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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리핀을 생각하며


존 하워드 그리핀은 1920년 미국 남부에서 출생했다.

미국 남부 지방은 당시 흑백 인종차별이 상존하던 시기여서 그는 이를 당연시하면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러나 신앙에 눈 뜨고 흑인들의 고통을 목격하면서 그는 점차 생각을 달리했고 그들을 돕거나 이해하려 노력하는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흑인들이 그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않았다.

그가 접근할 때마다 ‘당신 같은 백인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며 멀리하고 경계했다.

그리핀은 마침내 흑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약품과 염료, 방사선을 이용해 자신의 피부를 검게 만들었다. 머리도 짧게 깎았다.

그리고 미국 남부에서 고된 삶을 살던 흑인 사회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체험했다.

1959년의 일이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백인 사회는 그를 이단아처럼 매도했다.

심지어 그의 고향에서는 그의 모형을 불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나 같은 흑인(Black like me)’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고 그의 책은 미국 교회와 지성인 사회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리핀에게 돌아온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자신의 피부를 검게 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방사선의 영향으로 피부암을 앓았고 60세를 일기로 하나님 곁으로 돌아갔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성탄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일’로 설명했다.

이 ‘성육신’ 원리는 오늘의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신앙적 주제다.

어찌 생각하면 이 원리는 우리에게 이론을 실천하는 삶을 요구한다.

말씀으로 존재하시던 분이 역사가 되신 것처럼 우리가 지닌 모든 신앙적 이론과 지식이 우리의 역사로 구체화되고 삶의 실제 내용이 될 수 있어야 우리가 비로소 그리스도의 성육신 정신을 따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언제나 계시적 삶을 사셨다.

그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선언하셨다.

그런 의미에서 칼 바르트는 교회를 일컬어 제2의 성육신이라 불렀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일상 모습에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제2의 성육신 공동체가 되어 계시적 소명에 충실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시기를 결심하시듯 우리 역시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지려는 결심을 해야 한다.

자기 부정과 희생이 수반되지 않으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변방의 위선자들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것은 논리와 감정 모든 면에서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그 일이 역사가 되면서 하나님은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고 인류는 감동했다.
이 거칠고 메마른 세상을 감동시키는 길은 이 불가능한 성육신의 삶을 우리가 감당할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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