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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새벽 기도 — 잊혀지지 않는 한 사람의 무릎이 내 몸에 새겨놓은 흔적

sangkist

어머니의 새벽 기도를 처음 의식한 것은 여덟 살 무렵이었다. 어린 잠귀가 어느 새벽 문득 열려, 거실 한쪽 마룻바닥 위에서 들리던 작고 낮은 소리에 깨었던 적이 있다. 잠결에 듣기로는 노래 같기도 했고, 울음 같기도 했고, 그저 누군가가 한 사람과 오래 이야기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살그머니 방문을 열어보니, 어머니가 어둑한 거실의 한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머리는 약간 숙여져 있었고, 한 손은 다른 손 위에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고, 그 손은 가끔씩 떨리는 듯 보였다. 어머니는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고, 그 이름들 사이에 분명 내 이름도 섞여 있었다.

새벽 창가에 스며드는 푸른빛
어머니의 새벽 —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 한 사람의 무릎이 닿는 자리.

그날 이후로 나는 새벽이라는 시간을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던 날, 친구와 다투고 잠이 들지 못한 날, 시험을 망치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날 — 그 어떤 날의 다음 새벽에도 어머니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아침이면 어머니는 그 새벽의 일을 말하지 않으셨다. 다만 식탁 앞에서 한 마디만 짧게 덧붙이셨다. “오늘 하루는 잘 될 거야.” 그 한 마디는 매번 어머니의 새벽이 지나온 자리에서 길어 올린 마지막 문장 같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나도 무릎이 시리도록 새벽의 한 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어머니의 새벽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새벽의 무릎은 결심의 무릎이 아니다. 새벽의 무릎은 자주 무너지고, 자주 흔들리고, 자주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무릎이다. 그러나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무릎이다. 어제 부족했던 한 마디 말, 아이의 얼굴 위에 잠시 어렸던 그늘, 누구에게도 말 못한 작은 두려움 — 그 모든 것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 분 앞에 다시 한 번 내려놓는 자리, 그것이 새벽이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 사도행전 10:4

사도행전 10장에서 천사가 고넬료에게 전한 그 한 마디가 오랫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네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기도는 사라지는 말이 아니라 기억되는 말이라는 것. 어머니의 새벽이 흘려보낸 그 무수한 작은 문장들 — 누구도 듣지 않았던 문장들, 새벽의 어둠 속으로만 풀어 놓았던 문장들 — 그것이 사실은 한 자리에서 차곡차곡 기억되고 있었다는 것. 새벽의 어머니가 무릎 위에 올려놓은 모든 이름과 모든 한숨이 하나도 흘려지지 않고 한 분의 기억 안에 모이고 있었다는 것. 그것을 생각하면 어느 새벽이고 결코 헛된 새벽은 없다.

새벽에 모아 쥔 두 손, 기도하는 자리
한 사람의 무릎이 닿는 자리 — 흘려지는 듯하나 기억되는 시간.

어머니의 새벽 기도가 내 몸에 새겨놓은 흔적은 오래 가는 것이었다. 거창한 신학을 가르쳐 주신 것도 아니었고, 긴 신앙 강의를 들려주신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단지 새벽마다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 사실 하나가 내 안에 어떤 감각을 길러 놓았다. 신앙은 큰 말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무릎이라는 감각. 누군가가 나를 위해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에 무릎을 꿇어주었다는 사실이 내 안 어딘가에 늘 흐르고 있다는 감각. 어머니의 새벽은 내 머리로 배운 신앙이 아니라 내 몸으로 새겨진 신앙이었다.

요즘은 자주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새벽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부모의 새벽, 스승의 새벽, 친구의 새벽, 오래된 한 교회 권사님의 새벽, 얼굴도 모르는 어떤 성도의 새벽 — 그 무수한 새벽들 위에 우리가 오늘의 발 한쪽을 디디고 있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동안 누군가가 우리 이름을 한 자리에서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 그 한 분 앞에 우리의 이름이 또박또박 올려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받은 가장 깊은 은혜 중 하나다. 그 새벽들은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무릎이 닿았던 거실의 마룻바닥 한 자리는 지금도 그 향기를 머금고 있다.

이는 향로의 향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 요한계시록 8:4

요한이 본 그 환상의 자리에 어머니의 새벽도 있을 것이라고 나는 자주 생각한다. 흘려진 듯 보이는 새벽의 한 문장 한 문장이 향이 되어, 향로의 연기가 되어, 천사의 손에 받쳐져 한 분 앞으로 올라간다. 그 향의 자리에는 거창한 신앙고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떨리는 한 손, 떨리는 한 이름, 떨리는 한 한숨까지 모두 그 향로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향은 그 한 분이 가장 가까이 맡으시는 향이 된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새벽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새벽이 길어 올린 그 작은 향들이 오늘도 한 분 앞에 머물고 있다.

세월이 깃든 어머니의 손과 따스한 빛
오래된 손 — 새벽마다 모아 쥔 그 두 손에 새겨진 시간.

어머니의 손은 이제 많이 늙으셨다. 손등의 핏줄이 또렷이 드러나고, 손가락 마디는 살짝 굵어졌으며, 손바닥에는 잔주름이 늘었다. 그러나 그 손은 여전히 새벽이면 두 손을 모아 쥔다.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 그 이름들 안에 우리 식구의 이름이 있고, 그 식구의 식구의 이름이 있고, 친구의 이름이 있고, 어느 날 길에서 잠시 마주쳤다는 누군가의 이름이 있다. 어머니의 새벽은 한 사람의 새벽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을 품은 새벽이다.

가끔 어머니께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많은 이름을 어떻게 다 기억하시느냐고. 그 많은 한숨을 어떻게 다 견디시느냐고. 그러나 묻지 않는다.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신의 새벽을 자랑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다만 식탁 앞에서 한 마디만 짧게 덧붙이실 뿐이다. “오늘 하루는 잘 될 거야.” 그 한 마디 안에 한 사람의 무릎이 닿았던 시간의 무게가 다 들어 있다.

오늘 새벽에도 어머니는 같은 자리에 계셨을 것이다.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들 식구의 이름을, 그 아들의 작은 아이의 이름을, 그리고 아들이 잊고 지내는 어느 친구의 이름까지도 가만히 부르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들이 어머니의 입술을 떠나 한 분의 향로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도시의 잠든 내 머리맡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빛이 가만히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새벽이 오늘도 나를 살리고 있다. 그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한 번 더 무릎을 꿇어 본다. 어머니가 길을 내어 놓으신 그 새벽의 한 자리, 어머니가 작은 향로 하나를 미리 놓아두신 그 자리에 나도 잠시 앉아 본다. 누군가의 이름을 가만히 부른다. 그 이름이 흘려지지 않고 기억되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 위에 오늘의 새벽을 다시 한 번 내려놓는다. 어머니의 새벽이 내 몸에 새겨놓은 그 흔적이, 오늘 나의 무릎 안으로 조용히 흘러들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