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한낮, 식탁 위에 익숙한 흰 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결혼 전부터 쓰셨다는, 가장자리에 옅은 금이 가 있는 그릇이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우리 집 식탁의 ‘국그릇 정자리’를 차지해 온 그릇. 그릇 안에는 흔하디 흔한 미역국이 담겨 있었고, 그 옆에는 김치 한 보시기와 갓 지은 흰 쌀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그 평범함 위에 잠시 손을 얹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었다.
그릇의 가장자리에 금이 가게 된 사연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식구의 손에서 한 번 떨어졌고, 그러나 깨지지 않고 한 줄의 흔적만 남긴 그 사건은 가족의 사소한 흠집들과 함께 어느 사이엔가 그릇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한 줄의 금. 그 금은 흠이라기보다는 그릇이 살아 온 시간의 결이었다. 그리고 그 결 위에 오늘도 따뜻한 미역국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점심상 한 가운데에 작은 잔물결로 일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는 그 짧은 한 줄은 우리 모두가 자주 들어 온 말씀이다. 너무 자주 들어 와서, 어느새 그 무게가 가벼워진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자리에 금이 간 흰 그릇 한 개 앞에서, 그 한 줄이 다시 새로 들렸다. ‘범사’란 결국 화려한 일이 아니다. ‘범사’란 가장자리에 금이 간 평범한 그릇 위에 오늘도 따뜻한 국이 담기는 자리이고, 누군가의 손이 그 국을 끓이고,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이 그 국을 식탁으로 옮기는 자리이며,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앞에 앉아 한 술을 떠 입에 가져가는 자리다.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누구도 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제 다녀온 시장 이야기, 아버지는 새벽에 다친 손가락에 붙인 작은 반창고 이야기, 동생은 다음 주에 있을 시험 이야기, 나는 예배 시간에 들은 한 구절 이야기. 누구의 이야기도 길지 않았고, 누구의 이야기도 무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이야기들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떨어져 내릴 때, 흰 그릇은 그 모든 이야기를 작은 호수처럼 받아 안고 있었다.
문득, 우리가 한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 모서리에서 떠올랐다. 빈 의자 하나를 안고 식사를 시작해야 하는 가정, 식탁을 지나 병상으로 향해야 하는 가정, 식탁 자체가 멀어진 마음들이 흩어진 가정. 어떤 가정에게는 ‘평범한 식탁’ 그 자체가 가장 멀리 있는 풍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식탁의 흰 그릇 위로 잠시 그늘처럼 내려앉았다. 그 그늘 앞에서,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점심상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새겨졌다.
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갈 즈음, 어머니가 그릇을 들어 내게 미역국 한 국자를 더 따라 주셨다. 그릇이 잠시 흔들렸고, 그릇 위로 햇빛 한 줌이 비스듬히 떨어졌다. 가장자리의 금이 그 햇빛을 받아 가는 실선처럼 반짝였다. 그 반짝임을 바라보면서, 나는 우리 가족이 함께 지나온 사소한 흠집들이 결국은 이 흰 그릇의 결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깨지지 않고 남은 흠집들. 부서지지 않고 머문 한 줄의 금들. 그 모든 결 위에 오늘도 따뜻한 한 그릇의 식사가 담기고 있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13)

빌립보서의 이 구절은 우리가 어떤 큰일을 결심하는 자리에서 자주 인용되곤 한다. 그러나 흰 그릇 한 개 앞에서, 이 구절은 또 다르게 들렸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큰일에서만 그분의 손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식탁의 가장자리에서부터 그분의 손길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러 준다. 미역국 한 그릇을 끓여 낸 어머니의 손길 안에도, 그릇을 옮기는 아버지의 손길 안에도, 가장자리에 금이 간 그 그릇 자체를 오늘까지 사용해 온 우리 집의 시간 안에도, 그분이 조용히 함께 행하고 계셨다.
점심상이 정리될 무렵, 나는 어머니에게 그 흰 그릇을 잠시 빌려 달라고 했다. 그릇을 두 손으로 들어 햇빛 아래에 다시 비춰 보았다. 가장자리의 금이 한층 더 또렷이 보였다. 그 금 옆에 손가락 끝을 살며시 대 보았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그러나 분명히 무엇인가가 새겨져 있는 결. 그 결을 만지는 동안, 마음 안쪽에서 한 줄의 감사가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 큰 사건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금이 간 평범한 그릇 한 개가 우리 집 식탁의 한 자리에서 오늘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 그것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그 한 줄이 결국 가리키고 있는 자리가 아닐까, 그렇게 조용히 생각했다.
그릇을 다시 식기장에 올려놓기 전, 가족들에게 한 가지 짧은 제안을 했다. 다음 주일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그릇’ 한 개씩을 각자 식탁 위에 가져와 보자고. 어머니의 흰 그릇, 아버지가 학창 시절 쓰셨다는 누런 머그잔, 동생이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작은 접시, 그리고 내가 첫 자취 시절부터 함께 살아 온 낡은 국그릇 하나. 그 모든 그릇들이 한 식탁 위에 모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의 작은 역사가 한 줄로 펼쳐질 것 같았다. 화려한 그릇들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금이 가고 손잡이가 살짝 닳은 그릇들이 모이는 자리. 어쩌면 그 자리야말로 우리가 ‘범사’라는 한 단어를 가장 또렷이 만지는 자리가 되어 줄 것 같았다. 어머니는 살짝 웃으셨고, 아버지는 “좋네” 한 마디로 가볍게 동의해 주셨다.
창밖에는 주일 오후의 햇빛이 길게 누워 있었다. 흰 그릇을 다시 식기장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부엌을 나섰다. 그릇은 평소와 같은 자리, 같은 높이에 놓였다. 그러나 그릇을 바라보는 내 눈은 오늘 분명히 한 뼘쯤 더 낮아져 있었다. 평범함 속에 숨겨 둔 은혜의 결을 한 번 만져 본 오후, 가장자리에 금이 간 흰 그릇 한 개가 오늘 하루 동안 가장 깊은 묵상이 되어 식탁 위에 잠시 머물러 주었다. 그 머무름의 흔적 위에서, 나는 오늘도 또 한 번 ‘범사에 감사하라’는 한 줄을 천천히 따라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