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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는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하나니 — 머무름의 신학


포도원을 걷다 보면 한 가지 사실에 눈이 갑니다. 가장 탐스러운 열매는 언제나 줄기에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가지에서 맺힌다는 것입니다. 줄기에서 멀어질수록 잎은 무성해 보여도 열매는 초라해집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우리를 가지에 비유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이 ‘붙어 있음’에 있음을 이보다 선명하게 보여 주는 그림은 드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요한복음 15:4

이 말씀에서 가장 마음을 찌르는 단어는 ‘스스로’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아무리 건강해 보이는 가지라도, 줄기에서 잘려 나가는 순간 그 안의 생명은 서서히 말라 갑니다. 잘린 직후에는 여전히 푸릇하고 잎도 달려 있어 살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남아 있는 수분일 뿐, 이미 생명의 공급은 끊어진 상태입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활동적이고 분주하지만, 정작 생명의 근원에서는 조금씩 멀어져 가는 시기 말입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빛 포도나무 잎사귀

머무름은 게으름이 아니다

‘거하라’는 명령은 언뜻 수동적으로 들립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머물러 있으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머무름은 결코 게으름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대에 가장 어려운 훈련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갑니다. 성과를 내야 하고, 증명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그냥 붙어 있으라’는 말씀은 낯설고 때로는 불안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열매는 가지의 노력으로 맺히지 않습니다. 가지가 하는 일은 오직 하나, 줄기에 붙어 수액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생명이 알아서 합니다. 봄이 되면 싹이 트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지며, 가을이면 열매가 익습니다. 가지는 애쓰지 않습니다. 다만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열매를,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이 맺으십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 시편 1:3

시편 기자가 그린 복 있는 사람의 그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물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다만 시냇가에 심겨 있을 뿐입니다. 뿌리를 물가에 내리고 있으니, 가뭄이 와도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심겨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가, 우리가 어떤 계절을 견뎌 낼 수 있는지를 결정합니다.

푸른 하늘 아래 익어가는 포도송이

가지치기의 아픔에 대하여

포도나무 비유에는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대목이 있습니다.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려고’ 깨끗하게 손질된다는 말씀입니다. 원문에서 ‘깨끗하게 하다’와 ‘가지를 치다’는 같은 뿌리의 단어입니다. 즉, 정결하게 되는 과정은 곧 잘려 나가는 과정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만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잘 자라는 가지도 더 나은 열매를 위해 다듬어집니다.

그래서 삶에 찾아오는 상실과 아픔이 모두 심판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 그것은 더 깊은 열매를 위한 손질입니다. 농부는 아무 가지나 자르지 않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 낼지, 그 손끝에는 오랜 지혜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다듬으시는 손길도 그러합니다. 아플 수는 있어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질문은 ‘나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에 붙어 있는가’일지 모릅니다. 분주함이 곧 열매는 아닙니다. 줄기에서 멀어진 채 무성하기만 한 가지가 되기보다, 조용히 줄기에 붙어 철을 따라 열매 맺는 가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머무르십시오. 서두르지 말고, 증명하려 애쓰지 말고, 다만 생명의 근원에 깊이 붙어 계십시오. 그 자리에서 맺히는 열매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며, 그렇기에 마르지 않습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붙어 있는 가지는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이 포도나무 되신 분의 약속입니다.

연결의 통로를 점검하라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도, 그 연결 부위가 병들거나 막히면 수액은 흐르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붙어 있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단절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런 ‘막힌 통로’가 생깁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성경을 펴 놓아도 눈만 글자를 훑을 뿐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 시기 말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활동이 아니라, 막힌 통로를 뚫는 일입니다.

그 통로는 대개 아주 단순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용히 드리는 기도, 천천히 곱씹는 말씀, 정직한 자기 성찰, 그리고 침묵. 화려하지 않지만 이 통로들이 살아 있을 때, 생명은 다시 가지 끝까지 흘러갑니다. 예수께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덧붙이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분과의 연결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유지됩니다.

열매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 목적은 가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언제나 다른 이의 목마름과 허기를 위해 존재합니다. 포도는 지나가는 나그네의 갈증을 풀고, 이웃의 식탁을 채우며, 기쁨의 잔을 채웁니다. 우리 삶에 맺히는 영적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나 혼자 간직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라고 맺힌 것입니다.

그러니 붙어 있음의 신학은 결국 사랑의 신학으로 이어집니다. 근원에 깊이 붙어 있을수록, 우리는 더 넉넉히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도 그 자리에 머무시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생명의 줄기에 조용히 기대어 계십시오. 때가 되면, 당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열매는 맺혀 있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신앙에서 가장 많이 지치는 순간은 열매를 스스로 만들어 내려 할 때였습니다. 더 노력하고, 더 애쓰고, 더 증명하려다 결국 메마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 비유는 우리를 그 무거운 짐에서 놓아 줍니다. 열매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줄기의 선물입니다. 우리의 몫은 오직 붙어 있는 것, 날마다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뿐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 단순하고도 깊은 한 가지에 마음을 두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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