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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론, 그리스도론(Christology)


기독론, 그리스도론(Christology)

architectural photography of edifice interior


1. 기독론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것을 다루는 기독교 교의학의 한 부분이다.  전통적으로는 성육신의 교리나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으로 표현되었다.  기술적으로는,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논하는 구원론과 구분되는데,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은, 이 구분이 틀린 것이거나 아니면 오도된 것이라고 일치하게 말한다.

성육신의 교리 자체가 신약 안에 있지는 않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대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안에서행하신 독특하고도 결정적인 사건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유대적이고
헬라적인 종교문화들로부터 끌어들여 사용한 많은 상징들이 있다.  그런데 기독교 공동체가 헬라-로마 세계로 확장되면서 이 상징들은 더 분명하게 해석되어야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대교의 종교적 토양에 뿌리를 둔 상징
들(“메시야” “인자”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자손” 등과 같은)은 로마 시민이나 헬라인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신학자들은 이 상징들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이를 재해석하려고 노력하였는
데, 가장 적절한 의사소통의 도구는 헬라 철학의, 특히 플라톤 학파의 언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중대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다.<참조:존재, 하나님>  또한 헬라어 어휘에 해당하는 라틴어를 찾는 것도 쉬운 문제가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 오류는 피해져야 한다는 동의가 이루어졌다:  (1) 예수의 인성을 너무 강조해서 그의 사역에 있어서 신적인 행동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2)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본질적인 인성이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두 오류를 피하기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서로 얽혀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다:  (1) 로마 제국의 유난히 복잡한 정치적 상황.  (2) 교회의 갈등 세력들 간의 소모적인알력; 특히,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 간의 갈등이 심했다.  (3) 일치된 철학적, 신학적 용어의 부재; 이는 두 언어 간의 일치를 달성해야 했으므로더 복잡했다.  (4) 기독론을 서술하는 용어들은 성경에서 뽑은 것들인데, 성경의 형이상학적 전제들이 헬라 철학의 그것과는 소원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각각의 입장들은 여러 갈래로 서술되었고, 그 이론들의 의미는 용어의 일치가 있기 전에는 분명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누구든지 이러한 입장들이 정치
적, 교회적 음모들과 혼합된 모습을 본다면 차라리 희극에 가깝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또 그리스도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많은 가능적인 진술들이 니케아 회의(Council of Nicaea, 325년)와 칼케돈 회의(Council of Chalcedon, 451년)에서 토의되었고, 칼케돈 회의는 주요 신조를 확정할 수 있었다.  그 회의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 안에 두 본성, 곧 신성과 인성을 갖고 있음이 확립되었다.  그 두 본성은 “혼동되지도, 변화되지도, 나누어 지지도, 분열되지도 않으며, 두 본성의 연합에 의하여 두 본성의 구별이 소멸되지도 않고, 각 본성의 특성은 보존되나, 두 세력으로 쪼개 지지도 나누어 지지도 않는 단 하나의…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한 본체적 개인 안에서 일치를 이루며…”

칼케돈 회의의 공식이 단지 다른 반대 의견들을 축출하기만 했을 뿐, 어떻게 한 인격이 두 본성을 결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논쟁이 곧 재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단성론자(mo-nophysites)들은 그리스도에게는 단 하나의 성품밖에 없었고 그것은 신성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단일의지론자(monotheletes)들은, 그리스도는 단 하나의 의지만을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신적인 의지였다고 하였다.  칼케돈의 지지자들은 계속하여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두 본성과 두 의지를 주장하였다.  길고 무익한 논쟁 끝에 제2차와 제3차 콘스탄티노플 회의(553년과 680년)에서는 단성론과 단일의지론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의 일치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개신교 개혁자들은 정통주의 신조들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강조점을 두었다.<참조: 구원론>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유익을 중요하게 다루고, 두 본성과 같은 논의는 극소화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올바른 형이상학적 이론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롭고 자비롭게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확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개혁자들은 다른 개념의 다른 유형의 기독론을 예비한 것이다.
이 주장이 함의하고 있는 바는, 개신교 신학자인 슐라이어마허(Schleiermacher)와 리츨(Ritschl)이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전통적인 용어들에 의하여 모호해졌다고 할 때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특히 리츨은, 헬라 형이상학적 용어 사
용하기를 멈추자고 제안했다.  즉, “예수가 신성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했다고 하는 가치 판단일 뿐이다.”  현대의 신개혁주의자들은 이 자유주의 신학을 여러 방면에서 반대하지만, 전통적인 언어 안에 거룩한 것이 없다는 것과, 그 전통적인 언어가 복음의 진정한 이해를 방해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 기독론이라는 전제에 있어서는 그 신학과 일치한다.

2. 기독론은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독론은 믿음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의미에 대한 모든 탐구에 적용될 수 있다.기독론은 전통적으로 구원론(soteriology)의 주제가 되는 그리스도의 사업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품격을 탐구하는 영역에 국한되어 왔다.  현대신학에서는 이런 품격과 사업의 구분이 인위적이며 진부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져서 이런 구분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누차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시도는 아마 칼 바르트의 시도일 것이다(칼 바르트, 교회교회학, IV.화해론). 그러나 그리스도의 품격과 그의 일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하지만 그리스도께 관한 탐구의 목적상 그가 누구냐는 물음을 그가 무엇을 하느냐는 물음으로부터 구별하는 것이 편리하다.

기독론은 “예수는 그리스도시다”(행 2:36, 5:42, 9:22, 18:5,28).  또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이시다”(고전 12:3, 빌 2:11, 행 16:31)라는 기독교신앙의 기본적인 고백을 밝히기 위한 시도이다.  이 시도는 세계역사의 한 현상으로서의 나사렛 예수에 대해 제기된 일반적 질문에 대하여 주어진 답변들로부터는 구분되어져야만 한다.

세계역사의 한 현상(자연인을 말함)으로서의 예수는 유대교 랍비라든가 도덕교사, 이상적 인물, 종교적 천재, 혁명가, 과대망상적 광신자 등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설명되어 있다.  이런 묘사들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 8:27)고 물었을 때 제자들이 전한 갖가지 대답들과 유사하다.  이 묘사들은 제자들의 답변(세례 요한이라든가 옐리야라든가 선지자 중 화나라는)과 마찬가지로 진실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표현이 어느 정도는 예수의 모습과 부합된다.  그러나 그것은 중립적이고 초연한 입장에서 던진 방관자들의 대답이며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의 그런 말들을 들었을 때 제자들을 향ㅎ여 “그러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고 베드로에게서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대답을 들었다(막 8:29).  이 대답은 자연인 예수에 대한 명상의 산물이 아니라 예수라는 실재와의 인격적 만남에 의해 생성된 신앙고백이다.

복음서 설화들(narratives)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와 만나면 그의 품격에 대한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예수와의 만남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품격에 대한 의문을 느끼게 하는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의 공생애 벽두에서의 첫 등장은 “권위로 가르치는 이분은 누구인가?”(비교. 막 1:27), “죄를 사하는 이분은 누구인가?”(비교. 막 2:7), “바람과 바다조차 복종하는 이분은 어떠한 부류의 인간인가?”(비교. 막 4:4)라는 의문을 제기시키는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었다.  또한 예수는 그 생애중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7-29)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의 중요성은 마태 기자가 보도하듯(마 16:18)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대한 예수의 응답 태도에서 뿐만 아니라 그 즉각적인 효과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은 예수를 지지하는 자와 반대하는 자의 분열을 촉진시키는 촉매로 작용했던 때문이다(비교. 요 6:66-69).  이 시점으로부터 예수의 생애는 한층 중대한 국면으로 돌입했고 유대 및 로마 관헌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가 누구냐?”는 결정적 질문이 나왔다(비교. 막 14:51).  복음서 기자들의 명백한 의도는 그에 대한 질문이, 그리스도가 재판석에 끌려나왔을 때 그러한 질문이 제기되도록 의도하신 결과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같은 의도를 하신 것은 사람들이 피치 못하게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스스로 느끼지 않는 한 예수와의 진정한 만남도 있을 수 없다는 뜻에서였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이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는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비밀을 충동적으로 누설한 악마들의 행동(비교. 막 1:24)에서 병리적 차원으로 설명되어지고 있고 또한 요한복음 기자의 기록목적 진술에서 매우 명백하게 나타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기독론적 탐구에 대해서는 때때로 반대론이 제기되어 왔다.  그 이유는 기독론에 대한 탐구가 믿음의 고유한 대상으로부터 믿음을 멀어지게 하여 결국은 위험스러운 사색의 곁길에 귀착하게 하기 때문이며, 믿음의 대상은 멜랑히톤이 한때 말했듯이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benefits)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런 반대론에 대해 답변함에 있어서 기독론적 탐구가 신앙에 대한 위험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기독론에 대한 탐구를 거부하는 것 역시 그 이상으로 위험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에 못지 않게 위험하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런 자들에게는 고대교회의 고전적 기독론이 간단 명료한 신앙에 대한 희랍식 사변의 행패같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면밀히 검토해 보면 그런 기독론은 희랍적 사변의 발호로부터 신앙을 보호하기 위한 결의에 찬 시도이며 여기에는 바로 희랍 지성이 제공해 주는 도구가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론에 대한 탐구의 의도는 신앙을 그 본래의 대상에다 집중시키는 데 있다.  기독론에 대한 탐구는 신앙을 대체해 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신앙 자체에 대한 이해와 해명을 추구하며 신앙과 사이비 신앙을 구별하려는 신앙의 고유한 충동에 속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의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 질문은 보는 각도를 신앙에 두느냐 그리스도께 두느냐에 따라 두 부분 또는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신앙이란 각도에서 볼 때 저절로 나타나는 문제는 그리스도 신앙과 하나님 신앙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기술적인 면에서 기독론적 문제와 구별되는 삼위일체적 문제로서 보통 별개로 취급된다.  양자가 다 그리스도는 누구냐는 질문과 관계된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이 이 질문을 유일하고 고유한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서 제기하는데 비해 기독론은 첫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미 주어졌다고 가정하고, 즉 그리스도가 그 존재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동일하다(h-omoousios)고 가정하고(따라서 그리스도 신앙과 하나님 신앙은 일치한다) 그렇게 정의되는 그가 어떻게 우리 중 하나처럼 우리들 인간 속에 오실 수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묻는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 or deity)에 대한 기독론적인 주장을 해명하는데 이바지한다.  그 교리는(성령의 경우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현재하여 활동하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다”(고후 5:19).  이에 반해, 기독론은 그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린다.  기독론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우리와 더불어 활동하시는지를 묻는다.  이같이 해서 그 물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에 대해 집중된다.

(1) 방법의 문제:  신앙은 그리스도를 진정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그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우리 중에서 활동하시는 분으로도 말하기 때문에 기독론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가능하다.  즉 우리는 인성에서 신성으로 나아가거나 신성에서 인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이 문제는 탐구방법에만 적용된다.  실재의 순서에 관한 한, 기독론이 관계되는 운동의 방향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로 진행된다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다(요 1:14).  그러나 그 운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사고도 그와 꼭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법은 없다.

고전적 기독론은 하향적 또는 연역적 방법을 따랐다.  이 기독론은(삼위일체 교리에서 확립되었듯) 성자의 영원한 신성에서 출발하여 성육신을 논하고 그 다음에는 성육하신 분의 인성을 논하였다.  이 기독론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를 우리 인간에게까지 낯추신 하나님의 은혜의 하향적 운동을 충실히 반영하고 치하한다.  그러나 이 기독론은 우리가 여기 아래서 그리스도라는 존재로 나타난 하나님과 만남으로써만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사실을 무시하다시피 한다.


고전적 기독론은 또한 하나님의 선취성과 은혜의 선행을 옹호하려는 칭찬할 만한 관심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God-with-us)과는 격리된 추상적인 독자적 하나님(God-in-himself)을 옹호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의 신적 존엄과 영광에 모순된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 기독론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께도 기적이 되는 그런 하나님을 설정하려고 한다.  게다가, 고전 기독론은 신성을 사고의 출발점으로 간주할 수 있고 가정함으로써 충분한 인성의 개념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신적 말씀(Lo-gos)에 의해 인성을 입는다는 성육신이나 영원한 성자에 관한 정통 교리는 신성
을 인성보다 우위로 만들었고 따라서 인성은 수동적 또는 보조적 역할로 격하되었다.  이에 대한 문자적 보호 장치에도 불구하고 고전 기독론은 그리스도 단성론(monophysitism)이란 편견의 출현에 일익을 담당하는데 이 단성론은 구원을
인간의 신격화로서 보려고 하는 지엽적 구원개념 속에 반영되고 있다.  이와 다른 방법 즉 귀납적 방법은 “예수 인식의 길은 인간 예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께 이른다”(E. Brunner, Dogmatics II: 창조와 구속에 관한 기독교교리, 1952, p.322)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 방법은 루터 이후부터 줄곧 많은 신학자들의 지지를 받아 오고 있으며 계몽주의시대 이후 그 인기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인성을 주어진 것으로 그리고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며 신성
은 문제있는 미정의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기본적 가정이 있다. 즉 인성과 신성 간에는 모종의 연속성이 있으며 그 연속성 때문에 사고 속에서 인성으로부터 신성으로 옮아가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는 가정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많은 신학자들이 윤리적 측면에서 이 연속성을 찾으려고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칸트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많은 신학자들은 모든 신학적 교리를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윤리적 차원으로 바꾸는 것이 지상과제라고 믿
었으며 그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리츨(Ritschl)과 그 추종자들로서 이들은 인간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그런 기독론을 내세웠다. 그 시기의 특징은 전반적으로 관심이 고전적 기독론의 그리스도로부터 복음서에 묘사된 인간 예수에게로 바뀌었다는 데 있었으며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역사적 예수’만 있으면 나머지 기독론은 전부 없애도 된다는 입장까지 취하였다. 기독론에 있어서 귀납적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창한 자들이나 역사적 예
수에 대한 언급만으로 기독론은 충분한 것이라고 믿은 자들이나 다 역사적 예수 위에 기독론적 상부 구조를 세우기 이전에,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의 역사적 모습을 복음서(특히 공관복음서)로부터 추출해 낼 수 있다고 가정했던 것이다.


복음서 설화들(narratives)의 형태에 관한 최근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들 설화가 기독론 형성 이전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성육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고백하게 된 신앙의 견지에서 기록된 증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라는 그 설화들로부터 재구성될 수가 없는 환영인 것이다.  예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철두철미하게 기독론적이었다.  연역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은 두 가지가 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양자는 신성 또는 인성이 서로 격리된 채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고 우리는, 사고 속에서 이 두 본성 사이를 왕래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 양자는 그 안에서 기독론에 관한 물음이 야기되는 실제 상황을 포기해 버린다. 그 실제 상황이란 곧 교회의 고백과 선포 속에서 그리스도와 만나는 상황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쪽만을 선포하고 또 다른 면은 우리 자신의 재간으로 찾아내라고 맡기지는 않는다.  교회는 신이자 인간이신 그리스도 전체를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우리를 초대한다.  신앙의 고유한 대상이 되는 분은 바로 이 그리스도이시며 기독론은 그 신앙의 대상에 대한 신학적인 성찰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만나는 그러한 상황의 모범적 예는 그리스도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와 만나신 것이나(막 8:27-29) 부활후 도마와 만나신 것(요 20:24-29)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상황은 사도들의 설교와(이것은 케리그마로서 신약의 기록들은 케리그마의 퇴적물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설교에서 재생된다.  모든 설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성격을 내포하며(행 1:8) 또 그런 설교에는 선포되어지는 말씀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직접 사람들과 대면하사 그들을 신앙에 로 부르실 것이라는 약속이 부여된다.  설교 속에서 만나게 되고 또 신앙고백을 불러 일으키는 분은 곧 부활하시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다.  그러나 부활하시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어떻게 신약 책장 속에 나오는 그리스도와 관계될 수 있는가?  또는 질문을 바꾸어 말해보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신앙고백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느냐?”는 것이 된다.  이 질문은 불트만의 저작에서도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불트만이 강조하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즉 신앙이 응답하는 대상은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라기보다 교회의 설교 속에서 선포되는 그리스도(케리그마적인 그리스도)라는 것이다(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역사적 그리스도이고 교회에서 선포된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  불트만은 심지어 복음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신앙에는 부적절한 분으로까지 격하시켜 버린다.  그는 고후 5:16에 나오는 바울의 말, 즉 “전에는 우리가 세속적인 표준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을 자주 인용한다.  그는 위의 성구가 말하고자 한 것은 역사적 그리스도라기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복음설교의 주제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가 한때 육신으로 있었다는 사실만 중요하지 자질구레한 세부적 사실들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예수의 지상 삶의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든 실제로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불트만은 주장한다).  불트만이 자신있게 강조하고 있는 사실, 즉 설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보도가 아니며 역사적 사실은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과거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설교는 선포되는 말씀 속에 직접 현재하는 살아 계씬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라는 사실은 옳다.  그러나 불트만은 설교 속에 현재하는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사업을 단번에 완수해내신 그리스도와 동일하다는 사실과 케리그마에는 이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보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바울은 케리그마의 현실성을 강조하는 데(고전 1:21, 고후 5:19-20), 많은 경우에 그는 이것을 자기가 받았던 전승(고전 11:23, 15:3)과 결부시킨다.  그리고 덧붙여서, 교회는 일찍부터
신앙의 증거인 동시에 이들 전승을 보존하고 있는 복음서들을 정경으로 삼는 것이 적합하다고 여겼다.

부활하시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 대한 설교는 역사적 그리스도에 대한 전승으로부터 분리될 수도 없고 또 그럴 의도도 없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케리그마 자체에 꼭 필요한 요소였다.  신앙은 최초부터 역사적 사실에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신앙이 역사적 문서의 정당성에 속박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물며 신앙이 역사적 문서를 틀림없다고 확인해 줄 수 있다는 말은 더 더욱 아니다.  역사적 문서는 역사 연구의 비판적 방법에 의해 연구되어야 한다.  동시에 만약 그 비판적 연구가 역사적 문서를 배태시킨 신앙을 무시해 버린다면 그러한 연구는 비과학적 연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인 까닭이다.  이 점만 유효한다면 신앙과 역사 사이에 급격한 거리감이 생길 가능성은 줄어들 수 있다.  그 역사적 문서들은 신앙의 산물이며 따라서 신앙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들을 연구한다면 객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확실치 않은 세부사항이라도 예수와의 만남에 대한 증거로서 또 다른 종류의 신빙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아브라함 링컨 같은 위인에 관한 일화가 비록 출처는 미심쩍더라도 그 사람이 자기와 만난 자들에게 어떤 의미의 말을 했는지를 아는 데 도움을 주는 것과 꼭같다.

(2) 신약의 기독론:  만약 기독론에 관한 문제를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 속에 나타난 신성과 인성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로 이해한다면 신약 안에는 이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것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교회 자체만 해도 사도시대 이후 여러 세대가 지날 때까지 이 문제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고 4세기에 삼위일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개념)를 소유하지 못했다.  신약은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존재했다는 것을 긍정하는 형태로 이 문제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줄 따름이다.  그리고 이런 긍정들은 보통 별개로 나타나며 드물기는 하지만 한꺼번에 결합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극히 주목되는 예외로는 갈 4:4, 빌 2:5-11, 요 1:14이있다.  대부분의 경우 신약은 신성과 인성의 두가지 면을 따로따로 지적하고 있다(참조: 오스카 쿨만, [The Christology of the New Testament]<신약의 기독론, 1964년>).

예수의 인간적인 면은 신약의 어느 부분에든 나타나 있다.  복음서나 서신 그리고 공관복음서나 제4복음서 등 신약에서 말씀되는 말이면 무엇이든지 그 말씀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인간이었던 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신약 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가정이며 이 점이 명백하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사실은 주장될 필요도 없었는데, 왜냐하면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가 “여자에게서 나고 율법 아래서 났다”(갈 4:4, 유대 세계에서는 이 두가지가 인간의 필수적 특징이었다)고 말했을 때도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요약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는 그것을 애써 말한 필요가 없었다. 단지 신약 기록 중 가장 후대에 속하는 것의 일부에서 그리스도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마지 못해 받아들이려는 초기의 증거가 나온다.  그러자 그후 그리스도의 인간됨은 교리적 주장의 주제가 된다(요일 4:2 이하).  신약은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의 인성을 꾸밈없이 용인하고 자유롭게 주장한다(예. 딤전 2:5). 인성이 문제가 된 보다 후기사상의 입장으로부터도 신약문서 특히 복음서들을 들여다 보고 거기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 가운데서 진정한 인간이 나타내는 많은 특징을 식별해 낸다는 것은 가능하다.  즉 그가 인간으로 출생한 것이라든가 성장한 것, 그리고 피조물이 갖는 제약조건에 복종한 것 뿐만 아니라 굶주리고 목마르고 피곤한 것, 즉 다른 말로 하면 최후의 원수인 죽음을 포함하여 육체라면 거역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리기 쉬운 것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죄가 없었다’는 한가지 점만 제외하면(히 4:15) “모든 점에서 그 형제들과 같이 만들어진 분”(히 2:17)의 모습이다.

예수는 자신을 지칭함에 있어 인자라는 말을 택하셨다(다른 사람들이 예수께 이 말을 사용한 적은 결코 없었다).  이 칭호는 종종 예수의 인성을 긍정하는 그의 방도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요즈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구약에서 ‘인자’란 사람과 동의어인 것이 사실이며 아들이란 말이 추가된 것은 아마 하나님의 위엄과 비교하여 인간의 비천함을 암시하기 위한 것일것이다(시 8:4, 겔 2:1 등).  그러나 단 7:13의 인자 어휘사용에서 나타나듯 유대 묵시문학에서는 인자라는 말에 메시야적 의미가 가미되었다.  즉 단 7:13에서는 영원한 왕국을 받기로 되어있는 자를 ‘인자같은 이’라고 묘사한다.  일반적으로 예수가 인자라는 명칭을 따온 출처는 다니엘서에 있는 구절인 것으로 생각되며 대제사장 앞에서 행한 예수의 진술(막 14:62)과 영광 중의 재림에 관한 그의 다른 발언(막 8:38, 13:26, 마 24:27)에서 이에 대한 명백한 암시가 나온다.  이와같이 예수의 입에 오른 인자라는 명칭은 그의 메시야되심에 대한 자신의 은닉된 또는 비밀한 증거로서 예수는 자신의 메시야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인정하기를 눈에 띄게 꺼려했다(막 8:30).  또 인자라는 명칭은 땅 위에서의 자기 권세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고 있다(막 2:10,28).  예수가 인자 명칭을 사용한 것 중에서 가장 보기드문 특징은 그가 자신의 굴욕과 고난을 인자 명칭과 결부시킨다는 점이다(마 8:20, 막 8:31, 9:31, 10:33).  예수의 인자 명칭의 두
가지 측면, 즉 인자의 현재적 비천과 미래에서의 의기양양한 출현은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두가지 국면, 즉 하나님 나라가 현재는 안보이는 가운데 온다는 것과 종말에는 눈에 보이게 온다는 두가지 면과 상응한다.  인자(예수)의 선
교에서 나타나는 이 두가지 단계의 순서는 나중 그리스도의 낮춤과 높임의 상태에 관한 기독론적 교리에 반영되었다.

신적인 면은 대부분의 경우 사실상 ‘하나님과 동등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칭호를 그리스도에게 붙임으로써 간접적으로 입증되고 있다(요 5:18, 빌 2:6). 이들 존귀한 칭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이다.

1) 그리스도: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는 주로 유대 기독교인들에게는 의미 깊은 칭호였다.   그 이유는 이 칭호의 보유자가 이스라엘의 희망을 성취시키는 자 즉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실현시키기로 되어 있는 자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에서 소개되는 예수의 메시야 직분은 구약에 나타나는 특정한 메시야 예언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메시야 기대는 예수의 메시야 예언 성취 속에서 급격히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하는 메시야는 구약에서는 왕의 칭호로서 그 왕이 하나님의 카리스마적 대리인 내지 부섭정이라는 것을 시사하며 하나님은 엄밀히 말해서 자기 백성의 유일한 왕이다(삿 8:22 이하, 삼상 8:7).  이 칭호는 사울(삼상 12:3)과 다윗(삼상 16:6)에게 적용되며 심지어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도구로 사용될 때 그에게도 적용되기까지 한다(사 45:1).  대제사장에게도 이 칭호가 주어지지만(레 4:3-5) 예언자에게는(사 61:1이 예언자를 암시하지 않는 한) 주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에 왕정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비교적 작은 역할을 했으나 왕국이 멸망한 후에는 더 현저해졌고 그 기대의 초점은 제사장에게 집중되는 때도 있었지만(슥 3장) 대개는 왕국을 재건할 다윗 왕가의 인물에게 있었다(미 5:2). 예수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메시야적 기대는 주로 메시야의 왕적 측면이었고, 이로 인해 예수의 메시야 주장은 백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였다.  그 이유는 예수의 외관이 왕다운 데가 전혀 없어 그의 메시야 주장은 노골적 신성 모독으로 보였기 때문이다(막 14:61-64).  한편 그리스도를 종말론적 시대의 대제사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히브리서밖에 없다(특히 9:23-28).  복음서에서는 그리스도를 예언자로 묘사한다.  이것은 제자들의 고백(막 8:28 이하)에 속한다기보다 민중의 판단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예. 마 21:46).  그러나 솔로몬 전각에
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비교. 행 3:18-26, 7:37)에서는 그가 신 18:15의 (종말7:40)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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