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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의 역사


1. 사도시대의 해석(A.D 30-100년)

구약성경을 역사적. 예언적 내용으로 이해하고 또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명에 관한 예언들로 이루어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의 해석원리는 예표론적 해석 방법을 취하였고, 구약에 나타난 사건들, 목표의 대상들, 그리고 관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예표이며, 후일 역사 속에 나타날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받아 들였다.

더욱이 사도들은 문자적-문맥적인 해석(Literal-Contextual)방법에 충실하였으며, 성경원리를 생활에 적용할 것을 강조하였다.

2. 교부시대의 해석(A.D 100-590년)

가). 시대적 배경

마지막 사도인 요한의 죽음이 교회를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한다.

이 시대를 “교부시대” 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시대가 소위 교회의 아버지들(사도 시대 이후 처음 4세기 동안의 교회 지도자들)의 기여와 공헌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부시대 동안에 사도들의 저작들은 교회들 가운데 회람되고 있었으나 구약의 정경적인 짝으로 모아져 있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후에 가서 신약성경이된 당시의 많은 책들과 서신들을 교회는 구약과 동등한 것으로 생각한 반면에, 아직도 구약을 교회의 일차적인 성경 모음집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후에 가서 교회전통이 교회 교리를 정의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러한 교회 전통의 부상이 1400년 이후의 종교개혁 때까지 성경 해석의 실행을 결정적으로 이끌어 왔다.

교회 회의들이 마침내 성경의 기독교 정경의 정확한 내용들에 동의함에 따라, 이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나). 성경해석 방법

1) 사도적 교부들(A.D 약 100-150년)

사도 요한이 죽은 1세기경의 성경해석의 개략을 보여주며 로마의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폴리갑, 바나바라 등이 속하며 이들은 성도들에게 교회 교리를, 그리고 유대주의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지킬 것을 가르쳤으며, 몇가지 해석의 방법들이 초기 교회교부들 사이에 있었음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구약과 신약을 연관짓는 예표론을 해석에 많이 적용하고 주된 해석의 방법은 풍유적 해석방법이다.

* 해석 방법론

가) 모형론(typology)

구약을 신약과 연결하기 위해 특히, 예수에 관한 가르침과 연결지으려고 사용.

당시의 저자들로 하여금 구약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가르치는 일에 도움을 제공하기도 함.

나) 알레고리(allegory)

일반 문학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이었음.

자신들의 가르침에 대한 뒷받침을 구약으로부터 얻고자 했으며 그들의 교리에 많은 신뢰성을 부여하고자 했음.

다) 미드라쉬적 해석방법

라) 전통적인 해석

교회가 가르쳐 왔던 해석들을 교회의 올바른 해석으로 간주하게 됨.

교회 전통을 성경의 위치와 동등한 위치로 부상시킴.

결국 교리에 대한 교회의 궁극적 권위로 이어짐 / 교회 지도자들이 심판관의 역할 담당

2)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A.D 약150년 – 400년)

초기 교부들이 사라짐에 따라,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이 교회의 성경 해석을 주도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은 동일한 기본적인 기독교 신앙들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성경해석에 대한 방법론은 서로 달랐다.

가) 알렉산드리아

오랫동안 유대인들과 신플라톤 철학자들에게 있어서 풍유적 방법론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흐름으로 풍유적인 해석방법을 채택하였다.

이 해석방법으로 비그리스도인 동료들 가운데서 자기들의 해석에 대한 신뢰성을 얻고자 했다.

※ 풍유적해석의 정당성 제시

① 클레멘트

성경을 알레고리화 하는 사람들의 전형,

성경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가르침,

숨겨진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함.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단순히 본문 내면에 있는 영적인 진리를 지시하는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본문의 다양한 세부 조항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의미를 추출해 냄

② 오리겐 (A.D 185-254)

클레멘트의 후계자,

인간이 몸,혼,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성경도 삼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

성경의 지혜로운 해석자는 본문의 사건들(문자적인 의미)로 부터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숨겨진 원리들(도덕적인 의미)과 교리적인 진리(영적인 의미)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

나) 안디옥

오리겐의 극단적인 풍유적 해석은 다른 초대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알레고리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적합하고 믿을만한 방법이 아니라고 이를 배격했다.

결과적으로 시리아에 있는 안디옥에 두 번째 기독교 교리문답 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는 알레고리 대신에 성경에 대한 역사적-문법적 이해를 가르쳤다.

즉 모든 본문은 문법과 단어들에 의해 전달되는 하나의 평이한, 그리고 단순한 의미를 갖는다고 가르쳤다.

– 주요선생 –

.몹수에스티아의 데오도르와 데오도레트, 존 크리소스톰 – 데오리아(통찰력)

안디옥 학파 사람들이 성경의 보다 깊은 의미를 발견하는 열쇠. 숨겨진 영적인 의미를 선호하여 문자적인 의미를 경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은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의미를 직접적으로 영적인 의미와 상통한다고 주장했다.

알레고리를 철저하게 배격함으로써, 안디옥의 학자들은 교회에 의해서 널리 받아들여진 몇몇 해석들과 이별하게 됨.

성경의 역사적인 의미를 알렉산드리아의 경쟁자들보다 더욱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레고리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때때로 이들은 강력하게 배격했던 풍유적 해석의 접경에 서있는 일종의 모형론을 사용했다.

3. 교회 회의 시대 (주후 400-590년)

가) 배경

A.D 312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과 함께 정치가 교회의 성경 해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황제는 교회에 압력을 가해서 교리상의 차이점을 해결하고 표준화된 교리를 정립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시도는

첫째, 정통을 지키려고 성경에 단순히 호소하는 것은 다름아닌 교리적인 교착 상태를 만들어 냈을 뿐이고

둘째로, 정통 신학자들 자신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방식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점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기독교회는 성경의 의미를 완전하게 결정지을 만한 일종의 권위가 대단히 필요했다.

교회는 교회 지도체제의 사도적 계승 속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발견했다.

나) 성경해석 방법

교리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선언들이 교회가 옳다고 생각했던 성경의 해석들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교회의 선언들을 결정치 못하게 되었다.

* 어거스틴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본문들의 올바른 의미를 발견하는 세가지 기준제시

① 해석자는 믿음의 법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② 교회의 권위나 혹은 본문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을 참고해야 한다.

③ 만약 모순된 견해들이 이상의 두 기준과 충돌될 경우 해석자는 문맥을 참고함으로 어느 견해가 가장 좋은가를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해 보다 평이한 본문과 교회 전통이 불분명한 구절들의 문맥보다 우선한다는 뜻임.

교부시대가 끝날 무렵, 제롬을 설득하여 외경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을 라틴어로 번역하도록 했다.

히브리어 사본과 헬라어 사본의 라틴어 번역본인 벌게이트가 교회의 공식적인 성경이 되었고, 이때로부터, 모든 실천적인 목적을 위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로 이루어진 성경의 연구는 중단되었다.

대신 교회는 모든 교리상의 논쟁들을 위해 벌게이트 번역본에 의존하게 되었다.

다) 평가

교회는 자신의 가르침에 있어서 여전히 성경에 대한 의존에서 한 발자국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4. 중세시대 (A.D 약 590-1500년)

가. 배경

이 시대는 두 개의 다른 주요시대 사이에 놓여 있는 역사적 시기이다.

교회 교부들과 교회 회의들에 의해 지배되던 교부시대로부터 흘러 나와서 종교 개혁에 의해 입안된 새로운 진로들로 흘러 들어갔다.

어떤 점에서 이 시대는 이 두 시대 사이에서 전환적인 국면을 형성했던 시기이다.

중세시대는 교부 시대의 몇몇 양상들이 쇠퇴한 시대요, 종교 개혁의 부상을 위한 토대를 놓은 시기이다.

무지가 교회의 성직자와 평신도를 괴롭혔으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교회적인 권세를 유지하고자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동시에, 중요한 발전들이 중세 이후 수세기에 걸쳐서 성경 해석의 관행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 성경해석방법

1) 전통적인 해석

수세기에 걸쳐서 전해 내려온 교부들의 견해들, 이 해석의 주된 자료들이 문서화된 카테나 혹은 교부들의 주석들로부터 편집된 일련의 해석들로 남아 있다.

2) 풍유적인 해석

중세시기 해석이 가장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문자는 하나님과 우리 선조들이 행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알레고리는 우리 믿음이 어디에 숨겨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도덕적 의미는 일상 생활의 법칙들을 우리에게 부여하며,

영적 의미는 우리의 다툼이 어디서 끝나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3) 역사적인 해석

중세의 몇몇 학자들은 유대의 권위자들의 자문을 구함으로써 성경의 역사적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퀴나스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문자적 의미가 믿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그는 풍유적인 해석에 오랫동안 속박 되어 있던 신학을 그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다. 평가

중세시기는 교회내에서 풍유적인 해석 방법론의 우위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는 시기였다.

알레고리의 실행자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전통적인 해석에 대한 의존이 강도 있게 남아 있었다.

동시에 성경 해석에 있어서 기독교회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징후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었다.

5. 종교 개혁 시대 (A.D 1500-1650년)

가. 배경

중세시대 이후 무렵에 스콜라주의자들의 경직된 전통주의와 에라스무스와 같은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의 새로운 학문 사이에 갈등이 분출했다.

스콜라주의의 조직신학이 전통적인 정통 노선에 이성적인 버팀목을 제공했기에 많은 사람들은 스콜라주의를 함락되어야 할 요새로 생각했다.

더욱이 성경을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아어로 공부하고자 하는 새로운 각성은 학자들에게 성경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516 년에 에라스무스는 부록으로 새로운 라틴어 번역본을 지닌 최초의 헬라어 신약성경의 현대판을 발행한다.

초기 사본들에 대한 이러한 점증하는 관심은 라틴어 벌게이트 성경에 있는 많은 번역상의 오류들을 드러냈고, 이 성경이 교회 교리를 뒷받침 하면서 누렸던 절대권위를 손상시켰다.

벌게이트 성경에 권위를 두고 있었던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의구심으로 가톨릭교회의 권위에도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했다.

나. 성경해석 방법

1) 루터 – 오직 성경으로

성경 자체가 성경의 가장 좋은 해석자라는 원리 천명 – 풍유적인 해석 방법론 배격 : 알레고리는 헛된 추론이다. – 모형론적 해석 채택

2) 존칼빈 – 알레고리 배격 – 성경의 역사적인 해석 선호 – 성령의 내적 증거라는 요소를 받아들임

성령의 내증은 해석의 과정을 조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해석자의 마음에 그가 행한 해석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확증하는 역할을 함.

다. 평가

전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의존 (성경의 평이하고 단순한 문자적 의미 선호)

6. 종교 개혁 이후 시대 (A.D 1650-1800년)

가. 배경

종교개혁과 르네상스로부터 흘러 나온 중요한 움직임들이 종교 개혁 이후 시대의 성경 해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종교개혁으로 부터 경건주의라는 운동이 생겨났다.

이 운동은 신교의 스콜라주의의 메마른 지적 교조주의와 생명력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 의식에 대해 반발했다.

경건 주의는 그룹 성경 공부, 기도 그리고 개인적인 도덕성의 계발을 통해서 기독교의 모든 실행들을 삶의 방식으로 재생하려는 노력을 했다.

르네상스 정신은 이성주의(혹은 합리주의)라 불리는 중요한 지적 운동을 낳았다.

이성주의는 인간의 마음을 진리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하나의 독립된 권위로 생각했다.

이들은 원어로 성경을 공부하는데 인간 이성을 사용했다.

나. 성경 해석 방법

경건주의의 성경 해석 방법론에서 에드워즈는 성경으로부터 실천적인 적용을 이끌어 내고자 모형론에 호소했다.

이성주의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성의 사용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을 세워 나가는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를 교회의 권위에 대항해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 자체에 반하여 적용했다.

다. 평가

종교 개혁 이후 시대는 성경 해석에 대한 접근 방식의 분열상을 가져왔다.

아퀴나스 철학과 신학의 단절을 증진시켜 나갔다.

7. 현대(A.D1800~현재)

가 시대적 배경

역사비평이 출현하였으며 스피노자는 성경 각책의 생성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힐데스하임의 목사 벤야민 비터는 오경의 자료들로부터 모세가 창세기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고 하였다.

아스트렉은 오경의 생성과정을 추론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이 계속 전개 되면서 오히려 모세 저작성을 부인하는 주장들이 점점 더 힘을 얻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신(新) 자료가설이란 의미에서 문헌 비평적인 작업이 진행되었고 독일에서는 궁켈의 연구에 근거한 양식적인 연구 방법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궁켈은 문서로 기록되기 이전의 구두 전승과 그 전승에 각인된 형식들과 그 전승들의 “삶의 자리”에 주목했다.

두 세기 동안의 오경의 생성에 대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1) 문서 또는 자료가설

오경은 여러개(세 개 혹은 네 개)의 독립적이며 상이한 시대와 장속에서 생성된 자료 문헌들로부터 생겨났다.

이런 자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단계의 편집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양으로 통합되었다.

2) 보충 가설 또는 기본 문헌 가설

오경은 하나의 작품(“기본 문헌”)을 기초로서 가진다.

이 작품이 수 세기를 지나면서 여러번 확장되었다.

3) 단편 가설

오경이 다양한 장소와 상이한 시대에서 생겨난 독립된 이야기 부분들 (“단편들”)로 부터 통합되었다.

이러한 부분들은 특정한 주제와 형태들을 통해 그 특징을 보인다.

4) 최근의 자료가설

베테는 1805년 신명기의 핵심은 요시야 종교개혁 시기(B.C 622 년경)와 맞물려 있다는 가설을 주창했다.

이 가설을 발전시키며 그라프의 주장을 수용한 벨하우젠은 제사장 문서가 가장 후대의 오경자료이며 그 이유는 예언자들이 제사장문서(P)에 포함된 제의법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기까지 신(新) 자료가설이란 의미에서 문헌 비평적인 작업이 진행 되었고 독일에서는 궁켈의 연구에 근거한 양식적인 연구 방법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궁켈은 문서로 기록되기 이전의 구두 전승과 그 전승에 각인된 형식들과 그 전승들의 “삶의 자리”에 주목했다.

나. 성경해석의 방법

1)문예학적인 방법론

첫째로 연구사에 대하여 말하자면,

카수토나 야콥같은 유대인 주석가들이 20세기의 30~40년대부터 이미 본문의 단일성을 다시 옹호하였지만. 벨하우젠의 자료가설이 7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지배적인 해석 모델로 남아 있었다.

여호수아서, 룻기,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대해서 “신명기 사가적 역사서” 라는 노트(Martin Noth)의 가설이 광범위하게 관철되었다.

그러나 세속적 문예학과 언어학 분야의 다양한 새로운 흐름들이 20세기의 20~30년대부터 점차 많은 영향력을 얻게 되었다.

20세기의 70~80년대에 문예학적인 방법론들이 성서학계에 확산되었다.

독일어권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방법론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수용된 반면, 주로 영어권 국가와 네덜란드, 또한 이스라엘에서 “신 문학비평”,“문학적 접근”, “서사비평”, “근접 독법” 등과 같이 포괄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론의 명칭들 아래에서 행해진 새로운 방향설정이 큰 호응을 얻었다.

둘째로 일반적인 표지들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러한 상이한 학파에도 불구하고 문예학적 방법론들의 몇 가지 공통점들은, 해석의 중심점이 분명하게 성경의 문학적 측면에 놓여 있으며 성경은 자신의 문학성 안에서 다른 모든 책들과 같은 하나의 책이며, 문예학의 도구들을 통해 연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방법론에서는 본문이 이전역사에 관심이 없고, 정경적 최종본문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 받아 들여진다.

셋째로 본문중심의 방법론들은 본문들이 저자에게서 풀려나 독자적인 삶을 영위하는 독립적인 단위들로 고찰된다.

미학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문학적인 예술작품” 으로서 대한다.

문헌비평에서와 마찬가지로 긴장들과 모순들이 관찰되지만, 문학적이며 신학적으로 해석된다.

2)정경적인 방법론

첫째 정경적인 방법론은 챠일즈라는 이름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있다.

그는 모든 주석적 작업의 토대와 관점으로 정경을 찬성하고 마지막 단계의 주석적 방법으로서의 “정경적 비평”으로 축소하는 것에 맞서 싸운다.

또한 그는 성경의 책들은 길고 복잡한 정경적 편집과정의 결과라고 말한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정경적인 방법론은 점차 많은 영향력을 얻었다.

다. 평가

1) 문예학적인 방법론에 대한 평가

ㅇ 긍정적인 평가 

– 해석의 출발점이 정경적인 최종본문이며 자료와 문헌층의 추정적인 재구성이 아니라 본문의 성실성에 있다.

– 문학적인 장르와 관습이 분명하게 고찰된다.

– 미학적인 요소들에 강조점이 놓여 있다.

– 화자의 관점과 독서과정 자체가 고려된다.

ㅇ 비판적 문제제기

– 서구적인 문학개념과 현대적인 허구와의 비교가 근간을 이룬다.

– 역사적인 문제제기가 등한시 되거나 완전히 사라진다.

– 현대적인 독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들이 모든것의 기준이 된다.

– 수사학적인 요소들과 문학적인 구조가 과대평가 된다.

– 신학대신에 미학이며, 진리탐구 대신 오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정경적인 방법론에 대한 평가

ㅇ 긍정적인 평가

– 본문에 충실하다.

– 객관적이다.

– 신학적이다.

– 신앙공동체 중심적이다.

ㅇ비판적 문제제기

– 영감의 자리가 저자와 본문으로부터 신앙공동체로 옮겨졌다.

– 탈 역사화의 위험이 존재한다.

– 편집자가 과도하게 강조된다.

– 어떤 구약성경의 정경이 근간을 이루는 것인지(히브리성경의 좁은 의미인지 70 인경의 넓은 의미인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