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생성형 AI가 답을 너무 빨리 내미는 시대에 — 그리스도인이 다시 펴 읽는 잠언 3장 5절의 분별력


새벽 다섯 시 반, 작업실의 좁은 책상 앞에 앉아 작은 모니터를 켭니다. 한 사람의 신앙인이자 동시에 한 사람의 인공지능 연구자로서, 매일 새벽 가장 먼저 마주하는 화면은 늘 같은 풍경입니다. 깜빡이는 커서 한 점, 그 옆에 띄워 둔 한 권의 성경 앱, 그리고 비어 있는 챗봇의 입력창.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올라간 그 순간, 한 번도 같은 자세가 되지 않는 마음의 결을 살피며 첫 줄을 적기 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디지털 빛이 가만히 내려앉은 새벽 책상 위의 작은 풍경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장 5~6절

1. 빠른 답이 좋은 답인가 — 생성형 AI 시대의 첫 분별

생성형 AI는 우리에게 다섯 줄짜리 깔끔한 답을 일 초 안에 내밉니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그 답은 거의 항상 그 자리에서 가지런히 정돈된 단락으로 도착합니다. 답이 빠르다는 사실은 익숙해질수록 한 가지 위험을 가져옵니다. 빠른 답을 좋은 답으로, 가지런한 답을 옳은 답으로 슬쩍 등치시키게 되는 위험입니다. 잠언 3장 5절이 가르치는 첫 분별은 바로 이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명철’로 옮겨진 히브리어 단어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모은 분석의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정보가 풍성한 시대에 우리가 의지하기 쉬운 것이 바로 그 분석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결과물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좋은 분석을 막는 말씀이 아닙니다. 좋은 분석이 그 끝에서 ‘나의 명철’로 굳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단정한 권면입니다. AI 시대의 분별력은 답의 속도가 아니라 답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결정됩니다.

2. 빌립보서 4장 8절의 필터 — 무엇이든 참되며…

AI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결과물에는 한 가지 공통 속성이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그럴듯하다는 속성입니다. 그럴듯함은 사실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책상 위에 작은 필터 한 장을 미리 놓아 두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8절의 필터입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 빌립보서 4장 8절

여덟 가지 항목을 그대로 AI 결과물 앞에 둡니다. 참된가, 경건한가, 옳은가, 정결한가, 사랑할 만한가, 칭찬할 만한가, 덕이 있는가, 기림이 있는가. 한 번에 여덟 가지를 다 적용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선 첫 두 가지 — 참됨과 경건함 — 만 적용해도 절반 이상의 AI 결과물 앞에서 우리의 손이 한 박자 늦어집니다. 그 한 박자 늦음이 디지털 시대의 분별의 시작입니다.

3. AI 사용 윤리의 네 가지 기준 — 그리스도인의 작은 체크리스트

안개 낀 새벽 산길 위로 길게 이어진 한 줄의 오솔길

매일 새벽 책상 위에 적어 두고 자주 들여다보는 네 줄의 체크리스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생성형 AI를 사용할 때 마음 한 켠에 두는 작은 자기 점검입니다.

첫째, 정직. AI가 만든 문장을 내 것처럼 옮기지 않습니다. 인용의 정직함은 인격의 정직함입니다. 자료 조사를 도구의 도움으로 빠르게 했더라도, 그 도구의 자리는 그대로 밝힙니다. 둘째, 사람의 존엄. AI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해서는 안 되는 자리들이 있습니다. 위로의 자리, 결정의 자리, 사랑의 자리. 그 자리들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도구가 너무 편하다는 이유로 사람의 자리까지 도구에게 넘기지 않습니다.

셋째, 시간의 청지기. AI는 시간을 늘려 주는 도구이지, 시간을 채워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줄어든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 그 질문이 빠지면, 줄어든 시간만큼 분주함이 새로 채워질 뿐입니다. 신앙의 자리에서 도구의 효율은 늘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라는 목적의 자리와 함께 묻습니다. 넷째, 영적 절제. 화면 앞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책상 앞의 묵상 시간은 짧아집니다. 두 시간 사이의 균형을 매일 새벽 단정히 정돈합니다. 도구의 효율이 신앙의 깊이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매일 다시 확인합니다.

4. 디지털 광야의 나침반 — 잠언 3장 6절의 두 번째 줄

본문 6절은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이어집니다. ‘범사에’는 한국어로는 평범한 부사 같지만, 원문은 ‘내 인생의 모든 길에서’라는 강한 표현입니다. 화면 앞에 앉은 새벽의 한 시간도, 회의실에 들어선 오후의 두 시간도, 코드를 점검하는 깊은 밤의 한 시간도 모두 ‘범사’에 포함됩니다. AI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도구를 쓰는 자리 한복판에서, 그 자리를 그분께 인정하는 자세를 빼놓지 않습니다.

디지털 광야라는 표현이 가끔 마음에 닿습니다. 광야는 풍요로움이 부족한 자리가 아닙니다. 광야는 길이 분명하지 않은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도 그렇습니다. 정보의 풍요는 차고 넘치는데, 길은 매일 새로 만들어지고 매일 다시 사라집니다. 그 광야에서 우리의 나침반은 잠언 3장 6절 한 줄로 충분합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러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도구는 도구의 자리에, 분별은 분별의 자리에, 인도하심은 인도하시는 분의 자리에 그대로 두는 자세입니다.

5. 다음에 챗봇을 켜기 전 — 삼 초의 침묵

모든 글의 끝에 같은 적용 한 줄을 남깁니다. 다음에 챗봇 입력창 앞에 손이 닿기 전, 삼 초의 침묵을 먼저 놓아 봅니다. 무엇을 묻고 싶은가, 그 질문은 정말 필요한 질문인가, 그 답을 받았을 때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세 가지 짧은 자기 질문이 삼 초 안에 머리 안에서 한 바퀴 돕니다. 그 삼 초가, 우리의 손가락을 한 박자 정돈해 줍니다. AI 시대의 신앙은 도구를 거부하는 자리가 아니라 도구를 단정히 다루는 자리에서 만들어집니다.

새벽 모니터의 빛이 조금씩 옅어지고 창 밖이 환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을 한 줄 더 옮겨 적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도구는 우리의 명철을 늘려 줄 수 있지만, 신앙의 신뢰는 늘려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모니터를 켜기 전에 성경을 먼저 펴 듭니다. 디지털 광야 한복판의 작은 책상 위에서 그렇게 한 시대의 분별이 다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