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첫 주 늦은 오후였다. 베란다 작은 화단 모서리에 며칠 전부터 살짝 색이 비치기 시작한 분홍 장미 한 송이가 있었다. 봉우리는 처음에는 연두빛이 더 많아 보였는데, 며칠 사이에 그 안쪽으로 가만히 분홍이 차오르더니, 오늘 오후에는 마침내 가장자리부터 한 잎씩 천천히 펼쳐지고 있었다. 햇살은 베란다 창에 비스듬히 걸려 들어와, 그 장미 한 송이의 가장자리를 빛으로 한 번 둘러주고는 다시 거실 바닥 위로 옅게 흘러 내려왔다.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그 앞에 잠시 앉아 본다는 게, 어느새 한 시간 가까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장미 한 송이가 피는 일은 너무 천천히 일어나서, 사실 우리 눈으로는 그 변화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 한 시간을 지켜보아도 한 잎이 손가락 한 마디 만큼도 더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옆 잎과 그 옆 잎 사이의 작은 그늘이 조금 깊어진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 깊어진 그늘이 곧 잎이 한 호흡 더 펼쳐졌다는 증거이다. 한 송이의 꽃이 피기 위해 식물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뿌리 끝의 미세한 물줄기, 잎맥을 따라 천천히 흐르는 양분, 봉우리 안쪽에서 자라는 새 색소, 그 어느 하나도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그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야, 우리에게는 비로소 한 송이의 펼쳐진 장미가 보여진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 이사야 35장 1~2절
이사야 35장의 그 한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광야가 기뻐한다고 했다. 메마른 땅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한다고 했다. 사막이라는 곳은 본래 꽃이 피기에 가장 어려운 자리이다. 모래는 물을 가두지 못하고, 햇볕은 모든 것을 마르게 하고, 바람은 작은 씨앗을 자꾸 다른 자리로 옮겨 놓는다. 그런 곳에서 한 송이의 꽃이 피기 위해서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광야에 꽃이 핀다고 말한다. 메마름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고, ‘메마른 그 자리’가 ‘백합화 같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그 말씀이 베란다의 분홍 장미 한 송이를 새삼 다시 보게 했다. 도시의 한 작은 화단도 사실은 한 송이의 꽃에게는 광야와 같은 자리일 수 있다. 흙은 좁고, 햇살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지고, 바람은 자주 베란다 창 사이로만 좁게 들어온다. 그 좁은 자리에서 한 송이의 꽃이 자기 시간을 따라 천천히 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어느 날 가만히 바라보면 작은 기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 기적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오랫동안 손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마음 안에서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된다.
은혜라는 말도 그렇게 닮아 있다고 느낀다. 은혜는 자주 갑자기 내려오는 큰 사건처럼 묘사되지만, 가만히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면 은혜는 차라리 한 송이의 꽃이 피는 그 느린 동작에 더 가깝다. 어제까지 봉우리였던 자리가 오늘은 한 잎이 조금 더 열려 있고, 그 한 잎이 열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 그 손길은 너무 조용해서 우리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한 송이의 꽃이 마침내 다 피어나는 그 순간에야 그 모든 손길의 결과가 한꺼번에 우리 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그 순간만을 보고 ‘오늘 갑자기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그 ‘갑자기’ 안에는 사실 오랜 시간의 무수한 한 호흡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다가, 한 모금 천천히 삼키며 베란다 창 너머의 도시를 잠시 바라보았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의 창들, 흐릿하게 빛나는 도로, 작게 들리는 자동차 소리. 그 모든 일상이 분주히 흘러가는 동안에도, 베란다의 작은 화단 위에서는 한 송이의 장미가 자기 시간을 잃지 않고 묵묵히 한 잎씩 펼쳐지고 있었다. 도시의 속도와 화단의 속도는 너무 달라서, 그 둘 사이에 어떤 연결도 없어 보일 만큼 멀어 보였다. 그러나 그 두 속도 모두를 함께 만드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그 거리감은 조용히 좁아진다.

은혜는 종종 우리의 속도를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우리는 한 송이의 꽃이 한 시간 만에 활짝 피기를 바라고, 한 사람의 영혼이 한 번의 결심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광야의 백합화는 그렇게 피지 않는다. 한 잎이 한 호흡씩 펼쳐지는 그 느린 동작 안에, 그 자리의 메마름을 ‘즐거움’으로 바꾸시는 손길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빨리 피지 않는 자신을 너무 자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고, 빨리 변하지 않는 누군가를 너무 쉽게 단념하지 않아도 좋은지 모른다. 광야에서도 백합화가 피어난다는 약속이 살아 있다면, 오늘의 더딘 한 잎도 결국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는’ 그날의 한 호흡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미 한 송이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한 송이가 ‘나 좀 봐 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어떤 작은 부끄러움 같은 것을 머금은 채, 그저 자기 속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너무 빨리 자기를 다 보여 주지 않고, 그렇다고 영영 닫혀 있지도 않은 그 중간의 자세를 한참 유지하는 한 송이의 꽃 앞에서, 사람의 분주함은 자주 무안해진다. 우리는 자주 자기 안의 ‘아직 다 피지 않은 부분’을 부끄러워하지만, 꽃은 그 ‘아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아직’ 안에서도 향기는 이미 새어 나오고 있고, 빛은 이미 가장자리부터 그 ‘아직’을 따뜻하게 둘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35장의 약속이 광야의 백합화 한 송이로 표현된 까닭이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광야의 한 송이 백합화는 모든 사막을 다 푸르게 바꾸지 못한다. 한 송이의 꽃이 핀다고 해서 그 광야 전체가 갑자기 동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송이의 백합화가 거기 그렇게 피어 있다는 사실 하나가, 그 광야가 더 이상 죽음의 자리가 아니라 약속의 자리라는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일러준다. 한 송이의 꽃은 작지만, 그 작음 안에 광야 전체를 향한 한 줄의 약속이 새겨져 있다. 오늘 베란다의 분홍 장미도 작은 화단 안에서 그렇게 한 줄의 약속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지 모른다.
오후의 햇살이 한 칸 더 기울어졌다. 장미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던 빛이 천천히 안쪽으로 더 들어가더니, 어느 순간에는 꽃잎과 꽃잎 사이의 작은 그늘 안까지 비집고 들어갔다. 그 안쪽의 어두움까지 조용히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광야에 백합화가 피는 풍경도 어쩌면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가장 마르고 가장 어두워 보이는 그 자리에 어느 날 누군가의 손이 닿고, 그 손이 머문 시간이 길어지면, 어두움 안쪽까지 천천히 따뜻해지면서 거기서 한 송이의 꽃이 일어선다. 그 꽃은 자기 힘으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머물러 준 손길의 시간이 일어서 준 것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직하리라.
차 한 잔이 식어 가는 동안에도 장미는 변함없이 자기 박자를 지키고 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사람의 시계로는 거의 잡히지 않는 그 박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의 하루도 어떤 큰 음악의 한 마디 안에서 작은 박자 하나를 맡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차분히 들었다. 모든 음을 다 연주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고, 옆 사람의 박자를 흉내 내려고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한 송이의 장미가 자기 박자를 지킨다는 사실이 오늘 한 사람의 하루를 위로해 주는 것처럼, 오늘 내가 내 박자를 지키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가만히 데워 줄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 작은 연쇄가 결국 광야 전체를 천천히 동산으로 바꾸어 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베란다 앞에 머물러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 안쪽으로 다시 들어와 책상 위 노트북 옆에 펼쳐 둔 노트 한 권을 가만히 펼쳤다. 거기에 짧게 한 줄을 적어 두었다. ‘오늘은 빨리 피지 않은 모든 것을 위해 한 번 더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 보자.’ 그렇게 적고 나니, 그 한 줄이 오늘 하루 남은 시간을 천천히 지켜주는 작은 약속처럼 느껴졌다. 광야에 백합화가 피는 그 약속이 멀리 있지 않고, 베란다 한 송이의 장미와 내 마음의 한 줄 안에도 이미 가까이 와 있다는 사실이 잔잔히 마음을 데워 주었다.

유월 첫 주 늦은 오후, 분홍 장미 한 송이는 여전히 자기 시간을 따라 천천히 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잔잔한 한 시간이 오늘 하루 남은 시간 동안 마음 안에 오래 남아 주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은혜는 늘 그렇게 멀리서 큰 소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송이의 꽃이 한 잎씩 펼쳐지는 그 느린 동작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오후의 작은 화단 한 모서리가 다시 한 번 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