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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둘째 날 저녁 오래된 책장 가장 아래 칸에서 우연히 펼친 색바랜 사진 한 장 — 시편 90편 12절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라는 한 줄 앞에 잠시 멈춘 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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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둘째 날 저녁이었다. 며칠 전부터 책장의 가장 아래 칸이 살짝 어지러워 있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 등을 한 단 어둡게 낮춘 다음, 무릎을 꿇고 가장 아래 칸의 책들을 한 권씩 꺼내 바닥 위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오래된 신앙 서적, 색이 바랜 시집, 누군가에게 빌렸다가 잊고 있던 얇은 책 한 권, 그리고 그 사이로 우연히 끼워져 있던 작은 사진 한 장이 함께 바닥 위로 따라 나왔다. 손가락 끝으로 사진의 가장자리를 살짝 들어 올려 거실 등 아래로 가지고 와 보았다.

사진은 십수 년 전의 어느 여름이었다. 햇살이 어깨 위에 한 줄로 길게 내려앉은 어느 오후의 풍경, 그 안에 지금보다 한참 어린 얼굴의 자신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옆에는 그때 함께였던 몇 사람의 얼굴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의 얼굴 위에서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지금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있어 거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한 친구의 얼굴이었다. 그 시절에는 한 주에도 몇 번씩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책을 펴고 같은 한 줄을 함께 외우던 친구. 사진 속의 그 얼굴은 너무 가까운데, 지금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시편 90편 12절

시편 90편의 그 한 구절이 사진 한 장 위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모세의 기도라고 알려진 그 시편 안에는 사람의 짧은 인생을 향한 잔잔한 한숨이 한 줄 한 줄 흐른다. 우리의 날은 풀과 같고,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꽃과 같다는 그 표현은, 사진 한 장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한 사람의 마음에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 시편이 끝까지 한숨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숨의 끝에서 시인은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우리 날을 세어 보게 해 주시는 그 가르침이 곧 지혜의 시작이라는 고백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유월 둘째 날 저녁 거실 책장 아래 칸의 따뜻한 등불 빛
유월 둘째 날 저녁 거실 책장 아래 칸의 따뜻한 등불 빛

사진 한 장은 그 ‘날 계수함’을 가장 부드러운 방법으로 가르치는 한 장의 작은 교과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력을 한 장씩 떼어내는 일도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지만, 그 흐름은 차라리 추상적이다. 그러나 색이 바랜 사진 한 장은 ‘그때의 한 표정’과 ‘지금의 마음’ 사이의 거리를 손바닥 위에 직접 올려놓아 보여 준다. 그때의 자기가 지금의 자기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의 자기가 그때의 자기에게 무엇을 변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시간이 잠시 흘렀다. 그 어느 쪽도 분명한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멈춤 안에 어떤 정직한 슬픔과 어떤 잔잔한 감사가 함께 흘렀다.

그때의 친구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한 해에 한두 번의 짧은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가 전부였고, 그 안에서도 정작 깊은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사진 속 그 한 표정만으로도, 한때 같은 자리에서 같은 책을 펴 두고 한 줄의 말씀을 함께 외우던 그 시간의 무게가 다시 한 번 손바닥 안으로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 우리가 함께 외우던 한 구절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구절을 함께 외우던 어느 토요일 오후의 햇살과 그 햇살 안에서 같이 소리를 내어 읽던 둘의 목소리는 아직 마음 깊은 곳에 어떤 톤으로 남아 있었다.

사진 한 장을 손에 든 채, 거실 등 아래에서 잠시 그 친구를 위해 짧은 기도를 드렸다. 어디에 있든 그 사람의 한 호흡과 한 끼니 위에 하나님이 머물러 계시기를, 그 사람이 지나고 있을 어떤 시간 안에 작은 위로 한 줄이 늘 함께하기를, 우리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같은 분의 손 안에 우리는 여전히 함께 안겨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도 잠시 빛나기를. 짧은 기도였지만, 그 기도가 끝나기 전 시편 90편의 한 줄이 다시 한 번 가만히 입술 위에 머물렀다.

유월 둘째 날 저녁 책장 아래 칸에서 발견한 색바랜 사진 한 장
유월 둘째 날 저녁 책장 아래 칸에서 발견한 색바랜 사진 한 장

날을 계수한다는 일이 처음에는 무거운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엄숙한 명령처럼만 들렸다. 그러나 사진 한 장 앞에서 다시 그 구절을 곱씹어 보니, 날을 계수한다는 것은 차라리 한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다시 떠올리는 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한 계절, 그 계절 안에 흘려보낸 작은 약속들,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자기 자신의 부족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헛되지 않게 끝까지 붙들어 주신 분의 손길. 그 모든 것을 한 번 더 천천히 떠올려 보는 일이 곧 ‘날을 계수하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계수된 한 날 위에서야 비로소 ‘지혜로운 마음’이라는 것이 한 줌의 무게로 쥐어지는지 모른다.

책장 가장 아래 칸의 책들을 한 권씩 다시 정리해 넣기 시작했다. 빠진 책 한 권은 다른 자리로 옮겨 두고,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던 시집은 똑바로 세워 주고, 너무 두꺼운 신앙 서적은 가장 안쪽 자리로 다시 보냈다. 사진은 곧장 책장 안쪽으로 다시 끼워 두지 않고, 가까이 있는 작은 액자 한 칸에 임시로 세워 두었다. 며칠 동안은 거실을 지날 때마다 그 사진과 자주 눈이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마주침이 매번 시편 90편의 한 줄을 마음 안에서 다시 한 번 펼쳐 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면, 사진은 다시 책 사이로 조용히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 며칠 동안 그 사진이 마음 안에 남겨 둘 결은 분명히 한 칸의 깊이를 더 만들어 줄 것이다.

책장 가장 아래 칸은 자주 잊혀지는 자리이다. 손이 닿기 어려운 자리라서 책 한 권을 꺼내려면 자세를 낮추어야 하고, 자세를 낮추는 일은 분주한 날에는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려운 동작이다. 그러나 가장 아래 칸에는 보통 가장 오랜 시간의 흔적들이 머문다. 한때 자주 읽었지만 지금은 손이 멀어진 책, 누군가에게 받았지만 차마 다시 펼치지 못한 책, 그리고 그 사이로 들어간 작은 메모와 사진과 영수증과 카드. 가장 낮은 자리의 책장은 마치 한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자리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자세를 낮추어야만 비로소 그 안에 무엇이 머물러 있었는지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사진 속 그 친구와의 사이에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큰 오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각자의 삶이 각자의 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갔고, 그 흐름 사이에 안부 한 줄을 끼워 넣을 여유가 점점 줄어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그저’의 결과가 결국 ‘소식을 거의 듣지 못하는 사이’라는 거리를 만들어 두었다는 사실 앞에서, 작은 부끄러움 하나가 천천히 차올랐다. 큰 결단이 없어도, 작은 ‘그저’들이 천천히 쌓이면 어느새 사이가 멀어진다는 사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뿐 아니라 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의 등을 한 단 더 낮추고 거실 의자에 잠시 앉아, 사진을 옆에 두고 따뜻한 차 한 잔을 천천히 마셨다. 차의 김이 사진 위로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흩어지는 동안, 사진 속의 한 표정도 거실 등 아래에서 미세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잠시 들었다. 어쩌면 시간은 흘러간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잠시 형태를 바꾸어 그 자리 어딘가에 함께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부드럽게 마음을 두드렸다. 한 사람의 한 표정은 사진 안에 멈춰 있지만, 그 표정이 한 사람의 마음 안에서 끊임없이 다시 살아나는 한, 그 시간은 아주 죽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월 둘째 날 저녁 거실 한 칸의 따뜻한 촛불과 잔잔한 공기
유월 둘째 날 저녁 거실 한 칸의 따뜻한 촛불과 잔잔한 공기

사진 한 장이 가르치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보존하지 못한 시간을 보존해 주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시절의 모든 풍경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골목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그날 어떤 색의 옷을 입었는지, 누구의 어떤 농담에 함께 웃었는지, 대부분의 세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져 사라진다. 그러나 그 흐려진 시간 위에도 한 분의 시선은 그대로 머물러 있다. 우리는 잊지만 그분은 잊지 않으신다. 사진은 우리가 잊었던 한 장면을 잠시 손바닥 위에 다시 올려놓아 줌으로써, 결국 ‘잊지 않으신 분’의 손길 위에 우리의 모든 시간이 차곡차곡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러주는 한 장의 작은 표지가 된다.

유월 둘째 날 저녁, 책장 가장 아래 칸에서 펼쳐진 색바랜 사진 한 장은 그렇게 시편 한 줄의 무게로 한 시간 가까이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책장 정리를 마치고 거실 등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그 사진을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짧게 마음 안으로 적어 두었다. ‘오늘의 한 표정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조금 더 정직하게 살아내 보자.’ 그 한 줄이 오늘 하루의 끝을 가만히 닫아 주었다. 그리고 그 한 줄의 약속이 내일 아침을 다시 열어 줄 작은 열쇠가 되어 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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