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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28절 강해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약속이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이유


로마서 8장은 바울 신학의 정점이라고 불린다. 1장에서 시작된 죄와 구원의 논증이 8장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그 장의 클라이맥스에 우리가 잘 아는 한 구절이 있다. 교회에서 수도 없이 인용되고, 설교에서 반복적으로 들어왔으며,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위로로 건네지던 그 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런데 이 말씀이 때로는 너무 쉽게 쓰인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이 구절을 가져다 붙이는 방식으로. 마치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좋게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낙관론적 위로처럼. 그 의도는 선하지만, 본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28

펼쳐진 성경, 말씀 묵상

먼저 “모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바울이 이 구절 앞에서 이야기한 맥락을 보면, 그것은 결코 장밋빛 상황들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8장 17절은 “영광을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는다”고 말한다. 8장 18절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8장 35절에서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을 나열한다. 즉, “모든 것”에는 좋은 것만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포함된다.

“합력하여”라는 단어도 중요하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단어는 ‘쉬네르게오(συνεργέω)’인데, 여기서 영어의 ‘synergy(시너지)’가 나온다. 단순히 ‘더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함께 작용하여 더 큰 결과를 낸다’는 의미다. 고통스러운 사건들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엮이면서, 하나님의 손 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선을 이루어간다는 것이다.

“선을 이룬다”는 표현에서 “선”은 헬라어로 ‘아가톤(ἀγαθόν)’이다. 이것은 단순히 기분 좋은 결과가 아니라, 진정으로 좋은 것,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29절이 그것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즉, ‘선’이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다. 고통이 우리를 더 그리스도를 닮게 만들 때, 그것이 ‘선’을 이루는 것이다.

새벽 산의 여명, 하나님의 창조

이 강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실천적 통찰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다. 모든 것을 지금 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신다. 둘째, 고통은 신앙의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영적 성숙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셋째, 이 약속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전제된 약속이다.

2026년 오늘, 우리는 전쟁과 경제 불안, 기후 위기와 사회 분열 속에 살고 있다. 개인의 삶에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찾아온다. 로마서 8장 28절은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일하고 계신다. 지금 당장 그것이 어떻게 선을 이루는지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멈추지 않는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낙관론이 아닌 소망을 준다. 낙관론은 상황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소망은 상황이 어떻든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다. 바울이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낙관론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망 때문이었다. 우리도 그 소망을 붙들 수 있다. 오늘도 모든 것이 합력하고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로마서 8장 28절이 주는 소망은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한다. 인류 역사에서 악이 선을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것은 실패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죽음을 통해 인류의 가장 큰 선 — 구원 — 을 이루셨다. 가장 큰 고통이 가장 큰 은혜의 통로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약속의 가장 큰 증거다.

이 말씀을 붙드는 것이 때로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합력하여”라는 단어는 과정을 암시한다. 그 과정이 얼마나 걸릴지 우리는 모른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것과 다르다.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시간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다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기다림의 훈련을 받는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페이스를 신뢰하는 것. 당장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 이것이 신앙의 성숙이다. 어린아이는 모든 것을 지금 당장 원한다. 하지만 어른은 좋은 것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 기다릴 수 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우리를 신앙의 어른으로 부른다.

오늘 당신의 삶에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이 약속을 붙들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 “모든 것”에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그것도 포함된다. 하나님은 그 조각을 버리지 않으신다. 그것도 더 큰 그림의 일부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완성을 향해 일하고 계신다.

로마서 8장 28절의 적용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도 영향을 준다. 이 말씀을 정말로 믿는다면, 우리의 기도가 달라진다. “하나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세요”에서 “하나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이것은 수동적인 신앙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더 적극적인 신앙이다.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그 계획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결국 로마서 8장 28절은 소망의 말씀이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 이해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응답이 늦어지는 기도 앞에서 — 이 말씀은 닻처럼 우리를 붙든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러나 반드시 선을 향해. 이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오늘도 전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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