀지지 않기를. 그렇게 수요일 오후가, 또 한 페이지의 영성 일기로 조용히 닫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