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둘째 날 화요일 아침이었다. 밤사이 잠깐 지나간 비의 흔적이 길 위에 아직 남아 있었고, 하늘은 옅은 우유빛 구름을 천천히 풀어놓고 있었다. 우산을 접어 가방 옆에 끼우고 사무실 건물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가, 보도블록 한 칸의 모서리에서 천천히 발을 멈추었다. 그 작은 사각형 안에 작은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고, 그 안에는 회색 도시의 하늘이 아니라 어떤 한 조각의 푸른 하늘이 조용히 떠 있었다. 옷깃을 여미던 손이 잠시 그대로 멈추었고, 가방 끈을 다시 어깨 위로 올리려던 동작도 잠깐 잊혀졌다. 아침의 잰 걸음들이 옆을 스쳐가는 그 잠깐의 정적 위에, 그 작은 푸름은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그 자리에 두고 간 한 장의 엽서처럼 가만히 놓여 있었다.
그 푸른 한 조각은 손바닥보다도 훨씬 작았다. 흔히 지나치는 깊이 일 센티미터 남짓의 빗물 위에, 어떻게 저 멀리 구름 위의 푸른빛이 그렇게 정확하게 내려와 앉아 있는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면 회색이 더 많은 흐린 하늘이었지만, 발 아래 보도블록 위의 그 작은 거울 안에서는 흐림 사이로 잠깐 비치는 푸른 한 조각이 분명히 빛을 받고 있었다. 도시는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고, 그 위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 굽이 그 작은 거울을 살짝씩 흔들었지만, 흔들림이 가라앉을 때마다 다시 같은 푸른 하늘이 그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그 거울은 자기 자리를 잊지 않았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 시편 19편 1~2절
오래 전부터 좋아하던 한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시편 기자는 하늘이 영광을 선포한다고 적었다. 그 선포는 큰 천둥소리도 아니고 거대한 무지개도 아니고, 그저 매일 우리 머리 위에 펼쳐지는 푸름과 흰 구름과 새벽의 옅은 분홍빛과 저녁의 깊은 보라빛이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날이 날에게 말한다’고 표현했다. 어제의 하늘이 오늘의 하늘에게, 오늘의 하늘이 내일의 하늘에게, 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 전한다는 뜻이리라. 거대한 한 번의 외침이 아니라, 잔잔한 이어달리기 같은 그 증언이 매일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그 큰 하늘이 오늘 아침에는 보도블록 한 칸의 작은 물웅덩이 안으로 내려와 앉아 있었다. 그 작은 거울은 광활한 하늘 전체를 다 담을 수 없었다. 그저 손바닥 만한 푸른 한 조각, 한 조각의 흰 구름, 한 줄기의 빛,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 한 조각만으로도 머리 위에 있는 더 큰 하늘이 어떤 색이고 어떤 깊이로 펼쳐져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작은 거울이 큰 하늘 전체를 다 담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작은 한 조각의 정직함이 거기 분명히 그 하늘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한참 그 물웅덩이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우리의 일상이 이 작은 거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매일 큰 하늘 전체를 다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하루의 작은 사각형 안에 출근길, 동료와의 짧은 인사, 점심 한 끼, 오후의 회의, 저녁의 식탁, 늦은 밤의 짧은 기도를 차곡차곡 담을 뿐이다. 그 작은 사각형은 너무 좁아서 위대한 일을 다 담기에는 한참 모자라 보인다. 그 안에 큰 사역, 큰 헌신, 큰 사랑을 다 담을 자리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자신의 하루를 너무 작은 그릇이라고 여기며 한숨을 쉰다.
하지만 작은 물웅덩이의 정직함은 그 모자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작은 거울은 자기보다 한참 더 큰 하늘을 ‘다 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깊이 만큼, 자기 폭 만큼, 가장 정확하게 그 하늘의 한 조각을 비춰낼 뿐이다. 그리고 그 한 조각의 비추임이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의 시선을 한 번 멈추게 한다. 머리 위를 올려다 보아도 회색이 더 많아 보이는 흐린 아침에, 발 밑의 작은 거울이 ‘저 너머에는 분명히 푸른 하늘이 있다’고 조용히 일러주는 것이다. 거울은 자기 너머의 빛을 빌려와서, 그 빛에 가장 정직하게 자기를 내어준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더 머물러 있었다. 사무실 출입문 옆으로 사람들이 익숙한 걸음으로 지나갔고, 그 누구도 발 아래의 작은 푸른 한 조각을 알아채지 못하는 듯했다. 누군가의 가방이 살짝 스쳐 또 한 번 그 거울이 흔들렸고, 다시 가라앉았다. 도시의 새벽 길은 늘 그렇게 작은 신호들을 곳곳에 흘려두지만, 그 신호들을 발견하는 일은 결국 한 사람의 한 번의 멈춤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을 두드렸다. 발견은 늘 발견하는 사람의 속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작은 푸른 한 조각이 다시 한 번 깨우쳐 주었다.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와 책상 앞에 앉으면서, 그 작은 물웅덩이가 자꾸만 마음 안에 남아 있었다. 오늘 하루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 내 손을 거쳐 지나갈 한 통의 메일, 한 줄의 보고서, 한 번의 통화, 그 모든 것이 작은 거울 한 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굳이 큰 무대 위에 올라가 큰 영광을 선포하지 않아도, 내가 서 있는 그 작은 사각형 안에서 정직하게 한 조각의 빛을 비춰낼 수만 있다면, 누군가 한 사람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아, 오늘 하늘이 푸르구나’ 하고 다시 한 번 위를 올려다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조용한 기대가 차올랐다.
때로 신앙은 큰 결심으로 사는 것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국 작은 거울 한 칸의 정직함으로 살아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큰 강령이나 큰 비전 이전에, 오늘 내 책상 위의 한 잔의 커피, 동료에게 건네는 한 마디의 안부, 잠깐의 침묵 안에 머무는 한 줄의 기도, 그것이 큰 하늘의 한 조각을 가장 정확히 비춰내는 거울이 된다. 시편 기자가 말한 ‘날은 날에게 말한다’는 그 잔잔한 이어달리기 안에, 오늘의 내 작은 하루도 어쩌면 한 줄의 말로 다음 날에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책상 위 노트북을 열면서 짧게 마음으로 적어 두었다. 머리 위 하늘이 흐려 보이는 날에도, 발밑의 작은 거울은 여전히 자기 깊이 만큼 정확히 푸른 한 조각을 비춰내고 있다는 것. 그러니 오늘 하루 내 자리가 작아 보일 때에도, 그 작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저 정직하게 한 조각의 빛을 담아내는 작은 거울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머무는 한 사람의 잔잔한 정직이 어쩌면 옆 사람의 한 번의 멈춤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멈춤이 멈춤을 부르고, 멈춤이 끝나면 다시 누군가의 시선이 위를 향할지도 모른다는 것. 큰 영광을 사는 일은 어쩌면 그 작은 연쇄의 한 칸을 살아내는 일이라는 것.

이런 묵상은 어쩌면 너무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 너무 큰 비약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작은 물웅덩이 하나에서 시편 한 구절을 떠올리고, 거기서 다시 하루 전체의 자세를 더듬어 보는 일은, 효율을 따지는 도시의 출근길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린 동작일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어쩌면 그 느린 동작 안에 가장 정직하게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빠른 걸음으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작은 거울 한 칸을, 잠깐 멈춰 선 한 사람의 시선이 비로소 알아본다. 그 시선이 그 자리에서 멈춘 까닭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다는 작은 갈망 때문이고, 그 갈망 위에 시편 한 줄이 가만히 내려와 손을 얹어 주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 물웅덩이가 오래 가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오전의 햇살이 조금만 더 깊어지면 그 작은 거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고, 오후의 보도블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른 채로 사람들의 발을 받아낼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비춰진 푸른 한 조각이 한 사람의 마음 안에 들어왔다면, 그 흔적은 보도블록 위에서 사라진 뒤에도 한 사람의 하루 안에 남는다. 비유하자면 작은 거울이 사라진 뒤에도 그 거울이 한 번 비추어 보여주었던 푸른 빛은 이미 누군가의 안쪽으로 옮겨 앉아, 거기서 다시 다른 사람을 향해 한 번 더 빛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유월 둘째 날 화요일 아침의 작은 물웅덩이는 그렇게 한참을 마음 안에 남았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도 그 푸른 한 조각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이 아침의 잔잔한 멈춤이 하루 종일 내 손과 입을 천천히 다듬어 주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큰 영광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오늘 하루의 그 작은 거울 한 칸 안에 이미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기는 한 화요일 아침이었다. 비 갠 뒤 보도블록 위 작은 물웅덩이 하나가, 그렇게 시편 한 줄의 무게로 오늘 하루의 처음을 가만히 열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