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쯤이었다. 침실 천장에 어렴풋이 비치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고 있다가, 베갯잇이 한쪽이 살짝 젖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자기 전부터 마음 어딘가가 무거웠고,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깨어 보니 베갯잇 위에 작은 자국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그 자국은 작았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쩌면 동전 한 닢도 안 되는 크기였다. 그런데 그 작은 자국 위에서 한참 동안 시선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방 안, 천장의 옅은 불빛 아래에서, 그 작은 자국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보였다. 작은 것일수록, 때로는 더 또렷하게 보이는 시간이 있다.

요즘 들어, 잠 못 이루는 밤이 잦아졌다. 큰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루의 잔잔한 무게들이 며칠씩 모이면, 어느 밤엔가 한꺼번에 베갯잇 위로 흘러내리는 듯한 그런 시간이 있다.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말할 만한 일도 아니고, 사진을 찍어 어딘가에 올릴 만한 일도 아닌, 그러나 분명히 내 안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게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베갯잇의 작은 자국을 손끝으로 한 번 가만히 짚어 보았다. 차가웠다. 시간이 좀 지났다는 뜻이었다. 그 자국 위로 손을 얹은 채 한참을 머물렀다. 무언가를 닦아 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잠시, 그 자국 위에 누군가 함께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 시편 56편 8절
이 구절을 처음 들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 어느 수요예배 자리에서였다. 그때는 그저 아름다운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다. 눈물을 병에 담으신다는 그 비유가 시적으로 느껴졌을 뿐,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베갯잇 위 작은 자국을 가만히 짚어 보는 이 밤에는, 그 구절이 더 이상 비유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병에 담는다는 것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이었다. 베갯잇 위에 흘러내린 작은 자국 하나도, 누군가의 시선 안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흘렸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흘렸기 때문에 어딘가에 담겨 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새벽 두 시의 방 안을, 천천히 다른 색깔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창밖에서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베란다 창에 빗방울이 하나, 둘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는 약했고, 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마치 아무도 깨우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 빗소리는 침실의 적막 안으로 슬며시 스며들어왔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창에 닿는 소리는, 마치 어떤 분의 발걸음 소리처럼 들렸다. 큰 소리로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작은 자국 하나에도 발걸음을 옮겨 오시는 분.
나는 침대 옆 작은 등을 켜고, 책상 위에 두었던 손수건 한 장을 가져왔다. 그 자국을 닦아 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 위에 손수건을 살짝 올려 두고, 자국이 마르는 동안 함께 머무르고 싶었다. 어떤 자국은 빨리 지워 버리는 것보다, 한동안 그 자리에 두는 편이 더 정직한 일일 수도 있다.
요즘 자주 떠오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우리는 너무 빨리 마음을 닦아 내려고 한다. 흘러내린 것을 곧장 지워야 한다고 배운 사람들처럼, 자국이 보이자마자 손바닥으로 쓸어 버린다. 그러나 어떤 자국들은, 그저 잠시 머물러 두는 것만으로도 천천히 마르고, 마르는 동안 어떤 분이 그 위를 함께 지나가시는 일이 일어난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베갯잇 위의 자국 옆에 얼굴을 살짝 비스듬히 두었다. 그 자국을 마주하지 않고, 그저 그 옆에 함께 있는 자세였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한 마디가 떠올랐다. “혼자가 아니다.”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었고, 누가 가르쳐 준 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한 가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내가 흘린 작은 자국 하나도, 누군가에 의해 계수되고 있다는 사실. 시편 기자가 말한 “유리함”이라는 단어가, 새벽 두 시의 베갯잇 위에서 천천히 풀어졌다. 떠도는 마음, 자리를 잡지 못한 마음, 그러나 한 분의 시야 안에서는 매 순간 정확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새벽 두 시는 도무지 누구에게도 보내기 어려운 시간이다. 친한 친구에게도, 가까운 가족에게도, “지금 잠깐 통화 가능할까요”라는 한 마디를 도무지 보낼 수 없는 시간. 다들 잠들어 있을 것이고, 잠을 깨우는 일은 미안한 일이고, 그렇다고 혼자 견디기에는 마음의 무게가 한 사람의 어깨에 다 얹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시간이야말로 한 분이 가장 가까이에 와 계신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잠들어 있지 않으신 한 분이, 잠 못 이루는 누군가의 베갯잇 옆에 가장 먼저 와 계신다. 친구도, 가족도 깨우지 못한 그 시간을, 한 분만은 처음부터 함께 깨어 계신 것이다.
옆 방에서 어른들의 숨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가족의 잠든 호흡은 새벽의 적막을 깨우지 않으면서도, 적막 안에서 작은 결을 만들어 낸다. 그 결을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내가 흘린 작은 자국 하나도 결코 가족과 무관한 일이 아님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우리는 각자의 베갯잇 위에 각자의 자국을 두지만, 그 자국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가는 실이 늘 이어져 있었다. 어떤 자국은 다음 날 아침 식탁의 한 마디를 더 따뜻하게 만들고, 어떤 자국은 식구 누군가의 마음 한구석을 천천히 어루만진다. 흘러내림은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창밖의 비는 점점 약해졌고, 어느새 멎어 가고 있었다. 새벽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천장 위에서 천천히 옅어지고 있었다. 베갯잇 위의 자국은 어느새 거의 마른 상태였다. 그러나 그 자국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 머물렀던 무엇은, 마른 뒤에도 어떤 결로 남아 있는 법이었다.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졌을 무렵, 베란다 너머로 첫 새의 짧은 울음이 들려왔다. 아주 가느다란 한 음이었다. 그 음 하나가, 침실 안의 적막을 가만히 한 결로 정리해 주었다. 새벽의 첫 새 울음은 그 자체로 한 분의 안부 인사 같았다. 잘 견뎌 주었다는 말도 아니고, 이제 일어나도 좋다는 말도 아닌, 그저 함께 깨어 있었다는 작은 신호. 우리는 그 신호 하나에 마음 한구석이 천천히 일어나는 경험을 한다. 큰 위로가 아니어도 좋다. 작은 신호 하나면, 새벽의 마음은 한 걸음 앞으로 옮겨 갈 수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자주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지만, 이 밤은 외로움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았다. 베갯잇 위 작은 자국 하나에 누군가가 함께 머물러 주신 시간이, 외로움이라는 단어 옆에 또 다른 단어 하나를 살며시 놓아 두고 있었다. 작은 자국 위에 머무신 분이 계신다는, 그 조용한 사실 하나가, 잠 못 이루던 밤을 천천히 한 줄기 새벽 쪽으로 옮겨 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