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어느 저녁, 베란다에 나가 화분 앞에 서 있었다. 종일 분주했던 마음이 베란다 문을 한 발 넘는 순간 한 박자 느려진다. 작은 사각의 베란다, 오래된 화분 일곱 개, 그리고 햇살이 한 뼘쯤 더 머무르는 자리. 그것이 우리 집에서 가장 거룩한 자리다. 화분 옆 흙 위에 잎새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마른 잎이었다. 잎맥이 다 보이는, 한때 푸르렀을 한 장의 손바닥이었다.
그 잎을 손에 얹었다. 가벼웠다. 어느 새벽 내가 모르는 사이에 가지에서 떨어져, 흙 위에 누워 며칠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나는 며칠을 분주히 지냈다. 화분이 미안했다. 더 정확히는, 잎새 한 장 떨어진 줄도 몰랐던 내 마음이 미안했다. 작은 식물 한 그루도 매일을 살아 내고 있는데, 나는 그 매일을 못 본 채 지나친 셈이었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화분에는 새 잎도 두 장이 돋아 있었다. 잎 한 장이 떨어진 자리에서 다른 잎 두 장이 솟고 있는 작은 자리. 비움과 채움이 같은 가지 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한쪽이 마르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푸름이 자란다. 한 호흡 안에 죽음과 생명이 함께 있다. 화분은 그것을 말없이 가르치고 있었다. 잎새 한 장 떨어졌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고, 잎 두 장 새로 돋았다고 자랑할 일도 아니다. 떨어지는 것과 자라나는 것이 한 그루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 그것이 살아 있다는 일의 정직한 결이다.
물을 주려고 흙 위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았다. 표면은 말라 있었지만, 한 마디 깊이의 흙은 조금 촉촉했다. 좋은 물 줌은 표면을 보고 결정하지 않는다. 표면이 말라 보여도 속이 젖어 있으면 더 기다려야 하고, 표면이 젖어 있어도 속이 마르면 물을 주어야 한다. 사람도 그렇다. 표정의 표면만 보고 마음의 흙을 짐작하는 일은 자주 잘못된다. 표정이 환해 보여도 속이 마른 사람이 있고, 표정이 굳어 있어도 속이 푹 젖은 사람이 있다. 깊이의 결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랑이 필요하다.
여호와는 너의 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 시편 121:8
잎이 떨어지는 일에도 지키심이 있다. 잎이 떨어져야 가지 안의 영양이 새 잎에게 흐른다. 잎이 한 번도 떨어지지 않는 가지에는 새 잎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떠나는 사람, 닫히는 문, 끝나는 계절. 그 모두에 지키심이 있다. 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함께 지키시는 분의 손길은, 사실 들어오는 자리뿐 아니라 가는 자리에 더 오래 머무른다. 떠나는 자리에 그분이 손을 얹어 두지 않으셨다면, 새 잎이 그 자리에 들어설 용기를 어디서 얻겠는가.

물을 천천히 주었다. 흙이 물을 받아들이는 소리를 오래 듣고 싶었다. 좋은 기도는 그런 소리를 닮았다. 큰 외침이 아니라, 마른 흙이 물을 받는 소리. 누구도 듣지 못해도 흙은 그 소리를 안다.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 마른 자리에 한 줄의 말씀이 천천히 스며들 때, 그 소리도 누구도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마른 자리는 안다. 그 자리에서 한 잎이 돋는다.
옆 화분에는 작은 새싹이 한 줄로 올라와 있었다. 누가 심은 적이 없는데, 어느 봄날 어디선가 씨앗 한 알이 날아와 자리를 잡았던 모양이다. 우리의 마음에도 그렇게 누가 심지 않은 씨앗이 자라곤 한다. 누군가의 한마디, 어떤 책의 한 줄, 오래된 찬송의 한 소절.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자리에 그것들이 떨어졌다가, 어느 봄 화분 한 자리에서 새싹이 되어 올라온다. 신앙은 자주 그렇게 자란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시작되어, 어느 오월의 저녁에 우리 앞에 새 잎으로 서 있다.
해가 베란다 끝자락까지 내려와 있었다. 화분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마른 잎 한 장을 손에 다시 얹었다. 이것을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한 계절을 보낸 잎이었다. 책갈피처럼 책 사이에 끼워 두기로 했다. ‘오늘 떨어진 잎 한 장’. 책 사이에 끼우는 그 손짓 자체가 작은 감사가 되었다. 잎이 떨어졌으나, 그 떨어짐이 헛되지 않게 한 자리에 모셔 두는 일. 우리의 슬픔도 그렇게 어딘가에 모셔 두어야 한다. 버리지도 못하고 안고 살지도 못하는 슬픔에게 작은 책갈피의 자리를 내어 주는 일.

베란다 문을 닫고 들어오면서, 화분에게 작은 인사를 했다. ‘잘 자라 줘서 고맙다.’ 들리지 않을 인사였지만, 마음에는 들렸다. 다음 날 새벽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었을 때, 또 한 장이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또 두 장의 새 잎이 돋아 있을지도 모른다. 떨어지는 것과 자라는 것이 한 그루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자리. 그 자리에 머무는 한 분의 손길을, 오월의 저녁이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었다.
오늘 일과의 마지막을 그렇게 마쳤다. 큰 결심은 없었지만, 작은 결의가 하나 생겼다. 내일 아침에는 한 번 더 베란다 문을 열어 보겠다는 것. 한 번 더 흙을 짚어 보겠다는 것. 한 번 더, 떨어진 잎이 있다면 손에 얹어 보겠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작은 감사가 시작된다. 시편 121편의 그분이 오월의 베란다에도 함께 계신다. 가는 잎과 들어오는 잎을 함께 지키시는 그분이.
밤이 와서 베란다의 불을 끄고 들어왔다. 식탁 위에 책 한 권을 펴 두고, 그 사이에 마른 잎새를 끼웠다. 책을 덮자 잎이 가지 사이에 든 잎새처럼 책장 안에서 다시 한 자리를 얻었다. 책장이 나무가 되었고, 잎은 다시 한 그루의 식구가 되었다. 작은 의식이었지만 마음 한쪽에 길게 남는 의식이었다. 책상 위의 등을 끄기 전, 다시 한 줄을 적어 두었다. ‘오늘은 떨어진 잎 한 장을 모셔 두었다.’ 그 짧은 문장이 오늘 하루의 가장 정직한 요약이었다.
이튿날 새벽, 다시 베란다 문을 열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잎새 한 장이 또 떨어져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작은 잎이었다. 흙을 짚었다. 어제보다 더 촉촉했다. 좋은 물 줌은 같은 날 두 번 주는 것이 아니라, 어제 준 물이 흙 깊이까지 천천히 닿는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다. 신앙도 그렇다. 한 번 들은 말씀이 마음의 깊이까지 천천히 닿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그 다음 한 줄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조급한 마음으로 매일 같은 자리에 다른 말씀을 들이부으면, 흙은 결국 짓물러 버린다.
새벽의 베란다는 더 환했다. 새 잎 두 장이 어제보다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떨어지는 자리와 자라는 자리가 같은 줄기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다시 위로가 되었다. 우리 곁에서 누군가 떠난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작은 잎을 내미는 일. 우리의 마음 한 자리에서 한 계절이 마르는 동안, 다른 한 자리에서 새로운 한 줄이 자라고 있다는 일. 그 모든 일을 함께 보아 주시는 한 분의 손길이, 오월의 베란다에 오늘도 머무신다는 사실. 오늘 하루를 그 사실 위에 다시 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