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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긍휼한 눈빛에 붙잡혀야


말씀을 묵상하다가 때때로 영혼을 울리는 말씀 앞에서 한동안 숨을 멈추고 깊은 묵상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마가복음의 말씀 중에 나타난 하나의 장면 앞에서, 심장을 두드리며 다가오는 말씀들이 하나의 영상이 되어 펼쳐지고 있습니다.

2000여년 전 유대나라 작은 마을 갈릴리 한적한 곳에 온 몸이 뭉그러진 나병환자 한 사람이 꿇어 엎드려 있고, 그 앞에 삼십대의 청년 한 사람이 조용히 서 있습니다.

청년의 눈빛에는 평온하면서도 깊고 온유하며 주변의 모든 것들과 풍경을 압도하는 기품이 서려 있습니다.

또한 그 눈빛에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가지기 힘든 긍휼을 담고 있습니다.

그 부드럽고도 강렬한 눈빛이 불쌍하게 일그러진 나병 환자의 얼굴에 쏟아지고 있고, 이 불쌍은 사람은 간절한 어조로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때 지상에서 가장 따스한 손이 그에게 내밀어지고 그 손은 나병환자의 일그러진 몸을 부드럽게 터치합니다.

그리고 연이어 단호하고 사랑이 가득한 목소리가 뒤따라옵니다.

“내가 원한다(I am willing). 깨끗함을 받으라(Be clean)!”

그 순간 온 몸을 흉측하게 일그러뜨렸던 나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 이 놀라운 기적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놀라운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나는 마치 갈릴리의 작은 마을에서 지금 막 그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 된 것 같은 현장감을 느겼습니다.

이곳에는 믿음과 용서와 사랑과 긍휼의 기운이 넘치도록 덮혀있고 하나님의 권능이 보이지 않는 공기층에 가득 서려있었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함과 아름다움으로…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마가복음 1:40-42”

여기서 “불쌍히 여기사”라는 말씀에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습니다. ‘불쌍히 여김’ 혹은 ‘긍휼’의 진정한 의미를 그대로 행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긍휼은 거저 하나님의 긍휼을 약간 흉내만 내는 것일 뿐임을…

역전 한 귀퉁이나, 음습하고 어두컴컴한 뒷골목이나, 가난에 절어있는 달동네 어귀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고아들이 있는 고아원 앞마당이나, 병이 들었어도 치료받을 돈이 없는 절대적 가난 속에 방치된 노인들이나… 그 모든 이들은 너무나 불쌍합니다.

날마다 시간에 쫓기듯 일에 묻혀 사는 이들이나,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죄악이 흰 옷에 묻은 오물처럼 들러붙어있어도 씻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늘 피곤하고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나… 이런 사람들 또한 너무나 불쌍합니다.

그러고보면 이 세상에는 ‘불쌍함’이 넘치고 있습니다. 누구 한 사람 예외가 없습니다.

다만 나보다 조금 더 불쌍한 사람들을, 조금 덜 불쌍한 내가 긍휼히 여기고 도움을 손길을 펴는 것, 그것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그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의 긍휼을 닮고자 하는 ‘자기의지’에서 비롯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긍휼의 옷을 입혀 주셔서 하나님이 주신 긍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긍휼함을 가진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긍휼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자기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눈을 돌릴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길 겨를도 없습니다.

자기자신만이 불쌍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더 불쌍한 사람을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설픈 ‘긍휼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함을 나타낼 것을 명하십니다.

우리 주변이 모두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긍휼이 전달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에 부딪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 문둥병자와 같이, 자애로우신 주님의 눈빛과 사랑의 터치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문둥병자였습니다.

주님 앞에 나아오기 전까지는… 주님 앞에 나아와 그 다함없는 긍휼의 시선에 노출되고 깨끗함을 받고나면 비로소 타인의 불쌍함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시선에 노출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눈빛은 인생의 모든 고통과 아픔과 두려움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파워가 있으십니다.

비록 지금은 깨끗하지 못하다해도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낀다해도 용감하게 마가복음의 그 나병환자처럼, 주님 앞에 엎드려 믿음의 손을 겸손히 들기만 하면 우리는 긍휼하심을 입게 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끝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도 자신의 문둥병을 현란한 옷으로 가리우고 주님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긍휼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우리 모두가 그런 긍휼의 마음으로 가득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주님의 긍휼하신 시선에 노출되기 위하여 담대히 주님 앞에 나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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