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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 주실 때 —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으로


누군가 내 이름을 정확히 불러 줄 때, 마음 한구석이 환해지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 간 모임에서 누군가 머뭇거림 없이 내 이름을 부르면, 낯선 공간이 순식간에 덜 낯설어집니다. 반대로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데도 이름이 아니라 “저기요”라고 불릴 때, 우리는 어쩐지 조금 쓸쓸해집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작은 증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운동장에서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던 순간, 자기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던 그 긴장과 설렘. 이름이 호명되면 손을 번쩍 들고 “네!” 하고 대답하던 그 작은 의식 속에는,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준다는 안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름이 불릴 때마다, 잊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자라 왔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갈수록, 우리는 점점 이름보다 역할로 불리게 됩니다. 누군가의 부모로, 어느 회사의 직책으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그 호칭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문득 내 진짜 이름을 잊고 사는 것 같은 허전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역할을 다 벗고 났을 때, 과연 나는 누구인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종종 말문이 막힙니다.

낙엽이 깔린 고요한 오솔길

성경은 바로 그 막막한 자리에 한 음성을 들려줍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가 모든 것을 잃고, 자신들이 누구였는지조차 희미해져 가던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 이사야 43: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무리 가운데 하나로 부른 것이 아니라, 너의 이름을 콕 집어 불렀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많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와 달리, 그분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수십억의 얼굴 가운데서도 나를 흐릿하게 보지 않으시고, 나만의 이름으로, 나만의 사연으로 기억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위로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선한 목자에 빗대시며,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한다고 하셨습니다. 양 떼는 멀리서 보면 다 비슷비슷한 흰 무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목자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어느 녀석이 다리를 저는지, 어느 녀석이 잘 뒤처지는지, 어느 녀석이 겁이 많은지를 다 압니다. 그리고 그 각각을 이름으로 부릅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시선도 그러합니다. 군중 속의 익명이 아니라, 이름을 가진 단 한 사람으로 우리를 보십니다.

오래된 나무 창으로 드는 빛

이름을 안다는 것은 곧 사연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만 부르지 않습니다. 그 이름에 얽힌 모든 시간을 함께 떠올립니다. 그가 언제 웃었는지, 무엇 때문에 울었는지, 어떤 약점을 부끄러워하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신다는 것은, 그 모든 내력을 다 아시고도 여전히 우리를 부르신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다 보시고도, 그분은 여전히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아침,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그녀는 눈앞의 사람이 동산지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슬픔에 가려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분이 하신 일은 긴 설명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녀의 이름 하나를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습니다. 자기 이름이 그 음성으로 불리는 순간, 그녀는 비로소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를 돌이키게 하는 것도 종종 거창한 논리가 아니라, 내 이름을 아시는 분의 부드러운 부름입니다.

가을 숲을 걷다 보면, 수많은 낙엽 가운데 어느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진 잎들도 저마다 다른 빛깔과 모양으로 땅에 눕습니다. 만드신 분의 손길이 그러합니다. 그분은 비슷한 것을 대량으로 찍어 내지 않으십니다. 하나하나를 다르게, 고유하게 빚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느끼는 그 평범함조차, 사실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고유함입니다.

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쉽게 군중 속에 묻어 버립니다. 나 하나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세상이 나를 기억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깊어질 때마다 떠올려야 할 음성이 있습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세상이 나를 잊어도, 나를 지으신 분은 결코 내 이름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수많은 호칭으로 불리며 살아갈 우리입니다. 그 모든 역할의 무게에 눌려 정작 내가 누구인지 흐려질 때, 잠시 멈추어 이 진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이름으로 불린 사람입니다. 무리 중 하나가 아니라, 지명하여 불린 단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는, 너는 내 것이라는 변치 않는 약속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숲길을 빠져나오면 다시 분주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자기 이름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그 음성을 마음에 품고 걸어갑니다. 어디에서 무엇으로 불리든, 내 진짜 이름을 아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이 하루를 든든하게 받쳐 줍니다.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으로, 오늘도 우리는 그 부르심 안에서 걸어갑니다.

이름에는 또한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누군가의 이름을 새로 지어 주시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고,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며, 시몬은 베드로가 됩니다.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곧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부여받는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실패에 묶여 있던 사람에게, 그분은 새 이름으로 새 정체성을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음성에도, 지금의 모습에 우리를 가두지 않으시려는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도 그 이름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을 키워 갑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그렇게 마음에 두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잠시 스쳐 가는 인연이 아니라, 손바닥에 새겨 잊지 않으시는 사랑으로 말입니다. 성경은 실제로 그분이 우리를 손바닥에 새기셨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일이 있다면, 조금 더 정성껏 불러 보면 어떨까요. 가족의 이름을, 동료의 이름을, 오래 무심했던 누군가의 이름을.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환대하는 가장 작고도 큰 행위입니다. 우리가 그분께 받은 그 부르심을, 이번에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름과 이름이 서로를 부를 때, 외로운 세상은 조금씩 덜 외로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