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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저녁, 천천히 걷는 길에서


해가 길어진 계절입니다. 저녁 일곱 시가 넘어도 하늘에는 아직 빛이 남아 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 근처의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특별한 목적지가 있는 걸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걷고 싶어서,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천천히 걷고 싶어서 나선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빨리 걷는 법만 익혀 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가 중요했던 날들. 그러나 저녁의 산책은 속도를 내려놓는 연습입니다. 도착이 목적이 아닌 걸음 속에서,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걷다 보니 길가의 풀잎마다 저녁 빛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낮 동안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기우는 햇살 속에서 문득 또렷해졌습니다. 담장을 타고 오른 덩굴의 잎맥, 보도블록 틈으로 고개를 내민 작은 들꽃,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그림자.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늘 거기 있었지만, 천천히 걷는 자에게만 그 세밀함을 내어 줍니다. 빠른 걸음에는 풍경이 흐릿하게 뭉개지지만, 느린 걸음에는 풍경이 하나하나 살아납니다.

땅거미 내리는 나무들 사이의 오솔길

다윗은 목동 시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양 떼를 지키느라 들에서 보낸 수많은 밤들이 그의 영혼에 새겨졌습니다. 그가 본 것은 단순한 별이 아니라, 그 별을 지으신 분의 손길이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 시편 19:1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며, 이 색을 누가 매일 다르게 칠하시는가를 생각했습니다. 어제의 노을과 오늘의 노을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같은 자리, 같은 시간이지만 매일 새로운 그림이 펼쳐집니다. 누구도 똑같은 노을을 두 번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편지를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어제 받은 사랑을 오늘 또다시, 그러나 결코 같지 않은 모양으로. 우리가 그 편지를 읽지 못하는 것은 편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바빠 고개를 들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천천히 걷는 일의 가치를 우리는 자주 잊습니다. 효율과 생산성의 언어 속에서 ‘천천히’는 게으름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엿새 동안 세상을 지으시고 이렛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단번에 모든 것을 지으실 수도 있었지만, 그분은 하루하루 차례로 지으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좋음을 음미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빠름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느림은 의미를 가져옵니다. 저녁 산책은 그 느림 속에서 하루의 의미를 되찾는 시간입니다.

저녁 빛이 스며드는 여름의 숲

걸음을 멈추고 잠시 벤치에 앉았습니다.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저녁 짓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왔습니다. 평범한 저녁의 소리들. 그러나 그 평범함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은혜인지도 모릅니다. 큰 사건 없이 흘러가는 하루, 무사히 저무는 저녁,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 우리는 비범한 것을 좇느라 평범한 것에 깃든 은혜를 놓치곤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저녁을 바라보면, 이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수많은 은혜로 빚어진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음이 분주할 때는 기도조차 분주해집니다. 구할 것들의 목록을 빠르게 읊고 서둘러 ‘아멘’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녁 산책 같은 기도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그저 곁에 계신 분과 나란히 걷는 기도.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기도.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할 때, 그 동행은 어쩌면 이런 저녁 산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동행이 아니라, 그저 함께 걷는 것이 좋아서 평생을 함께 걸은 우정. 그 끝에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옮겨졌습니다. 동행의 자연스러운 결말처럼.

해가 거의 다 졌습니다. 하늘의 붉은빛이 보랏빛으로, 다시 짙은 남색으로 번져 갑니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낮의 세계가 밤의 세계에 자리를 내어 줍니다. 이 전환의 시간, 황혼이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어둠이 와도 그 어둠을 지키는 별들이 떠오른다는 것. 우리의 하루에도 저녁이 찾아오지만, 그 저녁은 끝이 아니라 다음 아침으로 이어지는 다리라는 것.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해결해서가 아니라, 잠시 속도를 늦추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답이 아니라, 때로 더 느린 걸음일지 모릅니다. 천천히 걸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일. 그 단순한 행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그리고 그 작은 우리를 얼마나 크신 분이 돌보고 계신지를 다시 배웁니다. 내일도 다시 저녁이 올 것입니다. 그때 또 천천히 걷겠습니다. 그 길 위에서 다시, 하늘이 선포하는 영광을 조용히 읽겠습니다.

천천히 걷는 동안, 며칠 전 읽었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분석하거나 연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보라’고 하셨습니다. 보는 것, 바라보는 것, 가만히 응시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새는 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고,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아니하지만 솔로몬의 영광보다 아름답게 입혀집니다. 그 단순한 바라봄 속에 염려를 이기는 비밀이 있었습니다. 저녁 산책은 바로 그 ‘보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작은 예배입니다.

걷다가 한 그루 나무 아래 멈춰 섰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앙상해 보이던 가지에 어느새 짙은 잎이 무성했습니다. 나무는 자라느라 애쓰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자랐는지 광고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햇빛을 받고 비를 마시며 자랄 뿐입니다. 신앙의 성장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영적 성장을 눈에 보이는 성과로 확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나무처럼, 참된 성장은 대개 조용하고 더디며 스스로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무성해져 있을 뿐입니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짧은 산책이었지만 마음에는 긴 여운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거창한 사건 속에서만 만나지는 분이 아닙니다. 저녁 빛 속에서, 풀잎 위에서, 천천히 내딛는 한 걸음 속에서도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속도를 늦추어 그 임재를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저녁, 당신도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시기를. 그 하늘이 지금 당신을 향해 무엇을 선포하고 있는지, 천천히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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