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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를 들으며 — 마른 땅을 적시는 은혜에 관하여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깬 것이 아니라, 그 소리가 너무 고요해서 깨어났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장마의 비는 소나기처럼 요란하지 않다. 그저 오래, 끈기 있게, 같은 자리에 머물며 땅을 적신다. 나는 불을 켜지 않은 채 한참 동안 그 소리에 귀를 맡겼다. 어둠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눈으로 보는 비와 다르다. 보이지 않기에 더 깊이 스며든다.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방울, 장마철 새벽의 고요한 풍경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방울, 장마철 새벽의 고요한 풍경

지난 봄, 화단의 흙은 메말라 있었다. 손가락으로 눌러 보면 푸석하게 부서졌고, 물을 부어도 표면만 적실 뿐 속까지 닿지 못했다. 마른 땅은 물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거부가 아니라 잊어버림이었다. 너무 오래 메말라 있던 흙은 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 흙 앞에서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내 안에도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은혜가 메마른 자리에 임할 때, 처음에는 잘 스며들지 않는다. 너무 오래 닫혀 있던 마음은 부드러운 것을 오히려 낯설어한다. 위로의 말이 겉돌고, 따뜻한 시선이 부담스럽고, 사랑이 다가오면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그러나 장마의 비처럼, 은혜는 서두르지 않는다. 한 번에 적시려 하지 않고, 오래 머물며 천천히 스며든다. 거절당해도 다시 내리고, 표면에서 흘러내려도 또 내린다. 그 끈질긴 부드러움 앞에서 결국 마른 땅도 자신을 연다.

늦은 비처럼 어김없이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모습을 비에 빗대어 노래했다. 그것도 거센 비가 아니라, 땅을 적시는 늦은 비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 호세아 6:3

이 구절에서 나를 붙드는 단어는 어김없이다. 새벽은 아무리 어두운 밤이 길어도 어김없이 온다. 우리가 잠들어 있든 깨어 있든,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빛은 자기 시간을 지킨다. 은혜도 그렇다.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밤에도 은혜는 자기 길을 걸어 내게로 오고 있었다. 빗소리에 깨어난 그 새벽처럼, 은혜는 종종 우리가 미처 청하기도 전에 이미 도착해 있다.

비 내리는 숲, 젖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물
비 내리는 숲, 젖은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물

늦은 비라는 표현도 마음에 남는다. 팔레스타인의 농부들에게 늦은 비는 추수 직전, 곡식이 마지막으로 영글기 위해 꼭 필요한 봄비였다. 이른 비가 씨앗을 틔우는 비라면, 늦은 비는 열매를 완성하는 비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는 시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에도 있다. 믿음의 첫 발을 뗄 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지치고 시들어 더는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그 마지막 순간에도 임한다. 우리의 한 해를 완성하시는 분이 계신다.

나는 마른 화단을 떠올리며, 그 메마름이 끝이 아니었음을 기억한다. 며칠의 장마가 지나자 흙은 다시 물을 머금는 법을 기억해 냈다. 표면만 적시던 물이 어느새 속까지 스며들어, 손가락으로 누르면 촉촉하게 뭉쳐졌다. 잊었던 것을 다시 배우는 데에는 단 한 번의 큰비가 아니라, 여러 날의 끈기 있는 비가 필요했다.

비를 기다리는 믿음

성경에는 비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엘리야는 삼 년 반의 가뭄 끝에 갈멜산에 올라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기도했다. 그리고 종을 보내어 바다 쪽 하늘을 살피게 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여섯 번째도 하늘은 맑기만 했다. 그러나 엘리야는 멈추지 않았다. 일곱 번째에 이르러서야 종은 사람의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 떠오른다고 전했다. 그 작은 구름이 곧 온 하늘을 덮었고, 마침내 큰 비가 쏟아졌다.

나는 그 장면에서 기다림의 길이를 생각한다. 여섯 번의 빈 하늘을 견딘 사람만이 일곱 번째 구름을 본다. 응답이 더디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종종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사이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손바닥만 한 구름은 늘 큰 비보다 먼저 온다. 그러나 그 작은 신호를 알아보려면, 빈 하늘을 여러 번 올려다본 마음의 끈기가 필요하다.

장마가 길어지면 사람들은 비를 원망하기도 한다. 햇볕이 그립고, 빨래가 마르지 않고, 신발이 젖는 날들이 이어지면 비는 성가신 손님이 된다. 그러나 농부는 그 비의 의미를 안다. 지금 이 끈질긴 비가 가을의 곡식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우리 삶에 길게 이어지는 어떤 계절도 그러할 것이다. 당장은 답답하고 지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영글고 있다.

창밖을 다시 본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작은 웅덩이에 동그란 파문을 그린다. 하나가 떨어지고, 또 하나가 떨어지고, 파문은 겹치고 번진다. 은혜도 그렇게 겹치며 번지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작은 위로 하나가 내일의 위로와 겹치고, 모레의 위로와 번지며, 어느새 마음 전체를 적신다. 한 방울로는 보이지 않던 변화가, 겹친 파문 속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스며드는 시간을 견디며

우리의 회복도 그와 같지 않을까. 단번에 마음이 풀리고 상처가 아무는 일은 드물다. 대개는 오래, 천천히, 여러 번에 걸쳐 스며든다. 그래서 은혜를 기다리는 일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늘 적셔진 만큼만 받아들이고, 내일 다시 내릴 비를 신뢰하며 잠드는 것. 마른 땅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믿음은, 비가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 일이다.

비 갠 뒤 안개가 걷히는 잔잔한 호수와 산
비 갠 뒤 안개가 걷히는 잔잔한 호수와 산

비는 정오가 되어서야 그쳤다. 창을 여니 공기가 한결 부드러웠고, 화단의 흙은 짙은 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어제까지 푸석하던 자리에 작은 풀들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밤사이 누구도 보지 못한 곳에서, 비는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낸 것이다. 나는 그 젖은 흙 냄새를 한참 들이마셨다. 비로소 살아 있는 흙의 냄새였다.

어쩌면 오늘 당신의 마음에도 오래 메마른 자리가 있을지 모른다. 물을 부어도 겉돌기만 하던 그 자리. 그러나 기억하자. 은혜는 새벽처럼 어김없고, 늦은 비처럼 끈질기다. 한 번 스미지 못했다고 돌아서지 않으며, 거절당했다고 그치지 않는다. 오늘도 같은 자리에 조용히 내리고 있다. 그 비가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 것, 그것이 마른 땅에게 허락된 가장 깊은 평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