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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드(חֶסֶד) — 구약 성경이 품고 있는 번역 불가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단어들은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이 든다. 헬라어 ‘아가페(ἀγάπη)’를 한국어로 ‘사랑’이라고 옮길 때, 그 단어가 품고 있는 깊이가 다 전달되지 않는다는 생각.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더욱 그런 단어가 있다. 바로 히브리어 ‘헤세드(חֶסֶד)’다. 이 단어 하나를 이해하는 것이 구약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lovingkindness’, ‘steadfast love’, ‘mercy’, ‘kindness’, ‘faithfulness’ 등 여러 단어로 옮긴다. 한국어 성경은 ‘인자(仁慈)’, ‘자비’, ‘사랑’, ‘은혜’ 등으로 번역한다. 각각의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하나도 ‘헤세드’의 전체를 담지는 못한다. 이 단어는 그만큼 풍부하고, 그만큼 깊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내듯, 헤세드는 상황에 따라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하늘의 빛 하나님의 사랑

헤세드는 구약 성경에 약 250회 등장한다. 특히 시편에서 가장 자주 나타나는데, 시편 136편은 아예 매 절마다 후렴처럼 반복한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כִּי לְעוֹלָם חַסְדּוֹ).” 26절 내내 이 고백이 되풀이된다.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돌아보면서, 그 모든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하나님의 헤세드였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창조에서부터, 출애굽에서, 광야 여정에서, 가나안 정복에서, 심지어 포로 생활에서도 하나님의 헤세드는 끊이지 않았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시편 136:1

헤세드의 핵심은 ‘언약(covenant)’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감정적 사랑이나 자발적 친절을 가리키지 않는다. 헤세드는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사랑이다. 구체적으로는 언약 관계,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약속의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신실한 사랑이다. 이 사랑은 감정의 기복에 따라 오르내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한 번 약속하셨으면,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것, 그것이 헤세드다.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배신할 때에도, 하나님의 헤세드는 거두어지지 않았다.

구약학자 캐서린 도브 세켄펠드(Katharine Doob Sakenfeld)는 헤세드를 세 가지 요소로 분석했다. 첫째, 구체적인 필요에 응답하는 것. 둘째, 오직 그 사람만이 도울 수 있는 상황에서 돕는 것. 셋째, 그렇게 해야 할 의무를 넘어서 자발적으로 행하는 것. 이 세 요소가 합쳐질 때 비로소 헤세드가 된다. 헤세드는 의무를 넘어선다.

언약적 사랑 자연 배경

룻기에는 헤세드의 아름다운 예가 나온다.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보여준 헌신을 나오미는 “헤세드”라고 표현한다. 인간 사이의 헤세드는 하나님의 헤세드를 반영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헤세드를 베푸셨기에, 우리도 서로에게 헤세드를 베풀 수 있다. 받은 사랑이 흘러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것, 그것이 헤세드의 순환이다.

호세아 6장 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인애(헤세드)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종교적 의식과 형식보다 헤세드, 즉 진실한 관계적 사랑을 원하신다는 선언이다. 예수님도 이 구절을 두 차례 인용하셨다.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진실한 사랑, 관계를 지키려는 신실함,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예배다.

신약에서 헤세드의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은혜와 진리(χάριτος καὶ ἀληθείας)”는 구약 히브리어 “헤세드 베에메트(חֶסֶד וֶאֱמֶת)”의 번역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헤세드가 인간의 형체를 입고 오신 분이다. 십자가는 헤세드의 극치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언약을 깨트린 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것 — 그것이 헤세드다.

헤세드를 알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이 달라진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내 삶이 얼마나 엉망이든, 하나님의 헤세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함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로, 의무가 아니라 기쁨으로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헤세드를 묵상하면 감사가 깊어진다. 내가 받은 사랑의 크기를 알게 될수록, 일상의 작은 것들이 다 하나님의 헤세드로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 햇살, 따뜻한 밥 한 그릇, 건강한 몸, 사랑하는 사람들 —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헤세드다. 헤세드는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흘러서 나누어질 때 완성된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 시편 63:3

헤세드는 생명보다 낫다. 이 고백이 시편 기자의 고백에 그치지 않고, 오늘 나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하나님의 헤세드가 나를 아침에 깨우고, 나를 낮에 붙들고, 나를 저녁에 품는다. 그 사랑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