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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아침 예배당 가는 길, 가로등 아래 떨어진 오월 꽃잎 한 장 — 안식일 아침 내딛는 걸음에 대한 작은 메모

sangkist

주일 아침 가로등 아래 골목길
주일 아침 가로등 아래 골목길

주일 아침, 평소보다 십오 분 일찍 집을 나섰다. 골목길의 가로등은 아직 꺼지지 않은 채 옅은 주황빛을 흘리고 있었고, 아침 공기는 가볍게 비 내린 흙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자주 다니던 길인데, 그 길이 오늘은 어쩐지 처음 걷는 길처럼 낯설고 정갈했다. 모퉁이를 돌아 작은 빌라 사이로 들어섰을 때, 가로등 아래에 오월의 꽃잎 한 장이 흰빛으로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떨어진 꽃잎 한 장. 어디서 떨어졌는지, 어느 가지에서 내려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 한 장. 그러나 그 한 장은 가로등의 옅은 빛 안에서 마치 작은 등(燈)처럼 환했다. 종이비행기처럼 가볍고, 막 깨어난 작은 새의 깃털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그것을 주워 들고 싶다는 마음과, 그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잠시 흔들렸다. 결국 나는 허리를 굽혀 그 꽃잎 옆에 잠시 멈추어 서 있는 쪽을 택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태복음 6:28-29)

예수께서 가르치신 그 한 마디는 이상하게도 길거리에서 더 자주 떠올랐다. 잘 정돈된 화단에서가 아니라, 길가 시멘트 틈, 가로등 아래 골목 모퉁이, 약국 앞 화분 옆 같은 자리에서.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자리에서,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의 시선 아래에서 자라 온 자리에서, 그 한 마디는 더 또렷이 들렸다. 떨어진 꽃잎 한 장은 어쩌면 누구의 영광도 입지 못한 채 끝나는 작은 마침표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한 장은 자신이 머물렀던 가지의 시간을 마지막까지 완성한 한 줄의 답안지이기도 했다.

빛이 새어 드는 나뭇잎 사이
빛이 새어 드는 나뭇잎 사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빌라 사이를 빠져나오자 큰길의 첫 신호등이 보였다. 신호등 너머로 예배당의 작은 십자가가 옅은 분홍빛 아침 하늘 위에 떠 있었다. 매주 같은 풍경이었지만, 오늘은 그 십자가의 자리가 유난히 조용하고 가까웠다.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 안쪽에서 한 문장이 천천히 떠올랐다. 안식일은 의무가 아니라 선물이다. 그 선물이 너무 익숙해져서 우리는 자주 잊는다.

예배당으로 향하는 그 짧은 길 위에서, 나는 지난 한 주를 천천히 되감아 보았다. 화요일 저녁의 부주의한 한 마디, 수요일 점심의 미루어 둔 답장, 목요일 밤의 무거운 화면 시간, 금요일 새벽의 짧은 기도, 토요일 오후의 어수선한 청소. 어느 하루도 잘 살았다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어느 하루도 완전히 버려졌다고 말하기에는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어긋남과 버팀이 늘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어긋남과 버팀의 끝자락에서, 오늘 아침 다시 이 길 위에 서 있다.

신호가 바뀌어 길을 건넜다. 예배당 입구의 작은 화단 옆을 지나, 정문 앞에 도착했다. 정문 앞에는 같은 교회 권사님 한 분이 빗자루를 들고 마지막 낙엽 한 장을 쓸어 모으고 계셨다. 권사님은 나를 보시고 잠시 빗자루를 내려놓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 웃음은 어떤 설교보다 먼저 안식을 가르치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 앞에서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권사님은 “주일이라 좋네요” 한 마디를 천천히 흘리듯 건네셨다.

“이러므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마가복음 2:27)

본당 의자 위에 떨어진 햇살
본당 의자 위에 떨어진 햇살

예수께서 안식일에 대해 남기신 그 한 줄은, 권사님의 빗자루 옆에서 다시 가볍게 살아났다. 안식일은 사람을 향해 놓인 자리다. 사람을 짓누르기 위한 규칙이 아니라, 사람을 회복시키기 위한 시간이다. 일에서 잠시 손을 놓고, 화면에서 잠시 눈을 떼고, 어수선한 마음에서 잠시 비켜 서서,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다시 묻는 시간. 그 시간을 위해 하나님은 일주일 중 하루의 자리를 우리에게 비워 두셨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본당에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무릎 위에 성경을 펴 놓았다. 그러나 곧장 본문을 읽어 내려가지는 않았다. 대신, 가로등 아래에서 본 그 흰 꽃잎 한 장을 마음의 가장자리에 잠시 더 머물게 했다. 떨어진 꽃잎 한 장 같은 한 주가 마음에 있었지만, 그 꽃잎이 가로등 아래에서 작은 등불처럼 빛났듯이, 부족했던 한 주의 끝자락에서도 이 안식일의 한 시간이 작은 등불처럼 마음을 밝혀 줄 것이라는 믿음이 슬며시 자리를 잡았다.

본당 안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천천히 더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가족은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어떤 부부는 조용히 어깨를 가까이 댄 채 함께 들어왔으며, 어떤 청년은 홀로 들어와 가장 뒷자리에 가만히 앉았다. 그 모든 발걸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동안, 본당의 공기는 한 톤씩 더 깊어졌다. 같은 한 주를 어떻게 보내왔는지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나 같은 안식일 아침 같은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공기 안에 작은 결속 같은 것이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 누구도 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의 결 안에 한 주의 모든 흠집을 함께 내려놓는 어떤 약속이 흐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한 번 옮겼다. 멀리 빌딩 사이로 아침 햇살이 가늘게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햇살의 한 줄기가 본당 한쪽 의자 위에 비스듬히 떨어져 내렸다. 비어 있는 의자 한 자리 위에 햇살이 잠시 머무는 그 풍경이, 가로등 아래에서 본 흰 꽃잎 한 장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어떤 풍경은 그 자체로 한 줄의 설교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정리해 주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 한쪽을 잔잔히 흔드는 풍경이 있다. 오늘 아침은 그런 풍경들이 유난히 자주 마음에 들어오는 아침이었다.

예배가 시작되었다. 첫 찬송의 한 줄, 첫 기도의 한 마디, 첫 본문의 한 절. 모든 첫 마디들이 오늘은 새 옷을 입은 듯이 들렸다. 안식일은 의무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그 한 문장이, 본당 천장 한가운데로 떠올라 잠시 머무르는 듯했다. 그 문장 아래에서 우리는 한 주를 다시 묶고, 한 주를 다시 풀고, 다시 새 한 주를 받아 든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위로, 가로등 아래에서 본 흰 꽃잎 한 장이 잔잔한 표식처럼 함께 떠 있었다. 작은 풍경이지만, 안식일 아침 내딛는 한 걸음 위에 오래 남을 표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