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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화요일 오후, 동네 작은 도서관 창가에서 — 펼쳐 둔 책장 위로 햇살이 머무는 시간

sangkist

오월의 화요일 오후 두 시. 약속 사이의 짧은 틈을 비집고 동네 어귀의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횡단보도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서서, 햇살을 정수리에 받으며 천천히 길을 건넜다. 도서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니 짙은 종이 냄새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신을 벗듯 발걸음을 낮추게 되는 자리. 조명을 켜지 않아도 환한 오월의 오후가, 책장 사이사이로 길게 누워 있었다.

오월 오후 도서관 창가에 비치는 햇살과 펼쳐진 책

도서관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노트북 앞에 머리를 떨군 채 잠시 졸고 있었고, 또 어떤 어머니는 어린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작은 목소리로 읽어 주고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두꺼운 책 한 권을 펼쳤다. 글자 위로 햇살이 천천히 옮겨 갔다. 활자가 마치 잎새처럼 일렁였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시편 119:105

빛은 시끄럽지 않다. 빛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한 권의 책장을, 한 사람의 얼굴을, 한 줄의 활자를 비춘다. 도서관의 오후가 그랬다. 누구의 시선을 끌지도 않고, 무엇을 강요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머무르는 자리마다 정직하게 환했다. 신앙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소리로 자기를 증언하는 신앙은 어딘가 피곤하지만, 자기를 비우면서 곁의 자리를 환하게 하는 신앙은 오래 머물러도 무겁지 않다. 오월의 햇살이 그러하듯이.

책장의 한 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같은 표지의 책이라도 어떤 책은 손때가 많고 어떤 책은 표지가 빳빳하다. 자주 펼친 책에는 사람의 손길이 남는다. 우리 마음의 책도 그렇다. 자주 펼쳐 보는 페이지는 손때로 부드러워지고, 좀처럼 펼치지 않는 페이지는 빳빳한 채 닫혀 있다. 신앙의 페이지 중에 우리가 가장 자주 펼치는 자리는 어디인가. 위로의 시편인가, 감사의 절기인가, 아니면 회개의 골방인가. 오월 오후의 도서관에서, 나는 잠시 그것을 생각했다.

책장 사이로 길게 누운 오월의 햇살

도서관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사실 책 사이 좁은 통로다. 거기서는 사람이 서로 비켜 가야 한다. 어깨를 잠시 옆으로 틀어야 다른 사람이 지나갈 수 있다. 그 좁은 통로의 예의가 오늘 사회에서 가장 모자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비틀어 자리를 내어 주는 일에 인색해졌다. 큰 일터에서는 그것을 ‘배려’라고 부르지만, 책장 사이에서는 그것을 그저 ‘당연’이라고 부른다. 신앙 공동체도 그런 좁은 통로가 되어야 한다. 가르치기 전에 비켜 주고, 비판하기 전에 자리를 내어 주는 공동체. 큰 광장보다 좁은 통로가 더 거룩할 때가 있다.

한 시간쯤 머물렀다. 같은 자리에 햇살이 두 번을 옮겨 가고, 펼친 페이지의 활자가 두 번 환해졌다. 노트북에 머리를 떨궜던 사람이 깨어 머리를 다시 모니터에 들이밀었고, 그림책을 읽던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책장 사이로 사라졌다. 도서관은 그렇게 오후의 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 책을 다시 책장에 꽂으며 손가락 끝에 남은 종이의 결을 느꼈다. 손때 같은, 햇살 같은, 기도 같은 결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오월의 햇살이 한층 누그러져 있었다. 길가 회화나무 잎이 작게 흔들렸다. 큰일을 한 것도 아니고 무엇을 결심한 것도 아닌데, 마음 한 칸이 정리된 듯 정갈했다. 등이라는 말과 빛이라는 말이 한 번 더 마음을 두드렸다. 우리의 발 앞에 그 등이 늘 있고, 우리의 길에 그 빛이 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 다시 기억해도 오월의 오후는 충분히 잘 보낸 오후라는 것을, 작은 도서관의 창가 자리가 가르쳐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줄을 메모해 두었다. ‘오늘은 빛 아래 머문 시간이 길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오월 화요일 오후를 그대로 옮긴 문장이었다. 다음 약속까지의 짧은 틈에서 발견한 한 칸의 거룩함. 잠시였지만, 충분했다. 도서관 문을 닫고 나오는 마지막 순간, 햇살이 다시 한 번 등을 토닥였다. 빛이 빛으로 길을 비추던 오월의 오후였다.

그 작은 도서관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의 배열이었다. 분류 기호가 매겨져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칸은 사서가 손글씨로 ‘마음이 흔들릴 때’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책’ 같은 작은 표지를 붙여 두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사정을 헤아려,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 자리부터 먼저 살펴 둔 흔적이었다. 신앙 공동체의 책상도 그렇게 꾸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진 자원을 사람의 사정 위에 다시 한 번 분류해 놓는 일. 형편이 무거운 사람에게는 가벼운 책 한 권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따뜻한 한 줄을 먼저 건네는 일. 그 자체로 이미 작은 목회가 된다.

책 한 권을 더 빌렸다. 표지가 손때로 부드러워진 시집이었다. 누군가 같은 자리, 같은 페이지를 오래 펼쳐 두었던 흔적이 손가락 끝으로 전해졌다. 같은 시를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빛 아래서, 한 번은 그 빛이 살짝 옮겨 간 자리에서. 같은 시가 두 번 다르게 읽혔다. 말씀도 그렇다. 같은 구절도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읽으면 새 결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된 책을 매일 새로 펼친다. 매일 같은 페이지에 새 햇살이 든다.

도서관을 나서기 전, 잠시 어린이 코너에 들렀다.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작은 그림 카드가 책장 위에 놓여 있었다. ‘오늘 도서관에서 가장 좋았던 책.’ 삐뚤삐뚤한 글씨 옆에 손가락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표지가 다 닳은 한 권의 동화책이 있었다. 가장 많이 펼쳐졌고, 가장 많이 사랑받은 자리. 누군가는 그 표지를 만지며 처음으로 글자를 익혔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페이지 위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무릎을 빌렸을 것이다. 그 작은 책 한 권에 얼마나 많은 오월 오후가 머물렀을지를 생각하다가, 코끝이 잠시 매워졌다.

펼쳐진 책 위로 비치는 오월의 햇살

도서관 한쪽 벽에는 작은 게시판이 있었다. 거기에는 책을 빌려 간 사람들이 짧게 남겨 둔 메모가 압정으로 꽂혀 있었다. ‘딸이 처음 혼자 읽은 책입니다.’ ‘퇴근길 마음이 무거운 분께 권합니다.’ ‘다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익명의 손글씨들이 마치 작은 기도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무거운 하루를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글, 누군가의 작은 기쁨을 같이 기뻐해 주는 글. 책 한 권의 뒤에 머무는 사람의 마음들이 그 작은 게시판에 함께 머물러 있었다. 신앙 공동체가 무엇인가를 새삼 생각했다. 책처럼, 자기 자리를 비워 두면서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 두는 자리. 그 자리에 햇살이 들면, 거기는 곧 작은 예배당이 된다.

도서관을 나와 골목 모퉁이를 돌 때, 누군가 들고 가던 책의 표지가 잠깐 눈에 들어왔다. 표지에는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오월의 오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일도 결국 ‘기다림’의 결을 닮은 일인지 모른다. 약속과 약속 사이의 짧은 틈, 그 틈에서 빛 한 줄을 발견하는 능력. 그 능력은 큰 일을 해낼 때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도서관 창가에 잠시 머무를 줄 아는 사람에게 천천히 자라난다는 것을, 오늘 오후의 빛이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